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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프러포즈보다 어려운 독일 어린이의 생일파티

몇 달 전부터 예약하고 프로그램 짜고…동네 공원부터 극장 대여까지 장소도 천차만별

2018.11.29(Thu) 10:08:54

[비즈한국]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5월 못지않게 12월도 지출이 큰 달이다. 한국에서의 12월 지출과 독일에서의 지출 항목이 좀 다르긴 하다. 각종 송년모임과 가족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등이 한국에서의 주된 지출이었다면, 독일에서는 선물 외에 방학과 연말을 보내기 위한 여행과 레저 비용, 그리고 연중 최대 세일인 크리스마스 시즌 세일을 누리기 위한 지출 부담이 꽤 크다. 

 

여기에 올해 우리 집은 가계부에 적잖은 흔적 하나 남길 대형 이벤트가 12월 초부터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아이가 가장 기다리는 ‘3대 축제’(축제=선물 받는 날)인 생일파티가 그것. 생일이 보름이나 지나서 하는 파티지만, 나에게는 이날이 지나가야 비로소 생일 이벤트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야외활동하기 좋은 계절에는 집 앞 마당이나 동네 공원에서도 생일파티가 많이 열린다. 공원에서 여는 파티에도 프로그램 준비는 필수.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에서는 아이들 생일이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8월 베를린에 왔을 때 이런저런 생활 관련 조언을 해주던 한국인 후배도 같은 말을 했었다. “11월 생일이면 얼마 안 남았네요. 여기 괜찮은 장소들은 몇 달 전에 예약이 마감되거든요. 보통 파티를 주말에 하기 때문에 생일날 즈음에 하려면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고요. 좀 늦게 하는 친구들은 한두 달 후에 하기도 해요.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가 가장 중요한데요, 좀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는 게 좋기 때문에 저도 매년 생일파티 장소 검색하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여기 엄마들한테는 아이 생일파티가 너무 중요해서 오랫동안 찾아보고 준비하는 분들도 많아요. 프로그램 정해지면 한 달 전에는 초대장을 돌리는 게 좋아요.”

 

프로그램은 뭐고 예약 마감은 또 뭐람. 한 달 전 초대장이라고? ‘외계어’도 아니고 아이 생일파티 하는데 이렇게 낯선 단어들이 많이 등장할 줄이야. 후배가 예로 든 ‘보편적인 생일파티’ 프로그램은 이런 거였다. 암벽타기 체험, 박물관 미니 투어, 수영장 파티, 숲속 놀이터, 쿠킹클래스, 도자기 만들기, 영화나 공연 관람 등등.

 

베를린의 한 대형 트램펄린 실내 놀이터. 주말마다 생일파티를 여는 많은 팀들로 혼잡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별 고민 없이 하고 싶다면 실내 놀이터나 레고랜드에 아이들을 ‘풀어놓는’ 생일파티도 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아이들 생일파티 스케일이 달라지고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독일에서 하는 생일파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착을 핑계로 독일에서 맞는 첫해 생일파티를 조용히 넘기는 데 성공. 해가 바뀌고 또다시 생일이 다가오면서 아이는 작년에 내가 뱉은 “내년엔 꼭 해줄게”라는 ‘무마용’ 멘트를 꺼내 들었다. 게다가 일 년 동안 몇 번 친구들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온 아이는 자신도 그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무심코 했더라도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할 터. 

 

독일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축하파티라기보다 뭔가 체험하고 색다른 놀이를 하는 ‘프로그램’ 위주 파티 성격이 강하다. 사진=키커월드베를린 캡처


생일파티가 중요한 나라답게 여기저기 아이들 생일파티를 위한 프로그램이며 장소는 정말 많았고 아예 어린이 생일파티 패키지가 따로 있는 경우도 많았다. 지인들의 경험담도 다양했다. 동물원에서 하는 코끼리 타기 체험, 페인트볼 총으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 승마 등 정해진 프로그램도 있지만, 맞춤형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짜서 실행해주는 어린이 파티 전문 장소도 있었다. 집에서 파티를 열고, 부모가 각종 만들기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한국인 엄마는 집에서 김밥 등 한국 음식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생일파티를 치렀다고도 했다.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어디서 무슨 ‘프로그램’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제약 요소가 많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바깥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피해야 하고, 파티 장소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와야 하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위치도 적당해야 했다. 아이들 안전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니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최근에 아이가 다녀온 생일파티 프로그램과도 가능한 겹치지 않아야 했으며, 결정적으로 아들인 아이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라야 했다. 

 

아이 생일파티 준비 중 하나인 구디 백 만들기. 보통 간단한 간식과 문구류, 작은 장난감 등을 넣어 파티가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갈 때 손에 들려 준다. 사진=박진영 제공


이 모든 조건을 따져가며 고르고 고른 끝에 10월 초 답사를 갔더니 아이 생일이 있는 주는 물론이고 11월 말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 아, 이래서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던 건가. 생일 2주 뒤로 겨우 예약을 마치고 안도하는 나에게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흐메드는 9월이 생일이었는데 2월에 했잖아. 파티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이가 다녀온 생일파티도 무려 4개월이 지난 뒤에 열린 것이었다. 

 

2년 치 생일을 몰아서 하다 보니 아이가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 리스트는 넘쳤지만, 타협을 본 인원이 15명. 한 달 전 온라인 초대장을 만들어 발송하고, 참석 여부에 따라 최종 인원을 확정하고, 파티테이블을 위한 장식품 준비며, 파티가 끝난 뒤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낼 답례품을 준비하는 등 부차적인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파티 이틀 전이다. 

 

당일 케이크를 준비하고 무사히 파티를 마치기만 하면 일 년 치 숙제를 다 하는 셈. 실내 축구장에서 일반 축구와 버블볼 게임 등 두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한 우리는 1인당 간단한 음식이 포함된 체험비용에 코치 인건비, 답례품 등 준비로 든 비용만 550~600유로 선. 

 

얼마 전 서커스 극장을 통으로 빌려서 아이들에게 간단한 서커스를 가르친 뒤 부모들을 불러 공연을 했다는 독일 아이의 생일파티 얘기도 들었는데, 대체 생일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난 여름, 동네 공원에서 반나절을 뛰어 놀며 서로 진짜 친해지는 계기가 됐던 한 친구의 생일파티야말로 제대로 그 의미를 살린 생일파티가 아니었을지.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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