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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일본 대기업 회장님은 왜 '생전 장례식'을 치렀을까

웰다잉 시대, 고령화에 따라 장례 문화에도 '혁신'이 필요해

2018.11.20(Tue) 11:01:26

[비즈한국] 최근 날씨가 점점 추워지다 보니, 장례식장을 찾는 일이 잦아진다. 서울에서 대구, 그리고 익산으로 전국의 장례식을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에 비해 장례식장의 시설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장례의 형식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상주와 꼭 엎드려 절을 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 고인(故人)의 나이가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다 보니, 상주 역시 나이를 먹어가는데 굳이 좌식으로 장례식장을 만들어야 할까? 더 나아가 장례를 꼭 3일에 걸쳐 치를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KTX 덕분에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메신저 서비스 덕분에 연락을 제때 못 받을 일도 없는데 굳이 장례식을 그렇게 길게 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남에게 밝힐 용기는 없었기에 입 다물고 있었는데, 최근 발간된 책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의 김용섭 작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에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

 

전통사회에서는 장례식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최근 일본에서는 생전에 장례식을 여는 등 고령화에 따라 장례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연세대학교 장례식장의 발표에 따르면, 80대 이상 고인(故人)의 빈소 비율은 2008년 30.6%였는데 2017년에는 47%였다. 장례식의 거의 절반을 80대 이상의 고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상주 또한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변화는 장례식 문화 자체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장례식은 3일장이 보편적이었고, 그걸 당연시 여기고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굳이 3일장일 필요가 있을까? 하루면 어떨까? (중략) 결정적으로 3일장이 부담스럽게 된 건 고령화로 상주의 연령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책 184~185쪽

 

예전 전통사회에서는 장례식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먼 거리에서 온 친인척들이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쌈짓돈이라도 전달함으로써 유가족들의 살림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잘살고, 더 나아가 기초연금 등 다양한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상호부조’의 필요성도 낮아졌다. 

 

그럼 장례식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할까? 

 

이 대목에서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어른은 어떻게 돼?’에 소개된 박철현 작가의 빙부상(聘父喪)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장례식 당일 식장을 향하는 차 안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그렇게 떠드느냐고. (중략) 운전하던 아내가 말한다. “그러지 마. 아이들이 뭘 알겠어. 오히려 울고 그러는 게 더 이상해.” (중략)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른 장례식 내내 그랬다. 미리 오신 분들은 대기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다과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아이들은 밖에서 떠들며 술래잡기를 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아,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지만 일본 장례식은 처음 참석하는구나. 그리고 슬퍼도 겉으로 내비치지 않고 오히려 슬픔을 내보이는 것은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문상객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느끼게 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 장례문화였다. (중략) 

 

엄숙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밝았던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옆 건물에서 화장이 진행되었다. (중략) 이렇게 두 시간의 장례식이 끝났다. 참석자는 아이들까지 포함해 21명. 유골함은 처남이 가져가고, 아내는 유품을 보관하기로 했다. 조촐하면서도 의미가 있는, 번잡하지 않은 장례식이다. -책 228~231쪽 

 

일단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에 놀라고, 더 나아가 장례식이 단 2시간 만에 진행되었다는 것에 경악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 생전에 고인(故人)과 친분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석별의 정을 나눌까?

 

앞에서 언급했던 책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의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일본에는 ‘생전 장례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11월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해당 날짜로부터 3주 후인 12월 11일에 있을 ‘감사의 모임’이라는 행사에 초대하는 내용의 광고였는데, 이 행사는 사실 생전 장례식이었다. 이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안자키 사토루라는 80세 남자로, 그는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 불가능 판정을 받고 일체의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생전 장례식을 기획했다. (중략) 

 

안자키 사토루는 일본 건설기계 분야의 1위 기업 고마쓰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중략) 대기업 회장의 생전 장례식이란 이례적 행사에 지인, 동창생, 회사 관계자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안자키 사토루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이 행사장에 상영되었고, 그가 태어난 도쿠시마 현의 전통 춤 공연도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테이블을 돌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고, 모두에게 감사 편지도 남겼다. 그리고 2018년 5월 26일, 생전 장례식을 치른지 6개월 만에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책 170~171쪽

 

안자키 사토루 전 고마쓰 회장의 생전 장례식 당시 모습. 사진=야후재팬 블로그

 

사토루 전 회장은 이미 살만큼 산 데다,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통해 삶을 더 연명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기에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즉 자신이 정신이 멀쩡할 때 그간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혹시 정리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점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온전할 때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다면 장례식을 굳이 거창하게 치를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물론 문화가 바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철현 작가가 겪은 흥미로운 문화 충격, 그리고 고마쓰의 사토루 전 회장의 생전 장례식이 널리 알려진다면 변화가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그리고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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