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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양진호 회장에게 '웃음의 보좌역'이 있었다면…

'훌륭한 리더' 당태종 옆에는 장손황후, 유비 옆에는 간웅이 웃음으로 바로잡아

2018.11.02(Fri) 14:18:39

[비즈한국]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 상사나 연장자는 물론, 아랫사람도 모신다. 예컨대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도 국민을 모신다. 시대착오적인 단어이지만 신도(臣道, 신하의 도)라는 단어를 빌어, 보좌역의 참 의미를 짚어보자. 

 

순자가 ‘신도(臣道)편’에서 말한 대로 보필(輔弼)한다는 것은 윗사람이 잘못을 하면 뜻을 거슬러서라도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신기하게도 위로 오를수록 교만해져서 거슬리는 말을 싫어한다.

 

거의 무결한 군주요 귀가 열린 군주라는 평가를 받는 당태종 이세민도 면전에서 무안을 당하면 몸을 떨었다. 위징(魏徵)은 조회 때면 종종 이세민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무안을 주었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난 이세민이 조정일을 마치고 돌아와 장손황후에게 불평했다. 

 

“내 위징 그놈을 죽여버려야겠어. 사사건건 면박을 주니.” 

 

그러자 장손황후가 예복을 입고 와서 축하했다고 한다. 

 

“당신은 명군(明君)입니다. 그러니 그 밑에 바른 말 하는 현신(賢臣)이 있지요.” 

 

그러자 이세민이 크게 깨달아 위징을 더욱 중시했다 한다. 위징이 죽었을 때 이세민은 이런 말을 했다. 

 

“위징이 갔으니 나는 거울을 잃었다.”

 

위징은 훌륭한 보좌역이었지만 그를 빛나게 한 것은 이세민의 그릇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윗사람이 이세민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장손황후과 같은 이를 데리고 있으면 이세민이 못 될 것도 없다. 우리가 살필 것은 장손황후의 태도 안에 웃음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당신은 황제가 되어 어찌 그리 통이 좁소’라고 면박을 줬다면 이세민이 정말 위징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영상 캡처

 

‘삼국지·촉서·간옹(簡雍)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비의 도량은 이미 알려진 바 대로다. 간옹은 유비가 있어도 의자에 턱 기대 앉았고, 제갈량 이하의 신하들을 대할 때는 아예 누워서 말을 할 정도로 예의가 없었다. 조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바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지만, 유비는 그의 태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데리고 다니며 의견을 들었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후 어느 시절 날이 가물어서 양식이 부족했다. 이제 유비는 금주령을 내리고, 술을 만드는 기구를 가진 이도 술을 만든 이와 같이 처벌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간옹이 하루는 유비와 거닐며 구경하다가 길을 가는 남녀 한 쌍을 보더니 문득 말을 꺼냈다. 

 

“저들이 음란한 행동을 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포박하지 않으십니까?”

 

유비가 의아해서 반문했다. 

 

“경이 저들이 그럴지 어찌 아오?” 

 

“저들이 음란한 짓을 할 물건(성기)을 갖췄으니 술을 빚는 기구를 가진 사람들과 똑같지요.”

 

그러자 유비가 크게 웃으며 술 빚는 기구를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았다고 한다. 웃음이 위력은 대개 이 정도다. 

 

엄격함의 리더십이 전시의 태도이듯이, 심각함은 전시의 보좌유형이다. 까치발로는 오래갈 수가 없듯이 전시의 리더십으로는 장구할 수 없다. 그래서 마냥 가벼운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되겠지만, 시종 무거운 태도를 유지하는 이는 훌륭한 보좌역이 아니다. 

 

보좌하는 이는 통렬하게 잘못을 지적하되 상대방의 인격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인격을 건드리는 순간 사람을 마음의 문을 닫는 경향이 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 등 전체주의의 악령에 사로잡힌 이들 주위에는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웃으면서 악행을 하는 선천적인 악마는 지극히 드물다. 

 

웃기는 보좌역이 리더를 바른 길로 이끄는 이유는 그가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가 웃음을 터뜨리면 따라 웃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인 것을 보면, 웃음은 에너지의 분출이고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간옹은 웃음으로 유비를 바로잡았지만, 실상 그는 누구도 하지 않는 말을 한 강직한 사람이다. 

 

21세기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상의 미덕이 소통이라면, 그에 맞는 보좌역의 미덕은 웃음일 것이다. 근래 직원을 마구잡이로 때려 도마에 오른 양 아무개 씨는 남의 위에 올라서는 안 될 천박한 인간이다. 그런 살벌한 자의 기운에 누가 감히 말이나 걸 수 있을까마는, 필자는 확신한다, 그의 옆에 웃음으로 보좌할 이가 하나도 없을 것임을.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수 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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