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은 비상식적인 동기와 잔혹한 수법으로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의자의 정신감정 등을 비판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동의가 지난 23일 무려 100만 명을 넘어섰다. 게시판이 도입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이다.
대중이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형제도가 사문화되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강력사건이 횡행하는 반면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듯한 상황에 대한 반발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한 가정의 누군가가 범죄로 인해 죽거나 장애를 입는다면, 누구의 인권이 우선 보호되어야 할까. 범죄자일까 아니면 피해자나 유족일까. 물론 범죄 혐의자의 진술거부권, 영장주의, 미란다원칙,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주의 등은 더욱 더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를 입거나, 더 나아가 가정이 해체될 정도에 이른다면, 먼저 이들의 삶이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범죄피해자를 위한 현행 제도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범죄피해자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는 범죄피해자구조와 재판절차진술이 있다. 우선 범죄피해자구조를 보자. 이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피해를 입은 국민은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기본권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지난 2016년 5월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는 유족구조금으로 약 6641만 원 일시지급, 3년간 생계비 매월 5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에 대한 지원 수준은 미약하다고 평가된다. 범죄로 인해 생명을 잃은 경우에 지급되는 유족구조금은 해마다 조금씩 증가했음에도 2015년 기준 평균 3450만 원에 불과하다. 이 구조금을 국가가 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람의 ‘목숨 값’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 범죄피해자는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와 성범죄 피해 아동 등을 제외하고는 국선변호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내년부터 3년 이상 징역형 선고가 예상되는 범죄 혐의자들이 수사 과정에서부터 ‘형사공공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시범 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상 범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폭력행위처벌법,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죄와 형법상 강도죄 등이다. 즉 사기, 상해, 성폭력, 강도 등 중범죄자들은 그동안 영장실질심사나 재판받는 단계에서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붙여주었지만, 내년부터는 그 시기를 앞당겨 경찰에서 조사받는 단계에서부터 지원한다는 것이다.
일견 외관만 보면 인권국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범죄 피해자를 위한 구조금이 상당히 적고 국선변호도 거의 지원되지 않는 현실에서, 당장 내년부터 범죄자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바뀐 것 같아 동의할 수 없다.
국가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우선순위에 따라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 지원을 할 것인지, 범죄자에게 지원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답은 명확하지 않을까. 만족스럽게 운영되지 못하는 피해자 지원을 채우기보다 범죄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제도를 창설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더욱이 정부 안에 따르면 형사공공변호인은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법무부의 의뢰를 받아 운영한다. 이렇게 되면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무부가 나서서 변호인을 붙이는 모양이 되는데, 자칫 변호사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억울한 사람은 피해자다. 국가형벌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로서는 피해자의 인권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야 한다. 국가는 범죄 피해자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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