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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위기 앞에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허점 드러내 위기 공유해야…한 광무제처럼 '붉은 마음' 보여라

2018.10.25(Thu) 11:30:58

[비즈한국] 소위 영웅이라는 이들과 보통 사람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과거의 지도자들, 특히 지존(至尊)인 황제는 아파도 아프다 못하고 좋아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위에서 체통을 잃으면 상하의 기강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근엄해야 했다. 

 

하지만 항상 뻣뻣하게 다니다가는 목에 쥐가 나고, 또 유사시에 근엄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나마 쌓았던 위선의 위엄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귀족들이 평소에는 거들먹거리지만 막상 전투에 나가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비겁하고 힘도 쓸 줄 모르니, 그 순간 귀족 체제에 금이 간다고 지적했다.

 

2018년은 정치, 경제를 막론하고 실제로 위기의 순간인 듯하다. 정치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반도 남북의 지도자 둘이 모두 살얼음판을 걷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무섭게 부상하는 대국(중국)과 제조업 강국의 입지를 수성하는 강국(일본) 사이에서 자리 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9월 24일 미국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18년은 정치, 경제 모두에서 위기의 순간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솔직함과 근엄함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사진=청와대 제공


이런 상황에서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끄는 이들은 솔직함과 근엄함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위기 순간의 리더십의 요체는 근엄함이 아니라 솔직함이다. 솔직함은 자신의 허점까지 모두 드러냄으로써 위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둘이 길을 가다 위험에 맞닥뜨리면 인간은 서로 부둥켜 앉는다. 아버지가 아들과 길을 가다 곰을 만났을 때 막상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너는 아들이니 당장 앞으로 나가라”고 호통치는 아버지? 혹은 “아들아 너는 내 뒤에 숨어라”라며 단신으로 달려드는 아버지? 안타깝지만 그렇게 대응하면 각자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희생될 것이다. 

 

위기의 순간엔 ‘부자유친(父子有親)’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 압도적인 상대를 대할 때는 오직 둘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이 정답이다. “아들아 나도 무섭다. 하지만 나 혼자는 이길 도리가 없으니 함께 달려들자.” 두려움과 용기와 성공과 실패를 모두 공유하는 것이 솔직함이다. 반면 위기의 순간 예의나 기강은 별무소용이다. 

 

그래서 ‘오자병법’에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라 해서는 안 된다. 목숨을 요구하면서 예의를 차리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고, 또 ‘천하무적의 군대는 상하가 하나된 부자(父子)의 군대’라고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속내(赤心, 진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위기 상황의 리더십이다. 

 

한(漢)의 개창자 고조 유방(劉邦)은 한낱 지방의 보안관이었다. 진나라 말기 민심이 흉흉할 때 그는 죄수를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죄수 무리를 끌고 가는데 이탈자가 많았다. 정치가 길을 잃었으니 죄수들이라야 흉악범은 아니었을 터. 잡아서 본보기를 뵈자니 측은하고, 그대로 두고 보자니 자신이 죄에 걸려 죽을 판이었다. 

 

그러자 그는 어느 날 밤 술을 진탕 먹고는 죄수들에게 선언했다. “자네들은 다 도망가라. 나도 도망가련다.”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하고 스스로가 도망자가 되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을 더 먹고 드러누워버렸다. 그때 차마 떠나지 못하고 ‘죽더라도 같이 죽자’며 모인 여남은 명을 밑천으로 해서 유방은 반진 기의(起義)의 기치를 올리고, 기어이 새 나라를 열어 황제가 되었다.

 

무너진 한을 다시 일으켜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의 리더십도 사실 비슷하다. 당시 천하의 제도는 무너지고 먹고살기 위해 농민들이 무리 지어 유랑하며 약탈을 일삼던 시기였다. ‘동마적(銅馬賊)’이라는 집단도 ‘삼국지’에 나오는 황건적과 비슷한 유랑 농민의 무리였다. 이런 무리를 제압하면서 성장한 군벌이 황제가 되는 것이 중국사의 상례다. 

 

유수 집단이 동마적을 크게 물리쳐서 자기 군으로 흡수했지만, 막상 항복한 동마적의 우두머리들은 앞날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유수는 가볍게 무장하고 몸소 항복한 이들의 군영을 돌아다니며 위로했다. 찌를 테면 기회를 봐서 찌르라는 일종의 ‘역시위(逆示威)’였다. 그렇게 몸을 드러내놓고 다니니 항복한 이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소왕(萧王, 유수)이 붉은 심장(赤心)을 꺼내 남의 뱃속에 넣어주는데, 우리가 어찌 죽음을 무릅쓰지 않을 수 있으리오(萧王推赤心置人腹中,安得不投死).” 그러자 유랑 농민 무리가 줄줄이 항복해와 유수는 세력을 구축하고 기어이 후한의 천하를 열었다. 

 

솔직함이란 이렇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며, 백척간두에서 자그마하게 남은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패하면 다 잃는 마당에 제 손에 든 것을 움켜쥔들 지킬 도리가 없다. 옛날 꼬장꼬장한 예의를 강조하는 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았기에, ‘예기·악기(樂記)’는 ‘만물은 화동(和同)에서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후에야 질서(禮)가 생긴다’고 강조한다. 

 

오늘을 진정 위기라고 느낀다면, 크고 작은 조직의 지도자가 할 일은 먼저 ‘붉은 마음’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일 터이다.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수 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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