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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트럼프와 시진핑, 그리고 지도자의 품격

전쟁중에도 유머와 품격 지키던 옛 리더들, 너무 다른 지금의 리더들

2018.10.19(Fri) 12:14:34

[비즈한국] 오늘날은 고전(古典)적인 의미에서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이 꼭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고전적인 리더로서 결격 사항을 많이 가진 대표적인 예가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그와 조지 워싱턴 혹은 토머스 제퍼슨의 유사점을 찾고자 하니 한참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고, 심지어 혹평을 받았던 공화당 선배 조지 부시 부자와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인종/여성/국가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던지고, 면전에서 상대방을 모욕하며, 말을 쉽게 바꾸고, 기부에 인색하며, 심지어 탈세 혐의까지 받지만, 그는 여전히 현실의 리더다. 

 

스스로는 고전을 입에 달고 살지만 고전적인 틀로는 이해하기 힘든 맞수 지도자가 동방에 있다. 과묵하고, 호오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칼을 들면 서슴없이 휘두르는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다. 비록 ‘논어’를 자주 언급하지만, “천리 제방도 개미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千里之提, 漰於蟻穴)”는 자신의 언사에서 은연중에 표출된 바 있듯이, 그의 내면은 한비자류 통제정치로 이미 기운 듯하다. 

 

지난 2017년 11월 9일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인민이 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금하는 것이 한비자식 법가의 기본 인식이다. 그 또한 법치를 내세우면서 무자비하게 언론을 탄압한다. 동양 고전의 유파야 여럿이지만 인치(仁治)와 언로를 강조하는 유가(儒家)가 지난 2000년 동안 주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시진핑 역시 우리가 아는 고전적인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그는 중국현대 정치의 거목 덩샤오핑의 대내적인 집단지도체제와 대외적인 ‘기다림과 화평(韜光養晦, 和平屈起)’의 유훈도 기꺼이 거슬렀다. 전통을 존중하는 고전파의 모양새는 아니다.

 

사실 전직 대통령 둘을 감옥에 두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남의 이야기를 하기는 부끄럽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 두 분과 트럼프의 공통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항상 “열심히 일한다”, “나는 무엇을 이뤘다”고 끊임없이 자랑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분명 리더의 자질이다. 예컨대 동한의 광무제는 소문난 일벌레였는데, 밤 늦게까지 일을 하여 아들이 걱정하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피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몸소 말을 타고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유씨의 한나라를 다시 세우고 광무중흥(光武中興)의 치적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겸손했기에 부지런함을 자랑하지 않았다. 

 

맘에 안 드는 이들이 보이면 사찰하고 지원을 끊고 심지어 사법적인 방법으로 해코지하기를 즐긴 우리네 두 전직 대통령은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와 닮았다. 반면 광무제는 ‘느슨한 정치’를 주장하고 대외적으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정치의 목적으로 삼았으므로, 현재의 지도자와는 크게 거리가 있다. 이렇게 21세기에는 리더십의 기준도 바뀐 것일까? 

 

옛날 고전적 지도자들의 대화는 전쟁 중에도 우스꽝스러우리만치 우아했다. 문인이나 역사가들은 그 우아함을 흠모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고전파 정치가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옛날 춘추시대 관중을 등용한 제환공이 패권을 강화하고자 동맹군을 거느리고 맞수인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초나라 사신 굴완(屈完)이 와서 자기 군주의 말을 전한다. 

 

“그쪽 군주께서는 북해에 계시고 과인은 (머나먼) 남해에 있어, 발정 난 마소가 서로 닿지 못할 정도인데(風馬牛不相及), 군주께서 우리 땅에 발을 들이신 것을 어쩐 까닭입니까?”

 

관중이 제환공을 대신하여 ‘초나라가 북방제후들의 종주국인 주나라의 천자에게 공납을 안 드렸네’ 운운하며 꼬투리를 잡다가 급기야 옛날 일을 꺼냈다. 

“(주나라) 소왕(昭王)께서 남쪽(초나라)으로 정벌을 떠나셨다가 돌아오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과인은 이 일을 묻고자 합니다.”

 

그러자 굴완이 대답했다. 

“공물을 드리지 않은 것을 우리 군주의 죄이니, 감히 안 드릴 수 있겠습니까? 허나 소왕께서 돌아가지 못하신 일은 저 물에게 물어보십시오(問諸水浜).” 

 

천하의 명재상 관중도 그만 할 말을 잃어, 공납만 받기로 하고 바로 화친하고 물러났다. 고전적인 외교 언사는 이런 격(格) 안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 고도의 해학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쟁터에서 “발정 난 마소”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물에게 물어보라”는 표현은 최상의 세련된 유머였다. 실제로 소왕은 그 강을 건너다 빠져 죽었다. 굴완은 지금,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옛날 이야기는 일이 벌어졌던 저 물가에 가서 물에게 물어보시라. 옛 물은 이미 흘러갔을 터이니’라고 대답하는 셈이다. 그 시절의 지도자란 이 고급 유머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을 통해 고전적인 민주주의를 현실로 만들었다. 우리 지도자들은 고전파 국민의 대표답게 우아하게 묵묵히 자기 길을 가길 희망한다. 2017년 10월 2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혁명 1주년 행사. 사진=임준선 기자

 

우리 국민은 근래 ‘촛불혁명’을 통해 교과서에나 나오는 고전적인 민주주의를 현실로 만들었다. 소외된 자의 분노를 역이용하여 자기 힘을 불리는 대중영합적인 ‘스토롱맨’이나, 언로를 틀어막고 사찰로 정권을 보위하려는 각박한 독재자는 이 땅에 설 자리가 없다. 고전적인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이는 여전히 고전적인 지도자다. 고전적 지도자가 미래의 지도자일지는 모르지만, 비고전파는 식자층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분명 역풍을 맞는다. 누군들 천박하고 잔인한 지도자의 통치를 오래 견딜까. 

 

우리 국민은 모두 읽고 쓰고 비판하는 것을 즐기는 준(準)지식인이요, 교양인들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거인이라고 자처하는 비고전파들의 싸움을 조용히 응시하되, 고전파 국민의 대표답게 우아하게 묵묵히 자기 길을 가길 희망한다.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수 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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