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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청년 사라진 청년몰, 을씨년스러운 '이화 52번가'

15억 들여 22개 입점 2년 만에 휴·폐업 속출…"졸속 선정, 사업자 역량 부족" 지적

2018.10.05(Fri) 18:22:13

[비즈한국] ‘임대 문의.’ 1m 간격을 두고 텅 빈 가게 두 곳에 알림이 붙었다. ‘오더 슈즈(주문제작 신발)’ ‘캣 인 더 바스켓(CAT IN THE BASKET·바구니 속 고양이)’ 문구만이 무엇을 하던 곳인지를 가늠케 했다. 

 

‘이화 52번가 상점가.’ 두 상점 사이 외벽에는 거리 이름을 알리는 깃발이 붙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이화’와 상점들이 위치한 곳의 도로명 ‘52’를 합쳐 만든 ‘이화여대 앞 스타트업 상점가’의 이름이다. 골목은 이화여대 정문 왼쪽 골목에서 시작돼 경의선 신촌역까지 이어진다. 두 가게는 이 거리가 끝나는 지점의 막다른 골목에 위치했다. 지난 4일 정오 무렵, 입구 쪽은 점심을 먹으러 온 대학생으로 붐볐지만, 안쪽까지 발길이 닿지는 않았다. 

 

2016년 10월 서대문구청과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중소기업벤처부 지원을 받아 ‘이화 52번가 상점가’를 조성했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2016년 10월 서대문구청과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중소기업청(현 중소기업벤처부) 지원을 받아 이 일대에 ‘청년몰’을 조성했다.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고 쇠락한 상권을 일으키려는 목적에서다. 이화여대와 신촌 지역 대학생 등으로 꾸려진 22개 팀을 선발해 상점 임대료와 교육·홍보·마케팅 비용 등을 지원했다. 총사업비 15억 원 규모. 13개월간 진행된 이 사업은 지난해 말 종료됐다. 

 

사업 시행 2년이 지난 지금 ‘이화 52번가 상점가’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4일 ‘청년몰 상점’에서 영업 중인 가게는 6곳뿐이었다. 청년몰 지원 사업이 시행되기 전부터 입점한 요식업소 4곳, 청년몰 사업 시행 이후 입점한 화랑 1곳과 개인미술품 판매 업소 1곳이었다. 

 

나머지는 휴·폐업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폐업한 점포로는 수제 구두 제조업체, 반려동물용품 판매 업체, 셀프 웨딩드레스 업체, 수공예품 판매 업체, 영상제작 업체, 수제 햄버거 판매 업체 등이 있었다. 모두 청년 개인 또는 소수의 직원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 측은 ‘이화 52번가 상점가’에 남아 있는 상점을 10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화 52번가 상점가’ 곳곳에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기존 상인들과 남은 청년몰 상인은 청년몰에 휴·​폐업 점포가 늘어난 원인이 ‘청년몰 상인의 역량 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 A 씨(72)는 청년몰이라는 단어를 듣자 몸서리쳤다. A 씨는 “가게 문도 늦게 열고 일찍 닫는 등 공짜로 영업을 하니까 열정을 안 갖는다. 그런 식으로 하면 기존 상인들만 피해를 본다”며 혀를 찼다. 

 

청년몰을 지켜본 인근 상인 B 씨(45)도 “지원이 들어오니 아무나 지원을 한 거다. 제 돈 들이고 피눈물 흘리는 것도 아닌데 누가 열심히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몰에 입점한 C 씨는 “안이하게 생각한 창업자들이 많았다. 창업자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부족했던 것이 폐업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청년몰 상인 D 씨 역시 “운도 필요하겠지만, 가게가 폐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역량이 부족해서다”고 말했다. 

 

수혜자를 선발한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지원자의 역량과 업종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중개업자 A 씨는 “사업계획서 내고, 프레젠테이션 발표 한 번 해서 대상자를 뽑으니 좋은 자리 싸게 얻어서 임대료만 타다가, 권리금 받을 생각이나 한다”고 했다. 

 

청년몰 상인 F 씨는 “수혜자를 선발할 때 산학협력단 측에서 업종별로 배분한 것으로 안다”며 “생존력 있는 업종을 뽑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몰 상인 E 씨(37)는 “동일한 메뉴를 파는 청년몰 상점이 수십m 내에 여러 개 입점했다. 당시 산학협력단에 거세게 항의했다”며 “사업성이 없는 아이템도 많았고, 기존 상권에 대한 분석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의 미숙한 사업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청년몰 상인에게 매월 평당 10만 원의 임대료와 인테리어비를 지원하고 홍보·​마케팅·​세무 등을 교육했다. 

 

썰렁한 ‘이화 52번가 상점가’ 모습.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앞서의 C 씨는 “우리는 평수가 작아서 임대료 지원을 많이 받지 못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큰데, 임대료 지원에만 그친 게 아쉽다”고 했다. 청년몰 상인 G 씨는 “실제 사업을 하는 분이나 현장에 계신 분이 기술 지원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년몰 상인 H 씨는 일부 사업에서 산학협력단이 상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H 씨는 “산학협력단에서 ‘이화 52번가 상점가’ 골목 바닥에 꽃 그림을 그렸다. 상인 일부가 비가 오면 미끄럽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사업단은 강행했다”면서 “상점가에 위치한 ‘이화광장’을 만들면서도 상점가 방향으로 담을 쌓지 말라는 상인 요청을 무시했다”고 했다.

 

청년사업가들이 떠난 자리에는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이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청년몰 사업 개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이화 52번가 상점가’의 공실률은 기존 50%에서 5%로 줄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대학생들의 구전마케팅을 통해 과거보다 2배 이상 유동인구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앞서의 B 씨는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 줄었는데 월세는 150만 원에서 170만 원으로 13%나 올랐다. 재료비, 인건비에 이어 임대료까지 오르니 남는 게 없다”​면서 “​올해 초 가게를 내놨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이 바로 청년몰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화여대 산업협력단 측은 4일 현황 자료를 보내주면서 “현재 52번가 매장에서 이탈한 창업팀이 많기는 하지만 청년몰 조성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경험과 노하우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사례가 꽤 있다”며 “지역상권이 미처 살아나지 못한 점 등 더욱 효과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저희 경험을 바탕으로 더 효율적인 사업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예산의 한계 때문에 사업 종료 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산학협력단 측에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나 지원프로그램 등을 연계해 계속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즈한국’은 ​여러 지적에 대해 추가로 이화여대 산업협력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5일까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더 이상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

 ​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 9월 30일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년몰 조성사업 지원을 받은 점포 274개 중 25.2%(69개)는 휴·​​폐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벤처부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중기부가 목표로 하는 청년몰 지원 사업 예정지는 13곳이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최대 30억 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전망이다. 

 

‘이대 앞 스타트업 상점가 청년몰 조성사업’ 사업비는 국비 50%(7억 5000만 원), 지방비 40%(6억 원), 이화여대 부담금 10%(1억 5000만 원)로 조성됐다. 세금으로 조성된 청년몰 지원사업이 사업 수혜자와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발자취를 돌아볼 때다.​ 

차형조 인턴기자 wrti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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