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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연 120만 원, 독일에서 전기료 안 내봤음 말을…

밤에도 불 안 켜고 사는 독일 사람들, 절전 라이프 실천해도 한국의 4배 수준

2018.10.04(Thu) 10:22:33

[비즈한국]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여. 연 단위로 정산되는 온갖 요금이며 주택 관련 보험 등을 갱신해야 할 때가 됐다. 우편물들은 대부분 돈 내라는 ‘고지서’들이니 반가울 리 없다. 며칠 전 받은 우편물은 ‘반갑지 않은’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전기세 폭탄’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11년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은 가격이 비싼 신재생에너지 비중 증가로 전기요금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184유로의 전기세를 더 납부해야 한다. 환율 1300원 수준으로 계산하면 24만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 정도면 ‘폭탄’도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1년간 총액 100만 원 정도를 전기료로 냈는데도 더 내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물론 독일 3인 가구 평균 전기료에 비춰보면 1년간 내가 낸 금액에 추가로 내야 할 금액을 더한 가격이 ‘평균요금’ 수준이기는 하다. 하지만 1년간 어떻게 살았는데…. 전원 플러그 뽑기가 취미고 전등은 꼭 필요한 곳에만 켜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절전’ 생활을 강박처럼 해온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독일 사람들의 절약 정신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야 비로소 평균이 된다는 것인지. 한국에서는 에어컨 돌아가는 여름 시즌이 아니면 월 전기료 3만 원대로 충분했는데 말이다. 

 

독일의 전기계량기. 보통 일반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곳에 있어 계량기를 확인할 때는 반드시 하우스마이스터(관리인)에게 연락해야 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컨테이너 이삿짐에 실어온 양문형 냉장고가 독일 집의 작은 중문을 통과하지 못해, 현관에서 수납장으로 쓰이는 현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독일식 가전과 전원주파수 및 모터 회전 등이 다른, 일례로 양문형 냉장고 같은 우리나라 가전을 사용했다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기세 핵폭탄을 맞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매달 전기료를 냈는데도 추가 징수가 되는 건 우리나라와 다른 독일의 전기료 납부 방식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독점한 한국과 달리, 독일은 전기를 공급하는 회사가 많아 개인이 직접 가격과 서비스 등을 따져 회사를 선정해야 한다. 보통 1년, 2년 등으로 계약을 맺게 되는데 가구당 거주 인원수에 따라 평균 한 달 사용하는 전기량을 예상해 월 전기료가 책정되고, 매달 은행 계좌에서 자동이체 되는 식이다. 

 

독일은 전기공급 회사가 많아 개인이 직접 회사를 정해야 한다. 전기료 비교 사이트에서는 가구당 인원수를 입력하면 전기 회사별 연간 전기료를 비교해볼 수 있다. 사진=체크24 웹사이트 캡처


물론 본인이 직접 월 전기료를 정할 수도 있다. 어차피 1년이 지난 뒤 연간 전기량을 체크해 그동안 낸 돈이 더 많으면 돌려주고, 적게 냈으면 더 징수하기 때문에 누가 책정하든 결과적으로 차이는 없다. 

 

1년 전 현재의 전기 회사와 계약하면서 월 전기료를 책정한 건 나였다. 비싼 독일 전기료를 감안하면 우리집 규모의 3인 가구가 월 9만 원을 납부하는 것은 ‘초절약형’에 속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내던 전기료를 생각하면 큰돈이었다. 

 

500리터급의 작은 독일 냉장고를 비롯해 가전제품 수도 많지 않은 데다 TV도 거의 켜지 않고, 독일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절전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연 12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전기료로 내야 하다니, 독일 전기료 비싸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말을 한 번 더 실감한다. 

 

독일의 비싼 전기료는 2011년 탈원전 방침을 정하고 원전 8기를 폐쇄하면서 비롯됐다. 싸게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전 대신 비싼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체르노빌 사태와 후쿠시마 사태를 보면서 원전 폐쇄를 결정했는데, 체르노빌 사태의 경우 독일 남부 지역까지 방사능 낙진이 퍼지는 피해를 겪으며 원자력을 포기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전기 요금도 더 많이 내겠다는 국민들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독일 사람들은 별로 불만이 없는 것 같다. 밤이 되면 아파트나 주택에 환한 불빛은 거의 없고 희미한 불빛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그 ‘합의’ 이행을 위해 그렇게들 어둡게 사는 모양이다.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훌륭한 국민성에 감탄만 하면 좋은데, 막상 앞으로 더 많은 전기료를 내야 하는 나의 현실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 1년치 전기료가 앞으로 1년간 낼 전기료의 새로운 기준이 돼 당장 다음달부터 11만 원에 달하는 전기료를 내야 하니 말이다. 어떻게 더 절전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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