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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갑질? 랜드사 제살깎기?' 저가 패키지여행 피해 원인 논란

랜드사 "홈쇼핑 수수료 부담, 경비 지불 안 해" 주장…패키지여행사 "있을 수 없는 일"

2018.10.04(Thu) 17:15:54

[비즈한국] ‘동유럽 7박 9일에 139만 원.’ 패키지여행사의 광고 문구다. 항공, 호텔, 식사, 차량​ 등 얼핏 기본 경비만 더해도 이 가격이 나올까 싶다. 여행사 마진도 남겨야 하고 광고비도 들었을 텐데…. 

 

상품은 대개 싸면 일단 팔린다. 여행상품도 예외는 아니다. 패키지사들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여행상품을 쏟아내고 그 여행상품을 진행하는 현지 여행사들은 경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여행팀을 받는다. 부족한 부분은 현지에서 손님에게 쇼핑과 옵션을 강요해 메우고 마진까지 남겨야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30년여 전부터 여행업계에 있었던 고질병이다. 그러나 그런 병폐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여행상품 유통과정의 가장 말단에 있는 랜드사(현지에서 최종 여행일정을 진행하는 여행사)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부당거래’의 피해자라고 호소한다. 

 

패키지사들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여행상품을 쏟아내고 그 여행상품을 진행하는 현지 여행사들은 경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여행팀을 받는다. 부족한 부분은 현지에서 손님에게 쇼핑과 옵션을 강요해 메우고 마진까지 남겨야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 여행박람회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19일 ‘비즈한국’​은 더좋은여행과 e온누리투어 등이 높은 홈쇼핑 수수료와 그에 맞지 않는 저가 패키지 상품 판매로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홈쇼핑 돌려막기' 때문? 저가 패키지여행사 몰락의 배후). 그런데 패키지여행사의 무리한 출혈경쟁은 패키지사의 부도로만 끝나지 않는다. 고스란히 랜드사로 이어져 2차, 3차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10월 1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홈쇼핑 저가 여행상품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랜드사 종사자의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원 제목은 ‘건전하고 상생 가능한 여행업을 위한 제안(극에 달한 패키지여행사의 홈쇼핑 광고와 홈쇼핑 회사의 횡포에 대하여)’이다. 청원자는 패키지여행사의 횡포에 예외가 없음을 밝히며, 정부의 규제를 통해 공정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했다. 

 

“​단순한 홈쇼핑 과다 경쟁으로 인한 가격 덤핑은 두 번째 문제고 더욱 심각한 것은, 여행객 송출인원이 많은 패키지여행사의 갑질에 이 여행객을 받아서 호텔, 버스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현지 한인여행사들의 피해가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패키지여행사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참좋은여행, 노랑풍선, 한진관광, 롯데관광, 현대관광, 인터파크여행, 온라인투어, 여행박사, 투어 2000, 하얀풍선 등 그리고 홈쇼핑에 나오는 모든 여행사들을 지칭).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지중해, 동남아, 미주, 남태평양 할 것 없이 어느 지역 하나 이 홈쇼핑의 저가공세에 자유로운 곳이 없습니다.”

 

이런 청원이 올라온 것은 홈쇼핑 방송 수수료를 패키지사가 부담하지 않고 일부나 전액을 현지 랜드사에 부담시키는 일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홈쇼핑 판매에 참여한 랜드사 대표 L 씨는 “홈쇼핑 방송 수수료를 랜드사에 일부 혹은 50~70%까지 부담시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거부하면 패키지사에서 여행팀을 받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현지에서 호텔과 차량 등을 원활하게 거래할 수 없게 된다. 장기적인 사업을 위해선 외상을 하더라도 급한 건 일단 돈보다 물량”이라고 답했다.​

 

지난 10월 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홈쇼핑 저가 여행상품 판매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이에 대해 대형 패키지여행사 관계자는 “홈쇼핑 상품은 여행사 단독으로 가격이나 일정을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항공사, 관광청, 여행사, 랜드사가 서로 협의해 결정하는 부분이다. 시즌이나 프로모션 여하에 따라 상품이 달라진다. 또 여러 랜드사 중에서 참여하겠다는 랜드사와 함께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부담을 시키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반박에도 현지 랜드사의 피해 증언은 쏟아진다. 다른 랜드사 대표 M 씨는 “패키지사는 여행팀을 계속 준다는 조건으로 랜드사에 외상, 즉 미수금을 계속 깔아 놓는다. 규모가 작은 랜드사 중에도 미수금이 수억 원대를 웃도는 곳이 많다. 패키지사는 투어피 지불을 미뤄 해당 분기 수익을 부풀린다”고 주장했다.

 

대형 패키지사와 장기간 거래를 하고 있는 또 다른 랜드사 대표 K 씨도 “대륙별 팀장의 재량에 따라 그달의 결제 금액이 달라지는 일이 많다. 이번 달 해당 팀 수익률이 다른 팀에 비해 좋지 않다며 투어피를 아예 다음 달로 미뤄버리거나 일부만 결제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패키지사의 매출이 늘지 않는 달은 랜드사에 지불할 경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자사의 수익률을 늘린다는 것. 

 

그러면서 K 씨는 “여행팀을 계속 원활히 받기 위해서는 부당한 줄 알면서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다. 부도나게 생겼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우는 아이 젖 주는 격으로 간혹 큰 금액을 결제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원금에서 다시 10~20%를 깎는다”​고 덧붙였다. 

 

돈을 받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마저 애초 마이너스다. K 씨는 “호텔과 차량, 식사 등의 순수 경비가 1인당 150달러라면 대형 패키지사는 랜드사끼리 경쟁시켜 투어피를 100달러로 깎는다. 처음부터 마이너스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환율 장난’까지 이어진다고. K 씨​는 “환율이 내려가면 내려간 환율을 적용하고, 환율이 오르면 오르기 전 환율을 적용한다. 미화 1달러가 1200원 할 때도 결제금에서 1달러는 무조건 1000원이라고 규정한 대형 패키지사의 이야기는 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환율 200원 차이면 팀 전체의 수익이 날아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형 패키지사가 1년에 한 번 주최하는 여행박람회 부스를 랜드사에 강매하고 찬조금을 걷는 것도 ‘​관례’란다. 20년간 동남아 지역 랜드사를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패키지사가 여행팀을 보내주기 때문에 현지 랜드사는 고객에게 직접 영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패키지사는 최소 300만~400만 원 하는 ​여행박람회 부스비를 부담시키고 유인물비로 100만 원 이상 또 걷어가더라”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대형 패키지사 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대형 패키지사 관계자는 마이너스 투어피에 대해 “​패키지사가 강제한 것이 아니다. 랜드사끼리 경쟁하면서 자기들 스스로 가격을 낮춘다. 그나마 동남아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혹은 수요가 줄어든 지역 위주로 수요를 늘리기 위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 협의 과정에서 랜드사가 투어피를 조정해주기도 한다”​며 “​그렇게 주장하는 랜드사를 알려달라. 반박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여행박람회 부스 강매는 “있을 수 없고 오히려 랜드사 부스에 우리 직원을 투입하는 등 인력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런 해명에 랜드사들은 ‘길들이기’라고 주장한다. 랜드사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패키지사는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랜드사가 아니라 ‘말 잘 듣는’, ‘가격을 잘 뽑아주는’ 랜드사를 위주로 여행팀을 보내준다. ‘​랜드사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패키지사의 여러 방침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랜드사 대표 D 씨는 “팀을 계속 받으려면 어쩔 수 없다. ​언젠간 남겠지 하는 심정으로 한다.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여행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왜 한국 여행시장만 아직도 이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떤 대안이 있을까? 몇십 년 여행업을 해온 당사자들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D 씨​는 “패키지사의 갑질도 문제지만 단순 가격비교로 싼 것만 찾는 소비자도 문제가 있다. 랜드사 역시 제살 깎는 가격 경쟁에만 몰두하며 밥그릇 싸움을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미래가 안 보인다. 다들 힘들다, 죽겠다 소리만 한다. 국내 여행업의 문제점이 오랫동안 고착화, 고질화, 세력화되어 있다. 일반 판매자에게 패키지 상품 이외에 수익을 안겨줄 상품군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며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누군가는 먼저 손해를 보더라도 관례를 벗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부도의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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