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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식민지 근대 의학의 빛과 그림자, 대한의원

일제강점기 동양 최고 규모로 탄생, 입구엔 '종두법' 지석영 동상

2018.09.20(Thu) 11:10:38

[비즈한국]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통해 나라 문을 연 후 밀려 들어온 근대의 파도에는 빛과 그림자가 섞여 있었다. ‘외국 군대’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의 발톱이 그림자라면, 종두법으로 상징되는 근대 의학은 조선 민중에게 빛이 되었다. 어떻게든 잘 대접해 그저 목숨만 부지하길 빌었던 ‘마마님’을 주사 한 방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중심에는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이 있었고,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899년 한반도에 최초로 문을 연 의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된다. 

 

그 의학교의 모습이 지금도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병원 안에 남아 있다. 병원 본관 뒤편에 자리잡은 대한의원이 바로 그것이다. 1908년 완공된 대한의원은 지금도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다. 돔 양식의 둥근 지붕을 얹은 네오바로크풍의 시계탑, 르네상스 양식의 벽면,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는 현관 포치 등등. 그리고 정문 오른편에는 조선 종두법의 대명사이자 의학교 초대 교장인 지석영의 동상이 있다. 

 

한반도 최초의 의학교 ‘대한의원’은 서울대학병원 안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 마마야 물렀거라, 지석영 대감 행차시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 국립병원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H. Allen)의 건의를 받아들여 세운 제중원이다. 그 뒤로 고종의 대한제국이 시작되면서 의학교와 새로운 근대 국립병원(광제원)을 설립했는데, 1905년 을사조약으로 들어선 일제의 통감부가 이를 통합해 당시로선 동양 최고의 규모와 수준을 갖춘 대한의원이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대한’이란 이름 대신 ‘조선총독부의원’이 되었고, 1928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된 것이다. 

 

정문 오른편에는 조선 종두법의 대명사이자 의학교 초대 교장인 지석영의 동상이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근대 의학과 병원은 조선 인민에게 빛이었지만, 그 빛은 모든 이들을 골고루 비추지 않았다. 근대 병원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로서는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 건물의 병원에 출입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런 병원은 죽을 병이나 걸려서야 갈 수 있는―사실은 그마저도 힘든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곳이었다. 김유정의 단편 소설 ‘땡볕’에 등장하는 주인공 덕순이처럼, 죽을 병이 걸린 아내를 지게에 들쳐 업고 대학병원에 가서도 비싼 병원비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또 하나, 일제시대 의학교를 졸업한 의사들 대부분이 칼을 차고 진료를 보는 군의관으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지금까지도 일부 남아 있는 의사들의 권위주의가 싹트기도 했다. 우두 접종도 고가였다. 거기다 일부 종두 의사들은 횡포를 일삼기도 했다. 

 

사실 종두법은 지석영이 일본에서 한반도로 ‘처음으로’ 들여온 것이 아니다. 이미 정양용의 ‘마과회통’에도 우두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헌종 때는 종두법의 하나인 인두법(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딱지를 이용한 치료법)이 널리 시행됐다. 조선 정부 또한 우두의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이 조선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고 종두법의 일본 수입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석영 신화’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 실험 동물을 위해 세운 90년 전 위령비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대 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의 동상은 대한의원 입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의원 건물은 2층을 의학박물관으로 꾸며 일반에 개방한다. 1층은 여전히 서울대학병원 사무실로 이용되어 병원 관계자들이 출입하는 탓에 들어가기 조금 망설여지지만, 로비의 안내판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우리 근대 의학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 근대 의학의 풍경들을 전시한 내부 전시실. 사진=구완회 제공

 

첫 상설 전시실에는 근대 의학 도입에 관련된 유물들이 보인다. 광무 11년에 대한의원 교관 명의로 발급된 졸업증서 같은. 광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연호다. 그리고 광무 11년을 마지막으로 고종은 물러나고 다음해부터는 500년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융희연간이 시작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이 중앙에 자리 잡은 대한의원 기념책자, 한글보다 한자가 훨씬 더 많은 의학교 화학교과서, 식민지 시기에 사용되었던 산부인과 의료 기기들도 눈에 띈다.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의 의료 현장으로 이어진다. 1950년대까지 일상에서 널리 쓰이던 고약과 유리병에 담긴 살충제, 1년에 두 번씩의 기생충 검사와 결핵 예방을 독려하는 포스터들은 옛날 기억들을 불러온다. 조금은 뜬금 없지만 소뿔과 경주 남석으로 만든 조선 후기의 안경들도 볼 만하다. 유리보다 온도변화가 적어 여름엔 눈이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최고의 안경으로 평가 받았단다. 

 

2층 전시실을 모두 보고, 들어갔던 정문이 아니라 후문으로 나오면 오른편 구석에 자그마한 돌 비석을 하나 볼 수 있다. 조금 흘려 쓴 한자로 ‘실험동물공양탑(實驗動物供養塔)’이라고 쓰여 있다. 대한의원이 조선총독부의원이던 1922년, 의학실험용으로 쓰인 동물들을 위한 위령탑이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실험용으로 삼았던 엄혹한 시절에 이런 탑이 세워졌다니 조금은 의외란 생각이 든다. 

 

실험동물공양탑을 보고, 다시 한 번 건물 앞으로 가서 르네상스풍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다. 근대 의학의 빛이 실험동물이란 그림자와 함께하듯, 식민지 조선의 근대 의학은 대다수 인민들의 삶과는 유리되었다는 그림자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의원 후문에는 조선총독부의원이던 1922년 의학실험용으로 쓰인 동물들을 위해 세워진 위령탑이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종로구 대학교 101

▲문의: 02)2072-2636

▲관람 시간: 09:00~18:00(토요일 10:00~12:00, 일요일 및 공휴일, 근로자의 날(5/1), 개원기념일(10/15)은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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