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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국제화훼단지는 어쩌다 'P2P 무덤'이 되었나

HN펀딩, 인허가 없이 수익률 30% 내세우며 분양해 피해 잇달아

2018.09.13(Thu) 11:24:06

[비즈한국] P2P 금융(Peer To Peer Finance·개인 간 거래)은 필요한 개인에게 다수의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 빌려주는 크라우드펀딩의 한 종류다. 중개업체는 투자자의 돈을 모아 대출자에게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2015년 첫 등장한 P2P 금융은 투자자에게는 높은 수익률을, 빌려 쓴 사람에게는 비교적 낮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대안금융’으로 각광받았다. 

 

가장 더웠던 올 여름, P2P 투자자들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다. 폴라리스펀딩·오리펀드 등 유명 P2P 중개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두시펀딩·펀듀는 유령상품을 팔다 적발됐다. 

 

당시 피해자들은 6월을 ‘피의 달’로, 금요일은 ‘금요일의 저주’로 불렀다. ‘먹튀’ 사건이 잦았던 6월과 원금 상환을 기다리다 한 주의 끝을 맞이하는 금요일은 악몽 같다는 뜻이다. 9월 현재 먹튀 업체 대표들은 구속되거나 해외로 도피했지만, 피해자들은 구제받을 길 없이 막막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 “투자가 아니라 도박” 투자자들 한숨

 

50대 직장인 A 씨는 올해 5월 친구 소개로 P2P 금융사인 HN펀딩을 알게 됐다. 친구는 이미 세 번이나 쏠쏠한 이자를 받았다고 했다. 마침 여윳돈도 있었다. 온라인 홈페이지엔 ‘단기·고수익’ 딱지가 붙은 담보대출 상품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투자 기간은 두 달. 수익률은 18%. 연 2~3%인 은행금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률이었다. 업체는 경기도 안성에 화훼단지를 조성할 것이며 투자자들의 돈은  화훼 유통자금으로 쓴다고 했다. 

 

지난 5월 HN펀딩 홈페이지에 게시된 안성국제화훼단지 투자 안내. 사진=HN펀딩 홈페이지


​A 씨는 “머릿속이 꽃밭이었다. 나도 꽃길 좀 걸어보자”며​ 2200만 원을 투자했다. 상환일은 7월.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자 역시 첫 달 나온 뒤 더는 소식이 없다. A 씨는 업체 대표에게 메시지와 전화도 여러 번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직접 강남의 사무실을 찾았지만, “예약하고 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며칠 뒤 ‘전 상품 연체’라는 전체 공지 문자를 받았다. 그는 “​꽃밭이 무덤이 돼버린 심정”​이라고 했다. 

 

8월이 되자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안성시, 안성국제화훼단지 허위 분양 주의 당부’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해당 부지는 농림지라 시의 허가 없이 증축과 상업시설 분양 임대가 불가능한 땅이었다. 안성시는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했다. 

 

A 씨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P2P 투자를 시작할 때 다른 업체에서는 이자랑 원금이 꼬박꼬박 들어왔다. 그래서 믿었다. P2P 업체들은 리워드 제도로 고객 유치를 한다. 투자액에 비례한 금액을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주는데 리워드가 높은 상품엔 투자자들이 몰린다. 안성국제화훼단지 건은 기본 16%에 리워드와 추가 수익률까지 합해서 수익률 30% 상품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제신문에서 P2P 금융을 접했다는 30대 직장인 B 씨도 HN펀딩을 통해 4월 안성국제화훼단지 조성사업에 투자했다. 월급을 쪼개 모은 돈 500만 원은 하우스 시설 공사비용으로 쓰였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해외에 거주 중인 C 씨는 ‘고고단(고금리·고리워드·단기)’에 혹해 적금을 깼다. P2P 금융사 세 곳에 분산투자할 정도로 나름 안정 추구형 투자자였다. C 씨의 피해금액은 1400만 원이다.   

 

HN펀딩은 안성국제화훼단지 투자 시 2개월 만에 18% 예상 수익률을 올릴 것으로 안내했다. 사진=HN펀딩 홈페이지

 

# 국내 최대 화훼단지? 인허가 없이 불법 분양

 

6월 27일 개장한 안성국제화훼단지는 인허가를 받지 않은 채 분양을 실시했으나, 불법 분양 논란에 안성시가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뒤 모든 임대 분양을 중단한 상태다. 한 화훼동호회 커뮤니티에는 안성국제화훼단지를 다녀온 회원이 ‘땅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큰데, 대부분 텅텅 비어 있었다’는 후기가 올라 있다. 화훼집하장부터 유통, 조경, 재배시설에 관광을 망라한 복합문화공간의 탄생을 기대했던 자리엔 비닐하우스만 황량하게 남았다.

 

안성국제화훼단지의 조감도와 현재 모습. 사진=HN펀딩


‘불법 분양’기사가 나온 지 이틀 만인 7월 5일 안성국제화훼단지 측은 정식으로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비즈한국’이 9월 10일 안성시에 문의한 결과, 안성시 관계자는 “화훼단지 개발허가신청은 8월 23일에 접수됐으며, 서류 및 계획서에 보완이 필요해 최종 심의까지 두 달은 걸린다”는 답변을 받았다.

 

HN펀딩이 밝힌 안성국제화훼단지 펀딩 규모는 15억 원이다. 총 26회에 걸쳐 투자자를 모집했으며 회당 모집금액은 5000만 원이 20회로 가장 많았고, 1억 원이 3회, 1억 5000만 원이 1회, 2500만 원이 2회다. 투자기간은 4개월이 20회, 2개월이 6회였다. 정확한 피해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항의에 HN펀딩은 9월 6일 간담회를 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HN펀딩의 임원은 “나는 전 대표의 횡령으로 작년 10월부터 누적적자가 10억 원인 상태에서 안성국제화훼단지 회장에게 약 30억 원 사기를 당한 사람”이라며 “적자만 40억 원이 넘어 현재 상환할 재원이 없다. 추후에 밀린 순서대로 돈을 지급하겠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우리는 차주에게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 사람들이다” “엄연히 다른 상품에 투자했는데 밀린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상환한다니 웃긴다” 등 실소를 터뜨렸다. 

 

간담회에서 HN펀딩​ 임원은 해결책으로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제주도 부지를 매입해 타운하우스를 지어 발생하는 지가상승분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40억 원 적자라면서 토지 매입비는 어디서 충당하나”라는 질문에 이 임원은 “투자자가 직접 조합원이 되면 시간이 단축된다”고 답했다. HN펀딩은 공지문을 통해 ‘고액투자자 100명이 필요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간담회 참석자들이 HN펀딩의 상환 계획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현장에서는 “결국 또 투자를 하라는 소리와 뭐가 다르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또 다른 피해자는 자신은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 사람’이라며 자책했다. 반면 온라인에는 ‘먹튀는 아닌 것 같으니 기다려보자’, ‘이렇게 해서 원금이라도 받고 싶다’ 등 회사를 믿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비즈한국’은 HN펀딩의 입장을 듣기 위해 10일 관계자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으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직원들이 많이 그만둬서 고객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 ‘자율규제안’ 만든다지만 강제성 없어

 

유명 P2P 금융사들의 먹튀 사건 이후, 업계 내부에서 자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일 디지털금융협회 준비위원회는 ‘P2P 금융 자율규제안’을 발표해 업체가 파산해도 투자자들의 자산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자율규제안에는 P2P 금융사의 대출자산 신탁,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30% 한도 설정, 투자금과 상환금 보호 확장, 감사 기준 강화, 가이드라인 제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 P2P 금융 종사자는 “가이드라인은 지침일 뿐 법이 아니다. 강한 ‘권장사항’ 정도다. 디지털금융협회 준비위에 속한 회사 수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렌딧, 팝펀딩, 8퍼센트를 포함해 10곳 내외”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A 씨는 “얼마 전 HN펀딩 전 직원이 서류를 포토샵으로 조작했다는 내부고발을 한 덕분에 나를 포함한 투자자들이 살았다. 회사가 작정하고 속이면 아무도 모른다. 예방만큼 처치도 중요하다. 자율규제안이 아니라 P2P 금융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희주 인턴기자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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