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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미중 무역분쟁에 한국 등 터질라

한국 곡물자급률 세계 최저 수준…불똥 튀어도 대책 없는 상황

2018.09.12(Wed) 10:16:45

[비즈한국]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진영은 자유무역에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기반으로 집권한 트럼프가 이끌고, 다른 한쪽은 막 일인집권체제를 완성한 시진핑이 이끌고 있다. 덩어리 큰 세력 둘의 충돌이라 관성이 커서 서로 쉽사리 물러날 수 없을 듯하다. 그들의 세계 경영 전략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든 지도자의 비틀린 심사 탓이든 과정이 변화무쌍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미국은 상품의 구매자이면서 보유 원천기술이 많으므로 초반에 고자세를 유지할 것이고, 중국은 자신들이 수입하는 농산품 등 품목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저항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양측에서 비교 우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손해를 볼 것이고, 열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것이다. 한편 거래량이 잠시 줄어들더라도 기술에 비교 우위를 가진 분야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중의 무역 분쟁은 제3의 약자인 한국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사진=AP/연합뉴스

 

문제는 ‘부유하지 않은’ 소비자들이다. 중국의 값싼 제품을 주로 소비하는 미국의 중산층 이하 소비자, 미국 농산품을 소비하는 중국의 소비자들의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든 당사자들은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주위 국가는 어떤가? 결과야 어떻든 싸움이 빨리 끝나지 않는다면, 한국은 엄청난 충격파를 감당해야 할 전망이다. 중국과 미국은 한국의 제1, 2 무역 파트너다. 우리는 타격을 입으면서도 분쟁에 직접 개입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양 강이 보인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건대, 더 우려되는 것은 양자가 힘겨루기를 하다 분노의 화살을 제3의 약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무역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디딜 발판이 하나도 없다. 국가든 개인이든, 버티기 상황에서 최후에 믿을 것은 먹을 것과 장작(에너지)이다. 우리는 농산품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국과 달리 수입하지 않으면 당장 국민이 굶는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사료용을 포함하면 약 25% 미만, 제외하면 50% 미만이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 자료를 기준으로 자급률을 계산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두세 번째라 한다. 

 

100년 전이라면 국가의 자격도 못 갖춘 셈이다. 그나마 칼로리를 채워주는 과일과 채소, 농산물 가공품 역시 어느 것 하나 자급하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인간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지구도 반란을 일으키고 있어, 세계적인 농산물 생산량도 들쑥날쑥하다. 

 

국가를 운영하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필자는 이 부분을 생각하면 가끔 식은 땀이 난다. 사료를 읽으면서 먹을 것이 없어 “서로 잡아먹었다(人相食)”는 구절을 심심찮게 본다. ‘여씨춘추’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나라 사람들이 장평(長平)을 포위했을 때, 포위당한 세 나라 귀인들과 장정들도 모두 의기 있고 강건했지만, 배고프니 서로 잡아먹었다. 약한 이들이 엎드려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지만, 병사들을 기어이 차례로 서로 잡아먹었다.’ 그 사람들이 도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건만, 배고픔이 그렇게 만들었다. 

 

옛날 관중이 나라 간에 분쟁이 있어도 국경을 가로지르는 강을 막지 말고 곡식 수출입을 방해하지 말자고 조약을 맺어, 공자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니 조약까지 맺은 것이다. 그 조약이 있어도 싸움만 벌어지면 식량 공급선을 끊는 것이 중국 일선사령관들의 제1 과제였다. 굶기기의 달인은 아마도 중국인들이 전신(戰神)으로 추앙하는 조조(曹操)일 것이다. 

 

근래 미국이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패권을 위해서는 자기 국민의 복지도 뒷전에 두는 듯한데, 타국 백성의 뱃속까지 헤아려 줄 것인가?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는 주나라 문왕(文王)은 천하의 민심을 얻고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 하니, 이것이 작은 나라 최고지도자의 정상적인 태도일 것이다.

 

쌀만 100%에 가까울 뿐,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50%도 되지 않는다. 사진=이종현 기자

 

한국의 농산품 가격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급률이 워낙 낮으므로 적정 유통량 수준에 달하지 못해서 가격이 높아지는 경향, 유럽(EU 평균 1만 달러)이나 미국(1만 달러 이상)처럼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지원받는 나라들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착시현상(한국 1000달러 이하), 대도시에서 소비될 때 도시의 엄청난 지대로 인한 가격 상승 등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스위스나 북유럽 국가들처럼 수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불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강대한 농산물 대국이 보조금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이 시각에도 농지는 줄어들며,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요동치는 가격에 울고 농민들은 가난에 운다. 

 

사실 필자에게도 뾰족한 답이 없다. 불확실성은 커져만 가는데 무심한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으니 걱정만 앞선다. ‘10년 쓸 곡물이 없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고 관중이 말했다는데, 관중을 배출한 저 대륙이 수 틀리면 이 나라를 나라로 보지 않을까 자못 두렵다.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 수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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