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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독일의 학교는 늘 '슐튜테'처럼 달콤했다

입학식은 축제, 수업은 놀이…7~8시간 수업에도 지루할 틈 없어

2018.08.24(Fri) 10:21:47

[비즈한국] 독일은 바야흐로 입학 시즌. 지난해 이맘때쯤,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학교 담당자와 나눈 마지막 이메일에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슐튜테, 잊지 마시고요!” 슐튜테? 슐튜테가 뭐란 말인가! 초록 검색창에 ‘독일 슐튜테’라고 검색하니 독일에서 초등학교 입학식을 경험해본 엄마들의 후기가 쏟아진다. 

 

입학식에 들고 갈 슐튜테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었다느니 슐튜테 안에 넣을 사탕과 과자, 선물을 샀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와 함께, 베를린 거리 곳곳, 백화점이나 쇼핑몰 곳곳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고깔 모양의 종이로 된 콘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학교에 첫 입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 선물로 준다니,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긴장되는 ‘입학식’을 조금은 즐겁게 만드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됐다.

 

고깔 모양의 종이로 된 콘 형태인 슐튜테는 입학의 상징이다. 아이들은 학용품, 사탕과 과자, 초콜릿 등이 들어 있는 슐튜테를 선물로 받는다. 사진=박진영 제공


입학식 당일, 학교에 가니 아이들 모두 커다란 슐튜테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기념촬영을 할 때도, 강당에서 호명을 받고 무대 위에 오를 때도, 각자의 교실 투어를 갈 때도 아이들은 종일 슐튜테와 함께했다. 식이 끝나고 각자 교실로 모여든 아이들은 슐튜테 속에 들어 있던 사탕과 과자, 초콜릿 등을 꺼내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인사를 했다. 달콤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 슐튜테를 들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에게는 입학식이 즐겁기만 했다.

 

그로부터 6개월 전, 한국에서의 입학식이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이미 입학을 경험한 아이와 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특별하지 않다. 잔뜩 긴장한 채로 학교에 갔던 것, 각자 이름표를 달고 국민의례부터 선생님 소개, 교장 선생님 말씀, 학교 위원 소개 등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순서를 끝내고 교실로 갔다는 것, 그나마 담임선생님이 준비해놓은 백설기를 나누어 먹던 순간에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고 불만이었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러할 테고, 우리가 경험했고 들어왔던 입학식의 보편적 풍경이 그러했으니. 다만, 입학식 자체의 분위기만으로도 ‘이제 너희들은 유치원생이 아니야’ ‘학교는 노는 곳이 아니야’ ‘규칙과 규율은 중요해’ 등의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초등학교의 미술실 풍경. 학년별로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슐튜테 이미지로 대표되는 독일의 입학식은 신입생, 재학생, 학부모와 친인척, 교사들이 함께하는 축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후반부터 슐튜테 전통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전쟁과 같은 위기에도 이 전통은 유지됐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슐튜테는 경건하고 긴장되고 지루할 수 있는 입학식을 위한 ‘달콤한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와 온 가족이 새 출발하는 날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란다. 부모와 형제자매 정도만 참석한 동양인 가족들과 달리, 독일 가족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며 이모 고모 삼촌으로 추정되는 친인척들이 잔뜩 차려 입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그 집 아이가 귀한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바로 ‘독일식’이었던 것이다.

 

즐겁고 설레던 입학식 분위기는 학기 내내, 1학년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아침 8시에 시작해 오후 3시까지 무려 7시간이나 이어지는,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참으로 긴 수업시간을, 아이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들에 대해 재잘거렸다. 쉬는 날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했고, 긴 방학을 지루해했다. 

 

하루 종일 슐튜테와 함께하는 독일 초등학교 입학식은 아이와 가족 모두에게 축제이자 파티다.  사진=박진영 제공


처음에는 국제학교라는 특수성과 외국 학교 분위기를 처음 경험해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 여겼다. “매일매일 놀아”라고 말하곤 했던 아이의 말마따나 ‘매일 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2학기 초반, 아이가 ‘미니 티처’가 돼 부모들에게 학교 커리큘럼을 직접 소개해주고 학교 투어를 시켜주는 프로그램을 경험해보니, 공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공부를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독일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일제 학교를 다니는 주변의 아이들은 무려 오후 4시까지, 하루 8시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는데도 학교에 가는 것 자체를 즐거워한다고 했다. 독일은 주별, 학교별 수업체계가 다른데,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오후 3~5시에 마치는 전일제 학교가 대폭 늘어 많은 아이들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얼마 전, 또래 한국인 엄마들과 ‘수업시간 연장’이라는 한국 초등교육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린다는데, 이곳의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저학년들은 오후 2~3시까지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학교가 늦게 끝나면 학원 보내기도 힘들다’ 등의 반대 의견과 ‘9시에 시작해 12시에 끝나는 건 너무 심하다’ ‘오후까지 학교에서 책임져준다면 일하는 엄마들은 좋지 않을까’ 하는 찬성 의견 등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수업시간 연장에 ‘찬성’이다. 다만, 한국의 교육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만 생각해보니 ‘반대’를 하는 엄마들의 입장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힘든 곳이고, 사교육을 통해 공교육을 보완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아닌지. 수업이 즐겁고 학교생활이 기대되는 행복한 교실이 된다면, 누구나 수업 시간 연장을 반기지 않을까. 

 

며칠 뒤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년 1학기가 시작된다. 아이는 누구와 같은 반이 될지, 담임선생님은 누구일지, 1년 전 슐튜테를 들고 입학식을 가던 그날처럼 들떠 있다. 정규 수업시간이 끝난 후에는 어떤 방과후 수업들을 하고 싶은지도 미리 정해두었다. 즐거운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 그 옛날 개학을 앞두고 내가 느끼던 감정과 너무 다른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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