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칼럼에서 일상적 소비와 비일상적 소비의 차이, 그리고 인간은 상품 단위로 예산안을 달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비용형 예산과 소비형 예산을 적용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역에 따라서 같은 상품이라도 가치를 달리 평가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분위기와 인테리어의 문제로 설명하기도 한다. 소비형 예산을 설정하는 비일상적 소비 지역들은 가게들이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잘 꾸민 데 반해 비용형 예산을 설정하는 동네의 가게들은 인테리어도 분위기도 형편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인테리어만 바꾸면 동네의 가게라도 사람들이 비용형 예산에서 소비형 예산으로 전환할까?
그렇진 않다. 사람들은 상품 단위로 소비 형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점포 단위로도 구분하기 어려워하며 대체적으로 지역을 기준으로 삼곤 한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에서 익선동과 을지로는 사람들이 낡고 오래된 느낌 때문에 찾는다고 하는 곳이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동네 인근의 낡은 곳들은 찾지 않는다. 똑같이 낡았지만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인테리어와 분위기 같은 요소는 어떠한 부분에선 소비자들이 소비형 예산 지역의 높은 가격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명분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실물경제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일상적 소비가 중심이 되는 일상 지역은 비용형 예산이 적용되기에 비싼 상품이나 서비스의 소비는 기피되며 같은 상품이라도 적정 가치를 더 낮게 매기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집 주변이나 동네 같은 일상적 소비공간은 가격 중심의 저가형 비즈니스가 중심이 된다.
비일상적 소비가 중심이 되는 비일상 지역은 소비형 예산이 적용되기에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로운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한다. 따라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차별화가 받쳐준다면 일상적 소비공간에 비해서 충분히 더 지갑을 열고자 한다. 따라서 이런 지역은 품질이 가치평가에서 우선되기에 비교적 고가형 서비스라도 가능하다.
이를 고려하면 어떤 지역에 어떤 비즈니스가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품질과 차별화 우선의 상품과 서비스는 일상 지역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또 조심해야 하는 점이 비일상 지역에서 가격 우위로 흥한 비즈니스다. 이러한 비즈니스가 일상 지역으로 오는 경우 고전하기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추로스다. 비일상 지역에선 특이하기도 하고 보이는 김에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격 부담도 낮지만, 일상 지역에선 우선순위가 크게 하락하고 가격도 비일상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진다. 관광지에서 흥한 아이템들이 서울지역으로 오면 고전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며 점포 확장이 어려운 것도 이러한 문제에서 비롯된다.
상업 부동산도 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비일상 지역은 일상 지역보다 사람들이 쓰는 비용이 높기에 더 높은 임대료를 기대할 수 있다. 뜨는 상권에서 발생하는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도 저평가된 일상 지역이 비일상 지역으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가치의 재평가 과정’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가격 중심의 비즈니스였던 쌀집, 세탁소 등이 파스타를 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되고 술을 파는 펍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떠한 지역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출 성향을 보인다. 그렇기에 일상 지역과 비일상 지역으로 상권과 공간을 구분해서 보는 것은 비즈니스와 상가, 상권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 유동인구라는 단일 요소가 아닌 이러한 관점으로 지역과 공간을 바라보자.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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