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더운 날씨로 인해 맥주를 많이 찾게 되는 계절이다. 그런데 맥주를 마시러 펍이나 호프 등에 가면 재미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가게에서는 사람들이 한 잔에 5000~8000원 정도 하는 맥주를 거리낌 없이 마신다. 그런데 정작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다들 손이 작아진다. 한 병에 5000원 하는 맥주는 바라보기만 하며 4캔 묶음 행사 맥주 근처를 서성인다. 어째서 우리는 같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른 기준을 매기는 것일까?
마트를 방문할 때와 펍이나 호프 등을 방문할 때에 우리가 갖는 마음가짐은 서로 다르다. 마트는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펍이나 호프는 생활에 꼭 필요한 곳은 아니다. 바로 이 차이가 마트와 펍을 찾을 때 서로 다른 심리적 예산을 적용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긴 하나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칫솔이나 휴지를 사는 데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생활을 위한 비용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일상적 소비는 돈을 써도 별로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비용이기에 사람들은 가급적 이를 줄이려고 하고 이 때문에 생활 환경과 인접한 곳에서는 심리적으로 예산을 빠듯하게 잡는다. 이를 ‘비용형 예산’이라고 하자.
반면 비일상적인 소비는 비용이 아닌 즐거움을 주는 소비로 인식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에 따라 비일상적인 소비를 할 때는 심리적으로 예산을 느슨하게 잡아둔다. 그래서 비일상적인 소비에는 일상적인 소비보다도 더 많은 돈을 너그럽게 쓴다. 이를 ‘소비형 예산’이라고 하자.
바로 이러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회사에서 먹는 7000원짜리 점심을 비싸다고 하면서도 술값으로는 몇만 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며, 공부할 땐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던 사람도 커피와 디저트에는 1만~2만 원은 우습게 쓸 수 있는 것이다. 회사와 학교에서 먹는 점심에는 비용형 예산이 적용되고, 술값이나 커피, 디저트에는 소비형 예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처음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펍이나 호프에선 7000원짜리 맥주도 어렵지 않게 마시던 사람이 왜 마트만 가면 만 원 묶음 행사 맥주부터 찾는 것일까? 마트는 주로 생활에 필요한 상품들을 사기 위해 찾는 곳이다. 즉, 비용형 예산을 편성하고 방문한다. 비용형 예산의 타이트한 범위에서 상품을 고르기에 소비형 예산을 가지고 방문하는 펍이나 호프에서보다 가격에 대한 기준선이 더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맥주 자체는 비일상적인 소비품이다. 맥주가 반드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상품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상품별로 비용과 소비형으로 예산안을 다르게 설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소비하는 장소에 따라 비용형, 혹은 소비형 예산을 편성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활 환경에 가까운 곳에서는 비용형 예산을, 생활 환경에서 먼 곳에서는 소비형 예산을 편성한다.
이는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라 하더라도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잣대와 다른 가치를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 입지와도 연관된다.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진행 중인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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