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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내한공연 마이크 나갔을 때 켄드릭 라마의 반응은?

막힘 없이 이어가며 "당신 자신 위해 호응하라"…완벽하지 않은 환경에서 완벽한 랩

2018.08.13(Mon) 10:48:36

[비즈한국] 여름이지만 바람 부는 날이었습니다. 관중들은 단 한 명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래퍼, 켄드릭 라마였습니다. 폭발적인 공연을 이어가던 순간 ‘뚝’ 하고 마이크가 꺼졌습니다. 이날만 두 번째 마이크 고장입니다. 라마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습니다. 팬들 또한 분위기가 식었습니다. 싸한 정적만 흘렀습니다. 힙합의 제왕은 이후 어떻게 무대를 꾸렸을까요?

 

켄드릭 라마는 현재 가장 뜨거운 래퍼입니다. 빌보드 1위 곡 ‘험블(Humble)’을 발표하고,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사운드 트랙으로 연달아 성공한 최고 팝스타기도 합니다. 드레이크와 함께 현재 흑인 음악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죠.

 

켄드릭 라마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현대카드 제공


7월 30일, 그가 한국에 왔습니다. 보통 팝스타, 그중에서도 래퍼는 전성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이 힙합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죠. 제이지, 에미넴 등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전성기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 라마가 전성기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이 ‘팝스타 공연 시장’이라는 시장이 생긴 덕분이 가장 클 겁니다. (현대카드는 켄드릭 라마 이후 샘 스미스의 내한공연을 합니다.) 또 한국에서 힙합 음악의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 힙합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켄드릭 라마의 이름을 모르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켄드릭 라마는 힙합에서 특별한 이름입니다. 압도적인 완성도와 흥행력을 갖췄기 때문이죠. 그는 집착이 느껴질 정도로 치밀하게 가사를 씁니다. 더 쪼개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테크닉으로 리듬을 쪼갭니다. 리듬 구조도 매우 복잡합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배경지식도 역사부터 대중문화, 예술, 성서까지, 이보다 다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레퍼런스를 담았죠.

 

‘복잡함’ 때문에 그에 대한 호불호도 갈립니다. 래퍼 더콰이엇은 자신은 심플한 걸 좋아한다면서 지나치게 화려한 테크니션인 켄드릭 라마가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래퍼 스윙스처럼 ‘칼 루이스가 나와서 압도적으로 이겨버리니까 랩으로 경쟁하기 싫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복잡함, 사회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소위 ‘골치 아픈’ 가사로 ‘팝스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켄드릭 라마처럼 의식 있는 주제로 복잡한 구조의 가사를 외치는 래퍼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런 래퍼 중 켄드릭 라마처럼 당대의 ‘팝스타’가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보통은 아이돌로 성공하고, 이후 사회적인 음악을 하면서 조금씩 인기가 떨어지게 되죠. 음악도 초기에 단순하고 쉬운 팝이 성공하고, 복잡하고 테크닉 비중이 높을수록 인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틀즈마저 그랬죠. 켄드릭 라마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저 또한 그 놀라운 완성도를 통해 켄드릭 라마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뮤지션 ‘정준일’이 좋아하는 래퍼라며 라디오에서 추천해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메이저 데뷔 앨범은 미국에서 문학 수업에 쓰일 정도로 어려우면서 힙합 음악의 매력도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서사시에 가까워지고, 음악도 힙합보다는 정통 흑인 음악에 가까운 2집을 들으며 켄드릭 라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바마 시대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혼란스러운 소수인종의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은 듯한 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켄드릭 라마는 주로 3집 위주로, 1집과 2집의 대표 히트곡을 모두 쏟아냈습니다. 압도적인 랩 스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디오 음원을 듣는 것 같은, 그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듯한 박자 감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집 등 초기 곡을 할 때는 라이브에서의 ‘터진 발성’ 덕분에 음원보다 완성도가 뛰어난 랩을 보여줬습니다. 칼 위에서 춤을 추는 묘기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라이브 세션 또한 재즈 음악 못지않은 압도적인 테크닉의 연주로 라마에 화답했습니다.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일까요? 공연은 1시간 조금 더 할 정도로 짧았습니다. 한국 공연만 그런 게 아니라, 세트 리스트를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공연이 러닝타임이 짧았습니다. 완성도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작하기 어려운 이치와 비슷한 걸까요? 팬들 입장에서 아쉬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듯 끝나는 게 더 좋게 남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2집 타이틀곡인 ‘아이(i)’를 안 부른 건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공연에서도 최근 이 곡은 라이브 세트에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켄드릭 라마 콘서트를 보면 이 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네요.

 

켄드릭 라마의 SNL 라이브 공연 ‘​스위밍 풀스(Swimming Pools )’​.

 

두 번 마이크가 갑자기 꺼지는 음향 사고가 있었습니다. 완벽주의자인 켄드릭에게는 짜증 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주최 측은 내부 스태프의 문제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래핑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순간 마이크가 꺼져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그 순간에도 켄드릭 라마의 기술은 빛났습니다. 소리가 꺼지다가 다시 마이크가 나오자 ‘바로 그 부분’부터 막힘없이 랩을 이어갔습니다. 노래보다 훨씬 더 가사 구조가 복잡한 랩은 그냥 불러도 가사를 까먹을 수 있는데, 마이크가 다시 켜지는 그 순간부터 막힘없이 랩을 이어가는 켄드릭 라마의 기술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달리 역대 ‘최강’의 랩 테크니션이 아니었습니다.

 

켄드릭 라마의 ‘위기관리’ 능력도 돋보였습니다. 그는 두 번 마이크가 꺼진 다음에 관객에게 “당신 자신을 위해 호응해달라”며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덕분에 후반부에는 다시 불타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솔직함이 돋보이는 말이었습니다.

 

켄드릭 라마의 ‘백스트리트 프리스타일(Backstreet Freestyle)’ 라이브 공연. 모든 가사를 따라하는 청중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관객에겐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했습니다. 맨 앞줄은 ‘팝스타의 공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켄드릭 라마의 팬보다 더 많았던 듯합니다. 켄드릭 라마는 팬들을 위해 복잡한 구조의 가사를 팬들에게 같이 불러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공연 카메라에 잡힌 앞줄이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습니다. 팝보다 구조가 복잡한 랩이라 어렵기는 했겠지만요. 대신 맨 뒷줄까지 전체적인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켄드릭 라마 같은 ‘​현재 이 순간 최고의 힙합 스타’​의 공연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국 시장은 중요도가 떨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팝스타 내한공연 시장이 생겼습니다. 팝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시장이 커지면서 앞으로 더 많은 스타의 내한공연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모든 일처럼, 공연을 즐기는 일에도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공연은 공연 기획자부터 음악 팬까지, 많은 이에게 더 재미있게 다음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았던 환경에서도 완벽한 랩을 보여준 힙합 제왕, 켄드릭 라마 내한공연 후기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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