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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티아고 6] 걷고 쉬고 먹고 자고, 그러다 불쑥…

사흘째, 순례자라는 단어가 익숙해지자 언어도, 인종도, 나이도 사라지다

2018.08.11(Sat) 22:43:25

[비즈한국] 항상 아침이 문제다.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처음인 듯 새로웠다. 자는 동안 말랑말랑해진 발이 신발에 적응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대개 한 시간쯤 걸어야 제 걸음을 찾았다.

 

급할 이유는 없었다. 힘들면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자 걸음에 여유가 생겼다. 밤마다 일정을 뒤엎고 다시 짜던 일도 관뒀다. ‘내 일정’이라는 노트북 속 파일 이름 앞에 수정의 ‘수’ 자가 여덟 번 정도 붙었다가 멈췄다. 한결 가벼웠다.

 

팜플로나를 나서는 길. 항상 아침이 문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발이 아프다. 사진=박현광 기자

 

생장에서 함께 출발했던 영하 형님과 큰형님. 전날 저녁 함께 한국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형님들은 “너 왜 아직 여기 있어? 빨리 걸어서 못 볼 줄 알았더니”라며 놀림과 위로 사이를 오가며 날 토닥였다.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이던가요? 빨리 간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길도 아닌 걸요.”

 

능글맞은 웃음을 그리며 받아쳤다. 이튿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새벽에 출발하며 “도착지에서 보자”고 했던 말은 모른 체했다. 많이 컸다. 

 

사흘째였다. 걸을수록 하루는 점점 단순해졌다. 걷고, 쉬고, 먹고, 잤다. 잠들기 전 다음 마을까지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살폈고,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어디서 쉴지를 정했다. 지도를 펼쳐 우리가 넘어야 할 언덕이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허벅지에 전해질 고통이 얼마나 클지를 걱정했다.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잘 쉬는 것이다. 순례자는 수시로 휴식을 갖는다. 사진=박현광 기자

 

다음 알베르게에 부엌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식재료를 사서 어떤 음식을 해먹을지를 정했다. 그게 아니면 주위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검색하거나 수소문했다. 삶의 고민은 점점 원초적으로 바뀌었다.

 

순례자는 자신만의 ‘걷기 노하우’를 다른 순례자와 공유했다. 가령 누구는 쉴 때마다 발에 바세린을 바르라고 했다. 발과 신발 마찰을 줄여줘 물집이 안 난다고 했다. 누구는 양말을 두 겹 신으라고 했고, 누구는 깔창을 두 개 이상 깔라고 했다. 물집이 없다는 건 카미노에선 자랑 아닌 자랑이었다.

 

평소라면 관심도 없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주제를 두고 반복적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면서도 대화를 이었다. 마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것 같았다. 카미노를 떠나 일상에 복귀했을 때 느낄 공허함을 벌써 걱정이라도 하듯이.

 

삶이 단순해지니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모든 걱정이 사라지진 않았다. 문득문득 ‘속세’의 질문이 날아오곤 했다.

 

“근데 우리 이래도 되나. 주위 친구들은 다 취직했는데.” 

“에휴….”

 

페르돈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 삶이 단순해지면 고민도 단순해진다. 하지만 가끔 불쑥 불안감이 찾아오곤 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함께 걷던 ‘백자매 언니’ 선주도 한숨을 뱉었다. 선주는 나이가 같아 고민이 비슷했다. 고개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페르돈 언덕으로 이르는 길은 남의 속도 모르고 끝없었다. 페르돈 언덕은 경사가 가파르진 않지만 정상까지 꾸준히 걸어 1시간 정도 걸리는 구간이다. 만만치 않다.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있을 만큼 바람도 강하다.

 

때는 5월 말. 밀밭이 점점 황금빛으로 익어간다. 사진=박현광 기자

 

“너는 못을 박은 거야(Youve nailed it).”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중에 존 아저씨를 만났다. 영국 브라이튼에서 온 그는 은퇴 후 매년 아내에게 ‘허가’를 받고 한 달쯤 홀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못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을 때 망치를 가지고 쾅 하고 눌러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져? 못이 쏙 들어가서 딱 맞춰지지. 영국에선 누군가 옳은 일을 밀고 나갔을 때 이 표현을 써.”

 

‘여행하고 있지만 불안하다’는 내 푸념을 들은 존 아저씨가 말했다.

 

가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주위 친구들이 직장을 잡고 커리어를 시작해서 네가 불안할 거야.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네 친구들은 지금 네가 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나이가 들고 하는 건 의미가 달라. 내가 산증인이야. 넌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자, 네 앞에 펼쳐진 걸 봐봐.”

 

존 아저씨는 몸을 젖혀 주위를 둘러봤다. 페르돈 언덕으로 이어지는 외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줄을 이어 걷고 있었다. 언덕을 오를수록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밀밭이 반짝였다. 

 

“정말 그럴까요? 누구는 내 나이 때 여행하라고 하지만 누구는 내 나이 때 좋은 직장을 잡으라고 하는데요?

 

존 아저씨는 방긋 웃어 보이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언덕 정상을 앞두고 작은 쉼터가 나왔다. 벽에서 손가락만 한 PVC 파이프를 타고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가 거의 다 벗겨지고 덩치가 조금 있는 중년 아저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앞에 멈춰 섰다.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았다. 입을 갖다 대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날 바라보며 찡긋하며 말했다. 

 

“인생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지 뭐야.”

 

물 한 모금에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걷고 있었다. 볕이 따가웠다. 점점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페르돈 언덕은 바람의 언덕이라고 불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분다. 순례자는 정상에 설치된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페르돈 언덕을 지나면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그리 힘들지 않다. 마을에 가까워지니 종탑이 멀리서부터 우릴 반겼다. 순례 길을 걷다가 나오는 크고 작은 마을엔 빠짐없이 성당이 있다. 중세의 순례자에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특히 길을 걷는 순례자를 위해 발달한 도시다. 아르가 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알베르게와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 다리가 있는데, 중세엔 정부가 통행세를 받았다고 한다. 마을 이름을 딴 푸엔테 라 레이나 다리는 카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이 마을에서 저녁을 보내다 보면 마흔 번의 종소리를 듣게 된다. 당황할 필요 없다. 중세 때부터 전해져 온 전통이다. 밤이 되어 문을 닫을 예정이니 마을 밖 순례자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알림이라고 한다.

 

순례 길을 지나다 보이는 크고 작은 마을은 모두 성당을 가지고 있다. 순례자는 성당에 들러 순례 도장을 찍거나 기도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양말을 벗으니 양발에 물집이 다섯 개였다. 저녁을 해치우고 물집 ‘수술’에 들어갔다. 바늘에 실을 연결해 물집을 관통한다. 바늘만 빼내고 실은 그대로 둔다. 물집 안에 있던 진물이 실을 따라 빠진다. 물집이 있던 자리는 굳은살로 변한다. 내가 써본 방법 중 효과가 가장 좋았다.

 

“Blisters?!”

 

선주가 식당에서 수술을 집도했다. 누군가 다가와 물집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여기 물집 수술 중이야”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카미노에서 처음 배운 영어 단어가 물집(Blister)이다. 물집은 800km를 걷는 순례자에게 최대 관심사다. 다들 신기한 듯 ‘물집 수술’을 지켜봤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것처럼 표정이 뜨악했다. 대부분 서양인은 물집이 생기면 세컨드 스킨이라고 부르는 재생밴드를 붙이고 만다.

 

멕시코 청년, 존 아저씨, 미국에서 온 피부 검은 남자 선교사, 일본어 전공인 스웨덴 여자 교수 등 다양한 사람이 둘러앉았다. 선주가 바늘을 물집에 밀어 넣을 때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비비 꼬았다. 자연스레 물집을 주제로 이야기꽃이 폈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세로로 길게 생긴 마을이다. 멀리 보이는 종탑에서 밤마다 마흔 번의 종을 친다. 마을 밖 순례자를 불러들이기 위함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여러 인종이 모이면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언어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통역하느라 바빴다. 존 아저씨가 영어로 말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스페인 사람이 영어를 모르는 멕시코 청년에게 스페인어로 통역했다. 일본어 전공인 스웨덴 교수가 영어로 한 말을 내가 잘 못 알아들으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선주가 일본어로 그녀와 소통해 한국말로 바꿔줬다. 멕시코 사람이 말하면 스페인 사람이 더듬거리며 영어로 통역했다. 

 

어설프지만 결국엔 의미가 통했다. 말이 섞이다 보면 모두가 다른 내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됐다. ‘blisters(물집)’, ‘needle and a piece of cotton(바늘과 실)’, ‘done(끝)’ 정도면 모두가 핵심을 다 알아듣고 깔깔댔다. 존 아저씨가 말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가장 좋은 게 뭔 줄 알아? 이 길 위에선 모두가 똑같다는 거야. 언어도, 인종도, 나이도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은 순례자가 되는 거야. 이토록 순수한 관계를 맺어본 적 있어?”

 

카미노에선 인종도, 언어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순례자라는 말 아래서 동등해진다. 사진=박현광 기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행하면서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동양인으로서 자연스레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건 처음이었다. 마음속 경계가 온전히 없어지고 있었다. 

 

해질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칼새 떼가 종탑 근처를 배회했다. 순례자에게 은혜 입은 칼새가 종을 때리는 착각이 들었다. 어색했던 순례자(Pilgrim)라는 단어가 점점 좋아졌다.

 

[아! 산티아고 Tip] 물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순례는 물집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물집이 나지 않을 순 없기 때문에 물집을 달고 걸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많은 순례자(특히 한국인)가 바세린을 바른다. 효과가 좋다. 하지만 발에 땀이 많다면 소용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푹신한 깔창을 여러 겹 까는 것이다. 더불어 발 안쪽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남는 신발을 신는 게 좋다.

 

물집 없이 카미노를 완주한 순례자 네 명을 만났다. 물집 때문에 걷는 내내 고통받은 터라 비결이 무엇이냐 물었다. 넷 다 “모르겠다”고 했지만 공통으로 발목 없고 발 치수보다 큰 신발을 신고, 깔창을 여러 겹 깔았더랬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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