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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에어컨·선풍기 없는 독일인 놀라게 한 폭염

서늘한 여름 옛말, 폭염으로 독일 내 선풍기 품절 사태까지

2018.08.09(Thu) 11:21:20

[비즈한국] “이렇게 ‘추운데’​ 평균기온이 23℃​라고? 말이 돼?” 

“이렇게 ‘​더운데’​ 평균기온이 23℃​​라고? 말이 돼?” 

 

베를린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나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이민가방에 여름옷을 잔뜩 싸온 나는 서늘함을 넘어 춥기까지 한 베를린의 여름에 당황했다. 컨테이너 짐은 여름이 지나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두 가지였다. 버티거나 옷을 사거나. 

 

한두 벌 가져온 얇은 긴소매 옷을 껴입고 단벌신사 수준으로 지내던 우리 가족은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되자 두꺼운 옷을 새로 장만했다. 밤엔 너무 추운 나머지 ‘하이쭝(독일의 라디에이터)’을 틀고 잤으니 말 다 했지.

 

올 여름은 5~6월부터 심상찮았다. 어떤 날은 20℃ 이하의 평균 날씨였다가, 어떤 날은 30℃​를 넘는 고온을 기록하는 등 널뛰기를 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좋았다. 잦은 비로 을씨년스럽고 추웠던 지난해 여름을 떠올리면 해 쨍쨍한 날씨는 축복처럼 느껴졌다. 긴긴 겨울을 보낸 독일 사람들 역시 올해는 날씨가 좋다며 틈만 나면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강렬한 태양을 즐겼다. 

 

지난해 독일의 여름은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지만, 올해는 독일인들도 참기 힘든 폭염이 닥쳤다. 사진은 베를린 시내에서 공원에 물을 뿌리는 경찰 살수차 모습. 사진=연합뉴스


7월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35℃​를 넘나드는 날이 반복되고 비도 내리지 않는 폭염이 이어졌다. 전 세계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여름에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독일도 예외가 없었다. 뉴스에서는 폭염과 가뭄 피해 사례가 끊임없이 보도됐다. 강바닥이 메마르고 물고기떼가 죽고 말라버린 작물로 농가의 피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뉴스 속 먼 얘기가 아니라, 당장 우리 가족부터 하루하루 나기가 힘들어졌다. 컨테이너 이삿짐을 싸면서 ‘전혀 필요 없다’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챙겨온 선풍기가 1년의 지하창고 생활을 마치고 집 안으로 복귀했지만, 해 구경하기 어려운 겨울에 최적화된 정남향 집의 열기를 막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 

 

더위를 피하는 독일인들의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선풍기를 최대한 가동해도 몸속에서 솟는 더운 기운을 어찌하지 못해 갱년기가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최근 며칠 바람도 없이 36℃​를 찍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여기보다 더한 폭염에 처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더위 속 안부를 물으면서도 차라리 에어컨 있는 한국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서늘한 여름, 초가을 같은 날씨를 자랑하는 독일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 없는 집이 대다수다. 가정집뿐이랴. 버스며 지하철 안도 찜통이고, 레스토랑도 심지어 백화점도 시원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선가 선풍기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것 같긴 한데, 외부에 있는 것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정도다. 그래도 ‘피서’ 삼아 복합몰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꽤 있는 걸 보면 집보다는 시원한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혹시 그 집에 남는 선풍기 없어?” 어제는 옆 동네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3년째 베를린에 살고 있는 한 한국인 가족이 선풍기를 구하지 못해 수소문 중이라 했다. 여름 초반만 해도 가전제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다니.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 나는 직접 몇 군데 가전 매장을 다녀봤다. 원래 에어컨은 구경하기 힘든 곳이라 그렇다 치고 단 한 대의 선풍기도 발견할 수 없었던 나는 그때마다 매장 직원에게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 독일 전체에 선풍기가 품절이에요. 어느 매장을 가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구할 수 없을 거예요.” 이어 그는 “행운을 빌어요”라고 했다. 선풍기 한 대 사는 일에 행운까지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니. 태양을 너무나 사랑하는, 평생 선풍기 한 대 없이 살아도 문제없을 독일 사람들에게도 이번 여름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더위라는 게 이런 식으로 증명되고 있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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