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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청년실업 시대, '경영'을 다시 생각한다

'함께 천하를 누비며 즐긴다'는 의미 잊어…경영자 아닌 기업가만 넘치네

2018.08.07(Tue) 15:33:50

[비즈한국] 시대와 함께 단어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러나 오늘날 경영(經營) 혹은 경영자라는 말은 원래의 큰 의미에서 너무 쪼그라든 듯하다. 경영은 천하라는 가장 큰 공간과 왕도라는 가장 큰 원칙을 품은 말이었다.

 

‘경영’은 함께 부유해져 함께 즐기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노숙자와 성 안에 사는 사람은 함께 즐길 수 없다.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인도의 동쪽과 서쪽 바다에서 필자는 확연히 대비되는 두 가지 풍경을 보았다. 태양신의 사원으로 유명한 동부 코나라크 해안에는 종려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어부들의 집이 줄지어 있다. 어부들은 대개 남의 배를 타기에 변변한 판자 하나 구하지 못해서, 거적문을 열고 들어가면 맨 땅바닥에 앉아야 한다. 이런 집이 어떻게 비바람을 견디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팔리지 않은 생선은 매일 남아서 아이들은 생선살이 듬뿍 든 커리를 먹을 수 있다. 물론 나날이 잡는 생선 외에는 거의 아무런 재산이 없는 듯했다. 화장실도 없어서 바닷가에서 일을 보면 벵골만의 파도가 흔적을 지웠다. 그래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구걸을 몰랐다. 한 친구는 겨울이 오기 전에 새 셔츠를 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두어 주 후, 서부의 거대 도시 뭄바이의 해안에서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보았다. 아라비아해에 연접한 해안에는 중세의 성처럼 거대한 벽을 자랑하는 부유한 이들의 주거지가 연이어 있고, 그 주거지 바로 아래 갯벌에는 낮이면 조개를 줍는 빈민들이 넘친다. 성 같은 주거지 정문에는 제복을 입은 문지기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 빈민들은 조개를 주워 바로 까 먹기도 하고, 급하면 바위 옆에서 바로 일을 본다. 평소 아라비아해의 파도는 높지 않아서 바다는 오물을 제때 가져가지 못했다. 

 

의문이었다. 저기서 잡은 조개를 먹어도 안전할까? 동서 해변에서 본 이들은 꼭 같이 가난한 이들이었지만, 두 풍경은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졌을까? 

 

모두가 가난한 곳에는 가난은 고난일 뿐이다. 그러나 성채 같은 집 아래서 노숙자들이 줄 지은 풍경은 견뎌낼 수 없는 고역이었다. 이질로 쓰러진 사람이 즐비한 해변의 풍광을 창밖으로 즐기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고 싶었다. 해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보다 성벽 안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더 걱정되었다. 지나친 격차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의 영혼을 잠식한다. 자식에게 오물 구덩이에서 건진 조개를 먹이는 부모의 영혼도 온전치는 않을 것이다. 

 

고대 제왕학의 교과서격인 ‘관자’에 “나라를 다스리자면 반드시 먼저 백성들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凡治國之道 必先富民). 백성이 부유하면 쉽게 다스릴 수 있고,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만을 품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고 한다. 가진 것이 없는 것에 더해, 심각한 불평들이 겹치면 사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모두 부유한 것이 좋지만, 최소한 함께 수긍하고 즐길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백성과 함께라면(與民同樂) 왕은 음악을 즐겨도 되고 사치를 부려도 된다고 했다. 그는 여럿이 함께(與人, 與衆) 즐기는 것이 바로 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숙자와 성 안에 사는 사람은 함께 즐길 수 없다.

 

취업박람회에서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는 청년들. 경영자가 청년과 함께 즐기는 일은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런 고민이 없으면 그냥 ‘사업가’일 뿐, 경영자라고는 할 수 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오늘날 경영이라는 말이 남용되지만, 원래 동양 문화권에서 경영은 왕도로 천하를 평정한다는 광대한 의미로 쓰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랜 문헌인 ‘시(詩)’에는 “(현명한 왕이 무력으로) 사방을 경영하다(經營四方)”고 하여 이 말이 천하를 공략한다는 의미임을 밝혔다. ‘사기’에는 “항우가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려 하다가(欲以力經營天下) 오 년 만에 망했다”고 하며 천하 경영의 방법으로 힘이 아닌 도리를 설파했다. 

 

옛날에 경영의 도리인 왕도는 함께 부유해져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도리는 극도의 격차 없이 서로 용인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일 터이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단어는 천하 경영이라는 원래 의미를 조금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경영자라고 자칭하는 이들 다수가 “함께 즐긴다”는 경영의 도리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0년의 통계는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영자가 청년과 함께 즐기는 일은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고민 없는 이들도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스스로를 경영자라 부르지 말고 개인 사업가로 칭하는 것이 객관적일 듯하다. 경영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한참 생각하다 보면, 차라리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갔던 어떤 1세대 경영자가 그립다. ​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 수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이 연재에서는 먹고 살아가는 행동(경영)을 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천(天)/지(地)/인(人) 세 부분으로 나눠, 고전을 염두에 두고 독자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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