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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티아고 5] 그곳엔 자기만의 '카미노'가 있다

순례자가 사랑하는 도시 팜플로나로 가는 길…"완주 못 해도 괜찮아"

2018.08.05(Sun) 16:42:07

[비즈한국] 눈을 뜨자마자 한 단어가 떠올랐다. ‘포기’였다. 멍든 새끼발톱이 살짝 들린 상태로 너덜거렸다. 등산화는 신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통증이 심했다. 걷기 시작한 지 고작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를 제외한 순례자들은 모두 활기차게 아침을 맞고 있는 듯했다. 밖에선 출발하기 전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소리가 들렸고, 알베르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층침대에서 스르르 몸을 일으켜 새끼발가락에 하중이 전해지지 않게끔 살금살금 내려왔다.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다 보니 처량한 생각마저 들었다.

 

팜플로나 성곽. 16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인 펠리페 2세에 의해 만들어져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19세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의해 무혈 함락됐다. 사진=박현광 기자

 

알베르게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잰걸음으로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순례자들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걷는 구간은 ‘평온의 길’이라 불린다. 20km 남짓 짧고 험한 길 없이 전체적으로 순탄한 내리막길이다. 게다가 오늘의 목적지는 ‘팜플로나(Pamplona)’​다. 

 

팜플로나는 순례자 길에서 만나는 몇 안 되는 대도시 중 하나다. 우리에겐 소몰이 축제인 ‘엔시에로(Encierros)’​ 행사로 잘 알려진 곳이다. 엔시에로 행사가 진행되는 산 페르민 축제는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리기 때문에 이를 즐기려면 시기를 잘 맞춰야 하지만, 모든 계절의 순례자들은 팜플로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먹을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팜플로나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팜플로나는 옛 나바라 왕국의 수도다. 2000년 세월이 깃든 궁전을 비롯해 유서 깊은 성당과 건축물을 눈으로 맛볼 수 있다. 성문을 통과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온 착각이 들 정도다. 이베리아반도와 갈리아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로 스페인을 프랑스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어 거점이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인 펠리페 2세가 16세기 세운 팜플로나 성벽은 높고 단단해 ‘무적의 요새’로 유명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성벽은 19세기 들어 프랑스군에 의해 ‘무혈’ 함락된다. 스페인을 공략하던 나폴레옹은 팜플로나를 창으로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꾀를 냈다. 

 

겨울이 되자 프랑스군 병사들은 성벽 앞에서 눈싸움을 하는 척했다. 이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스페인 병사들은 성문을 열고 눈싸움을 하기 위해 나왔다. 이때 프랑스 병사들이 눈 속에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 구간은 평온의 길이라 불릴 만큼 무난한 길이 펼쳐진다. 사진=박현광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한 팜플로나에 가는데 어찌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등산화 대신 샌들을 신으니 좀 참을 만했다. 양말을 두 켤레를 겹쳤다. 참을 만했지 괜찮지는 않았다. 자꾸 뒤뚱거렸다. 내 앞에 800km가 남았다니 막막하고 불안했다.

 

“부엔 카미노!” 

 

웬 거지꼴을 한 서양 남자가 양손에 든 나무 지팡이를 휘적거리며 내 뒤를 따라붙었다. 내 뒤엔 아무도 없었는데 언제 거리를 좁혔는지 놀랐다. 노란 레게머리, 긴 턱수염, 다 해진 옷, 꼭 시간을 건너온 순례자 같았다. 이름은 매튜였는데, 파리에서부터 걸었다고 했다. 이미 800km를 넘게 걸은 상태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사람처럼 활력이 넘쳤다. 눈빛이 싱싱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파리가 집이야? 아니면 여행전문가 뭐 그런 건가?”

“아니, 난 캐나다에서 일하는 목수야. 긴 휴가를 내고 유럽 여행을 왔는데 순례자 길이 있다는 거야. 파리에서 그 사실을 알고 ‘그럼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에 걷기 시작했어.”

“발은 괜찮아?”

“난 아무 문제 없다고, 친구!”

 

바욘 대성당에서 만난 여자 순례자가 떠올랐다. 1600km를 걸었다던 그녀에게서 느껴졌던 차분하면서 단단한 기운 같은 것이 매튜 주위에 감돌았다.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먼저 가라고 했다. 그의 걸음을 따라가다간 당장 내일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매튜는 절뚝이는 날 보며 알겠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건넸다. 내가 그의 손을 잡자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시 만난 매튜.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쓰던 그. 나무가 닳아 지팡이가 짧아지자 대장간에 들러 손질을 부탁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봐 친구, 이곳 카미노에선 순례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어. ‘각자 자기만의 카미노가 있다(Everyone has their own Camino)’. 빨리 걸을 수도,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 산티아고까지 갈 수도, 못 갈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자기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으면서 이 길을 즐기는 거야.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이지 마. 행운을 비네.”

 

습관 같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일찌감치 그만두려고 했다. 단순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라 뒤처질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패배감을 맛보기 싫었다. 핑곗거리를 찾아 그만두면 내 능력에 대한 평가를 유보할 수 있었다. 물론 나아지는 건 없었다. 지금 내가 또 그러려고 했다. ‘이럴 바에 편하게 휴양이나 하고 돌아갈까? 고통받으면서 걸을 이유가 뭐야’라며 되뇌고 있었다. 사실 아침에 팜플로나에서 운행하는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기도 했다.

 

매튜가 던진 말은 날 나무라면서도 위로했다. 그는 뛰는 듯 걸어갔다. 뒷모습이 사라지고, 길을 덮은 물안개가 나타났다. 그 사이 발가락이 적응했는지 걸을 만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다.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들. 길을 걷다가 나타나는 카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사진=박현광 기자

 

길은 편안했다. 가끔 오르막도 있었지만 경사가 심하진 않았다. 숲길을 지나면서 따가운 햇볕도 피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팜플로나에 가까워졌다. 대구에서 온 ‘백자매’​와 막 제대하고 산티아고에 온 호기. 모두 나이가 비슷해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숲길이 끝나자 큰 시가지가 보였다. 마을 입구에 500년 된 다리를 건넜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다리가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길 양옆으로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건물이 높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숲길과 도심이 시차 없이 이어져있었다. 

 

“여기 소매치기가 많다니까 조심해.”

 

칼이라는 소년이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어영부영하는 게 티가 났는지 달려와서 경고했다. 시가지에는 순례자를 노리는 ‘얌체범’​이 더러 있다. 큰 짐을 지니고 있으니 물건을 빼앗아 달아나기 딱 좋다. 특히 카메라나 휴대폰, 지갑을 조심해야 한다. 종종 당한다. 걱정된다면 시가지를 지날 땐 혼자보단 여럿이서 다녀야 한다. 시가지는 순례길 표식이 잘 되어있지 않아 길을 잃기도 쉽다.

 

팜플로나 성곽을 지나면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칼은 새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중학생 남자였다. 엄마와 엄마 친구랑 함께 왔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옆에 꼭 붙어 말을 걸었다. 일찍부터 아빠의 부재를 견뎌왔다고 하니 성인 남자와의 대화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팜플로나까지 함께 걷기로 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

“팜플로나.”

“최종 목적지는 어디야? 산티아고? 피니스테라?”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많은 순례자가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피니스테라(finnistella)까지 간다는 걸 걷고 나서야 알았다.

 

“나 오늘 집에 가. 팜플로나에서 버스 타고 두 시간 가서 지하철 타고 한 시간. 나 파리에 살 거든. 내일모레 학교 가야 해.”

 

화들짝 놀랐지만 이해됐다. 한국에 산다면 제주도 올레길을 굳이 한 번에 완주할 필요는 없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닿는 거리에 제주도가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다. 칼에게 순례 길은 아마 그런 의미일 것이다. 순례 길을 걷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공항에 버려졌던 기억이 나서 조금은 야속했다.

 

수말라까레기 문. 팜플로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성문이다. 웨딩촬영이 한창이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나중에 알았지만 많은 유럽인이 몇 년에 걸쳐 순례 길을 걷는다. 일주일 짧은 휴가가 생길 때마다 순례 길을 찾는다. 지난번에 그만뒀던 곳에서부터 이어 걸어 완주하는 것이다. 카르덴시알(순레자 여권)에 찍어둔 도장으로 순례를 증명한다. 

 

“걸으니까 어때?”

“좋아. 길이 아름답잖아. 다음에도 또 올 거야. 다음번엔 팜플로나에서 부르고스(Burgos)까지 걸으려고.”

 

칼은 편안해 보였다. 즐기고 있는 얼굴이었다.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가진 급박함과 대조됐다. 칼을 보면서 꼭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포기해도 되니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자. 단, 괴로워하지 말고.’ 

 

이름 모를 작은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왁자지껄하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팜플로나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순례자 모두가 사랑할 만 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모두 자기만의 카미노가 있다”던 매튜의 말이 떠올랐다. 마을 입구에서 칼과 인사를 하고 다리를 건넜다. 아름다운 팜플로나 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쳐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로 높았다. 성문을 통과하니 이름 모를 작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알베르게에선 낯익은 얼굴들이 날 반겼다. 가장 늦게 도착했지만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낸 기쁨이 반감되진 않았다.

 

팜플로나의 밤. 팜플로나를 거닐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사진=박현광 기자


 

[아! 산티아고 Tip] 순례 길 소매치기를 조심하라?!

 

순례 길엔 중세풍의 시골 마을이 주를 이룬다. 가끔 잘 갖춰진 마을이나 도시가 나오는데, 시가지에 소매치기가 꽤 있다고 한다. 순례자는 큰 가방을 지고 있으니 좋은 먹잇감이다. 카메라, 휴대폰, 지갑 등 고가의 소지품을 잘 챙기길 필요가 있다.

 

시가지는 복잡하고 순례 길 표시가 부족해 길 잃기 쉽다. 길을 알려주겠다고 먼저 접근하는 수법을 쓴다고 한다. 걱정된다면 다른 순례자와 함께 들어가는 게 좋다. 여성이라면 조금 더 유의할 것. 대부분 사람은 순례자를 존중하기 때문에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팜플로나는 순례자에게 사랑을 받는 도시다. 알베르게가 꽤 많지만 극비수기를 제외하곤 항상 가득 찬다. 불안하다면 먼저 예약을 하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그 전에 묵었던 알베르게 주인에게 부탁하면 들어준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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