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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지금 중환구역이 열사병 환자로 터져나갑니다

밖은 살인광선 내리쬐는 전쟁터…노인 특히 위험, 에어컨 있는 공간으로 피신을

2018.08.02(Thu) 17:29:02

[비즈한국]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지금 당장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현재 응급실은 열사병 환자 천지입니다. 모두 의식 없는 중환자라서 중환구역이 터져나갑니다. 지금 실외는 기상 관측사상 최고 기온을 달성했습니다. 열기가 피크에 달하는 시간이면 동시에 다수의 열사병 환자가 실려서 들어옵니다. 도대체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습니다.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짜증만 나지, 많이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면 적어도 기절하지는 않아요. 더위에 잘 견디고 증상도 예민하게 느끼고 수분 섭취도 알아서 잘 합니다. 

 

살인적인 더위에 정말 위험한 사람은 노인들이다. 서울 강남대로 일대를 지나는 노인들이 양산을 쓰고 햇볕을 피하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지금 노약자에게 실외는 무작위로 사람을 학살하는 공간입니다. 애초부터 인간의 늙은 육체는 이 정도의 날씨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다 픽픽 기절하고 계십니다. 대부분 낮에 쓰러지시니 누가 발견이라도 하지만, 어디 누구 눈에 띄지 않으면 치명적입니다. 발견돼도 사망률 50~90%라는 수치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뇌가 익는 병입니다. 손쓸 수도 없이 그냥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70대 이상인 분들 평소처럼 혼자 외출하시다가 의식 놓으시면 ‘무명녀’나 ‘무명남’이 돼서 응급실에 던져집니다. 기적적으로 목숨 건지고 주민번호 불러서 극적으로 가족 상봉해서 돌아가시는 분들 많습니다. 의식 돌아온 어르신께 말 걸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못 하십니다. 체내 수분이 부족하고, 체온 조절은 잘 안 되고, 체력이 약해서 증상이 즉각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기저질환이 있다면 더더욱 위험합니다. 마지막 순간 회상도 못하시고 바로 의식의 끈 놓으십니다.

 

이론상 외부 기온이 35℃ 이상 올라가면 체내 열 배출이 힘들어집니다. 여기서 습도까지 높으면 열 배출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온이 40℃라는 말은 사람을 하루 종일 바깥에 두면 결국 과학적으로 익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날은 야외를 피하거나 외부로 열을 덜어내야 인간이 존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서늘한 곳에 있어 주세요. 

 

사실 누구나 더워서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죠.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실 분 중에 진짜 죽을 사람 많이 없습니다. 정말 위험한 분들은 여러분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이웃 노인들입니다. 에어컨은 발명 이래로 엄청나게 많은 인류, 특히 노약자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어르신들 댁 에어컨 고장 나자마자 기절하십니다. 선풍기 하나 돌아가는 방에서 쓰러져 발견된 분도 많습니다. 거주 환경이 찜통과 비슷하다면 진짜 위험하니깐 피신시켜 드려야 합니다. 주변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외출 자제하고 시원한 것 드시면서 에어컨 있는 공간에서 가만히 누워계시라고 해주세요. 덧붙이자면, 경험상 할머니들이 더 위험합니다.

 

여기 있다 보면 바깥은 살인광선이 내리쬐는 전쟁터 같습니다. 세상이 그대로 불지옥이나 불가마입니다. 제발 종교시설은 선선해지면 가시라고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면 즉시 하느님 곁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또 옥상에 있는 고추는 제발 나중에 따라고 해주시고요. 아 또, 이 날씨에 게이트볼 꼭 쳐야 합니까? 그러다 천당문 열립니다. 

 

정신지체나 치매 있으신 분들 정말 위험합니다. 혼자 외출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동선 예측하기 어려워서 찾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분들 체온 41, 42℃ 넘어간 채 발견되면 인간을 조리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노약자를 건강한 사람들이 챙겨주세요. 

 

사람이 바깥에 나갔다는 이유로 목숨 잃으면 얼마나 허망합니까. 이 유례없는 더위를 건강하게, 사상자 없이, 같이 이겨냅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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