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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실리콘밸리를 통해 본 '뜨는 상권'의 조건

우연과 운이 만들어낸 실리콘밸리…물리적 조건보다 '그 지역의 스타'가 더 중요

2018.07.31(Tue) 11:23:10

[비즈한국] 2010년대 들어 오래된 주택지가 뜨는 상권으로 변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주거지가 멋진 상권으로 바뀌는 현상은 그 지역을 찾는 소비자나 상가를 임대해주는 건물주, 그리고 사업을 구상하는 사업자들에게 좋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넥스트(Next) 홍대와 넥스트 경리단길이 어디가 될지 알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뜨는 상권의 공통적인 물리적 조건을 주목한다. 분명 대부분의 뜨는 상권들은 물리적으로 비슷한 공통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뜨는 상권을 만드는 핵심적 조건일까?

 

많은 사람들이 뜨는 상권의 물리적 공통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물리적 조건이 뜨는 상권을 만드는 핵심적 조건은 아니다. 사진은 홍대 앞 거리 풍경. 사진=최준필 기자


예를 들어 현대 도시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제인 제이콥스는 보행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시를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선 보행자에게 좋은 물리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작 유명 상권 중에서 경리단길, 해방촌과 같은 곳은 인도가 아주 비좁거나 없고 차들의 교통량은 많아서 걷기에 좋은 환경은 못 된다. 

 

물리적 환경은 그 지역이 뜨는 상권이 될 후보로 만들어주긴 해도 그 조건 자체가 뜨는 상권이 되는 이유는 아니다. 그럼 대체 어떤 곳이 뜨는 상권이 되는 것일까?

 

이에 관한 힌트는 엔리코 모레티가 쓴 ‘직업의 지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모레티는 어떤 지역이 실리콘밸리 같은 혁신의 중심지가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인근에 위치한 스탠포드대학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스탠포드가 끊임없이 인재들을 공급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지역이 혁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레티는 그것은 사후적인 결과일 뿐 운의 요소가 컸으며, 실리콘밸리 태동기만 하더라도 스탠포드가 그렇게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대학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실리콘밸리의 태동은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가 벨연구소를 그만두고 팰로앨토에서 ‘쇼클리 반도체’를 차리면서부터다. 쇼클리의 명성을 듣고 쇼클리 반도체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쇼클리가 매우 괴팍했던 탓에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등은 퇴사해서 아예 새로 회사를 차린다. 이 회사가 바로 IBM과 미군에 반도체를 공급하던 페어차일드 반도체이며 이후 노이스와 무어가 독립해서 만든 회사가 인텔이니, 쇼클리가 실리콘밸리에 뿌린 씨앗이 어마어마했던 셈이다.

 

그런데 쇼클리가 오던 당시, 팰로앨토와 실리콘밸리 지역은 오렌지 농장만 즐비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모레티는 쇼클리가 당시 산업 기반이 탄탄하던 프로비던스에 쇼클리 반도체를 차렸으면 로드아일랜드 지역이 실리콘밸리가 되었을 것이며 브라운대학이 스탠포드를 대신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쇼클리라는 당시 최고의 스타가 팰로앨토 지역으로 간 것이 실리콘밸리의 운명을 결정지었지만, 그 계기는 물리적 조건의 우수함이 아니라 운에 가까웠다. 팰로앨토 지역은 쇼클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여기에 당시 스탠포드공대 학과장이던 (이후에 부학장이 되는) 프레드 터먼의 열정적인 설득이 쇼클리를 프로비던스가 아닌 팰로앨토로 오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스탠포드 산학협력 체제의 구축으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프레드 터먼이 스탠포드로 간 것 역시 운이 크게 작용했다.

 

터먼은 원래 MIT와 스탠포드에서 임용 제안을 받았다. 이 제안에 결론을 내지 않고 팰로앨토로 여름휴가를 갔는데, 휴가지에서 당시 매우 치명적이던 질병인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9개월을 요양한다. MIT와 스탠포드는 터먼의 회복을 1년 가까이 기다렸다. 당시 기준으로 MIT가 스탠포드보다 더 높이 평가받았기에 원래라면 MIT가 우선되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터먼은 결핵에서 겨우 나은 상태였고, 결핵에는 온화한 날씨가 좋다는 주치의의 말이 따라 겨울 날씨가 혹독한 매사추세츠 대신 온화한 팰로앨토에 위치한 스탠포드로 오게 된다. 이 또한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다.

 

실리콘밸리 지도. 수많은 IT 기업이 모여 있다. 왼쪽 파란 네모선 안이 스탠포드대학이다. 사진=www.siliconmaps.com


팰로앨토와 그 주변 지역이 실리콘밸리로 변모하고 혁신의 중심지가 된 것은 터먼과 쇼클리라는 스타가 이 지역을 택했기 때문이고, 이 스타를 보고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라고 ‘직업의 지리학’은 이야기한다.

 

첨단 IT 벤처에 관한 이야기지만, 상업 부동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뜨는 상권에는 여지없이 초기에 사람들을 그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스타 역할을 하는 가게가 존재한다. 이후 이런 가게가 끌어들인 유동인구를 같이 노리는 사업가들이 속속 진입하면서 클러스터링이 되고 뜨는 상권으로 발전한다.

 

초기에는 지역의 힘보다 스타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 지역에서 누가 강력한 비즈니스로 유동을 만들어내고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이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만약 그런 스타가 나타난다면 그의 존재가 지역 전체를 좀 더 가치 있고 매력 있게 만들며 그로 인해 다른 새로운 비즈니스와 사람들이 유입된다. 그제야 스노볼링(snowballing) 효과가 나타난다.

 

뜨는 상권을 알고 싶다면, 어디가 뜨는 곳인지 알고 싶다면 물리적 조건을 살펴보기보다는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그 지역의 스타는 누구인가?​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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