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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그저 옥수수? 과일처럼 다루면 과일만큼 달다

'스테디셀러' 찰옥수수와 '힙스터' 초당옥…단맛은 품종 아닌 신선도가 좌우

2018.07.30(Mon) 14:59:44

[비즈한국] 여름에는 탐식도 잠잔다. 냉동실에서 옥수수를 꺼냈다. 택배로 받자마자 찜통에 쪄서 지퍼백에 넣어 얼려둔 옥수수다. 종류는 두 가지. ‘미백2호’라고 하는 흰 찰옥수수와 ‘고당옥'이라고 하는 노란 단옥수수다. 자박하게 물을 깔고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려 데웠다. 거의 완벽하게 부활했다.

 

옥수수도 종류가 여럿이다. 찰옥수수는 단맛이 여리다. 대신 고소한 감칠맛이 툭툭 튀어나오는 밤톨 같은 옥수수다. 밥 짓듯이 제대로 익혀야 보들거리고 맛있다. 설익으면 설익은 밥처럼 분이 깔깔하다. 충분히 더 익히시라. 쫄깃하게 잘 익혀 먹어야 제 맛이다.

 

껍질이 얇은 것이 좋다지만, 다른 옥수수에 비해선 여전히 단단한 편이라 알알이 쏙쏙 빠진다. 치아로 갉아 먹는 재미까지 좋다. 손을 닦아가며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겉에 수분이 맺히지 않아 먹기도 깔끔하다. 알고 보면 한국과 북한, 일본과 중국 정도에서만 먹는 희귀한 옥수수다.

 

단옥수수는 미국 통조림 옥수수 그 자체다. 한국과 품종은 다르지만 계열은 같다. 익힌 후 말라버리면 볼품없이 쪼그라들기 때문에 옥수수 통조림 안에 물이 차 있는 것이다. 들큰한 듯 달달한 맛에 먹는데, 질감이 부드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껍질이 얇고 속도 익히면 죽처럼 퍼진다. 단옥수수 중엔 몇 해 전부터 등장한 초당옥수수라는 것도 있다. ‘超(초)’ 달다는 이름이다.

 

노란빛 물기가 많은 단옥수수(초당옥)와 찰옥수수(미백2호, 맨 아래). 사진=이해림 제공

 

이 옥수수는 어지간한 과일보다 당도가 높게 나온다. 단옥수수의 돌연변이 종인데, 다른 옥수수들처럼 당을 전분으로 잘 바꾸지 못하는 터라 평범한 단옥수수가 되지 못하고 속에 설탕물같이 단 물을 채운 특별한 옥수수가 된다. 아삭아삭한 질감과 높은 당도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아 몇 해째 여름마다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제주도에서 주로 난다.

 

초당옥수수는 치아 끝만 닿아도 물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옥수수 알 속 수분이 터져 나온다. 생으로 먹어도 맛이 좋아 차가운 요리 여기저기 사용해도 좋다.

 

‘힙스터’ 문물인 초당옥수수가 제아무리 인기라도 찰옥수수의 오랜 팬덤을 넘보지는 못할 일이다. 또 중간에 낀 단옥수수 역시 지지층이 확고하다. 하여 어느 옥수수가 가장 맛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고루 존재기반이 갖춰져 있는 제각각 옥수수들이라 영원히 이 힘의 균형이 이뤄져 매년 여름 세 가지 옥수수를 그날그날 기분 따라 골라 먹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오해만은 바로잡아야겠다. 얼마 전 전문가들을 탐문해 옥수수의 비밀을 하나 캤는데, 전적으로 신선도가 맛에 관여한다는 점이다. 과일에 가까운 특성을 지닌 초당옥수수는 특히나 상미기한이 짧아 반나절 만에도 푹 쉬어 버리고, 단옥수수나 찰옥수수는 그보다야 덜하지만 각각의 상미기한이 지나면 전분화가 진행되어 퍽퍽한 ‘무맛’이 된다나.

 

특히 찰옥수수는 단맛이 워낙 옅다 보니 예전부터 설탕과 소금, 혹은 숫제 사카린으로 맛을 보태 먹는 옥수수인데 그 모두가 신선도를 잃었던 탓이다. 옥수수는 줄기에서 떨어지는 즉시 노화 작용을 시작해 맛이 달아나는데, 특히나 당이 적은 찰옥수수는 그 단맛이 채 한나절도 지속되지 않아 ‘가당을 해야만 먹을 만하다’는 누명을 쓴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흔히 박스째 쌓아 놓고 껍질도 홀랑 까서 헐값에 팔곤 하는 여름철 옥수수 풍경이 새삼 딱해졌던 일이다. 그것이 옥수수를 가장 맛없어지도록 하는 지름길인 것을 모른 채 맛없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경북 고령, 가야산 자락에서 옥수수 농사짓는 분께 옥수수를 얻어먹었다. 농업회사법인 대가야의 김영화 대표는 옥수수 전문인답게 배송에도 묘수를 두었는데, 일반적으로 따는 것보다 옥수수 대를 좀 더 남겨 꺾어 길쭉하게 따고 밤에 배송을 출발시키는 것이다. 수분을 지키고 온도를 유지해주는 껍질도 더 많이 남고, 옥수수 대가 꽃병 역할을 해 싱싱함이 지속된다.

 

그나마 덜 더운 시간대에 ‘보호막’에 싸여 온 찰옥수수는 그동안 먹었던 찰옥수수들보다 확연히 맛이 좋았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단지 쪘을 뿐이다. 맹맹한 맛에 먹는다고 믿었던 찰옥수수가 이렇게 생생한 맛을 갖고 있었나, 나 또한 놀랐다. 찹쌀떡 같이 촉촉하게 쫀득거리면서 입 안에는 생밤의 고소하고 달콤한 여운을 잔뜩 남겼다.

 

대신 평소보다 많은 양의 옥수수 껍질 쓰레기와 반 뼘쯤 되는 옥수수 대가 쓰레기봉투 하나를 꽉 채웠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번거로움이다. 유통 현장에선 운송비용이 늘어 꺼리겠지만, 소비자들도 이만한 맛의 차이를 체감해본다면 살짝 더 비싸더라도 더 맛 좋은 옥수수를 선택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 같은 먹보라면.​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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