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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신세계] '레전드의 귀환' 베오플레이 이어셋

A8과 모양만 같은 무선 버전…8g 늘어난 무게와 저음역대 강조 '이질감'

2018.07.30(Mon) 10:31:50

[비즈한국]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B&O)이라는 브랜드는 역사가 90년이 넘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오디오 브랜드다. 하지만 애증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오디오 마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 중 일부는 인생의 10% 정도를 뱅앤올룹슨을 비난하는 데 허비한다. 디자인은 예쁘지만 가격이 비싸고 소리도 그 정도 가치는 아니라는 거다.

 

무선으로 다시 태어난 베오플레이 이어셋. 사진=뱅앤올룹슨 제공

 

뱅앤올룹슨을 공격하는 이들 대부분은 가성비가 형편없음을 물고 넘어진다. 그런데 오디오 같은 취미 제품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소리와 1000만 원짜리의 소리를 물리적이고 정량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디자인도 100만 원짜리 디자인과 1000만 원짜리 디자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 안 하겠지만.

 

뱅앤올룹슨을 저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뱅앤올룹슨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다.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대학 시절 갖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던 뱅앤올룹슨 오디오 사진을 잘 접어서 지갑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암으로 타계하기 전 마지막까지 그의 머리맡에서 비틀스와 밥 딜런을 재생하던 오디오는 ‘데이비드 루이스’가 디자인한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8’이었다. 멋진 스토리다.

 

스티브 잡스의 임종을 지킨 베오사운드8. 사진=뱅앤올룹슨 제공

 

한편 뱅앤올룹슨이 한국에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유명하게 된 계기는 이어폰 덕분이다. 2000년 출시한 ‘A8’이라는 이어폰이다. 가격은 8만 원 정도로 당시 이어폰치고는 상당히 비쌌다. 서울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500만 원 하던 시절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글을 잘 읽고 있나 테스트해 봤다. 

 

A8은 럭셔리 오디오로 불리는 뱅앤올룹슨 브랜드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이었고 그래서 꽤 인기를 끌었다. 마치 샤넬 립스틱 같다. 명품 브랜드 후광 덕분에 대체 구매 효과가 있는 소품 느낌이었다. 나도 세 번이나 구입했다. 3년 전에 산 A8은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있다.

 

전 세계적에서 크게 히트한 뱅앤올룹슨 A8 이어폰. 사진=뱅앤올룹슨 제공

 

실제 써보니 A8은 큰 장점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어 후크 디자인이다. 귀에 걸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은 뭔가 우아했고 귀에서 잘 빠지지 않아 실용적이었다. 음색도 독특했다. 청명한 중고역을 재생해내어 피아노나 클래식 음악에 잘 맞았다. 모니터용 이어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그런 역할도 가능했다. 가수 이승환, 박정현, 태연처럼 음악성이 뛰어난 뮤지션들도 즐겨 사용했다.

 

​A8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도 사용하는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인기를 끌었던 A8은 올해 초에 단종됐다. 무선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사진=KTV국민방송 캡처

 

최근 뱅앤올룹슨은 A8의 무선 버전인 베오플레이 이어셋(Beoplay Earset)을 출시했다. 이어 후크 형태로 귀에 거는 디자인이 그대로 이어졌다. 언뜻 보기에는 쌍둥이 같다. 그런데 모듈이 좀 커졌다. 무선 버전에는 모듈에 배터리와 블루투스 장치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거워졌다. 22g이었던 A8에 비해 8g 무거워져 30g이다.

 

8g 차이는 언뜻 적어 보이지만 귀에 걸어야 하는 제품이 35%가 무거워졌다면 다른 제품이나 마찬가지다. 귓바퀴에 걸리는 이물감도 강해졌고 귀의 피로감도 다소 커졌다. 단 뱅앤올룹슨의 이어 후크 디자인은 사람에 따라 불편을 느끼기도 하고 최상의 착용감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A8에 만족했던 이들이라면 이번 이어셋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음질도 변했다. 요즘 드문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점은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드라이버 유닛이 커지면서 저음역이 크게 강조됐다. A8의 상징과도 같던 청명한 고역과 깔끔한 음색이 사라지고 낯선 저역이 귀를 감싼다.

 

어찌 된 일일까? 뱅앤올룹슨은 최근 출시하는 무선 이어폰들을 피트니스 용도로 튜닝하고 있다. 과거 리뷰했던 베오플레이 E8, 베오플레이 H5 역시 모두 저역이 강조된 음색이었다. 베오플레이 이어셋은 여기에 오픈형이라는 점을 감안해 저역을 더 강화했다. 운동이나 러닝 중에 리듬감을 전달해 운동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저역이다.

 

A8의 후크형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받은 베오플레이 이어셋. 사진=김정철 제공

 

아닌 게 아니라 베오플레이 이어셋은 러닝 용도와 잘 맞는 제품이다. 귀에 걸어두면 잘 빠지지도 않고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픈형이라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도 안전하다. 그런 점에서 풍성한 저역은 실용적이다. 다만 뱅앤올룹슨이 이어셋을 운동용으로 내놓았다는 것은 내 억측일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이 저역을 선호하기 때문에 튜닝 방침이 변했을 수도 있다. 

 

잡설이 길었지만 핵심은 음색이 변했다는 거다. 따라서 과거 A8의 소리를 생각하고 구입하면 안 된다. 전혀 다른 음질 성향을 가진 이어폰이다. 대신 베오플레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음색을 바꿀 수는 있다. 전용 앱을 설치하면 따뜻하게, 밝게, 활기찬, 편안하게의 네 가지 느낌의 음색을 골라 즐길 수 있다. ‘밝게’​를 강조하면 과거 A8 소리와 비슷한 음색을 낼 수도 있다. 다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소리의 결이 조금 다르다. 

 

편의성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배터리는 USB-C 단자를 통해 충전하고, 20분 충전 시 1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2시간 걸려 완충 시 5시간 정도 플레이가 가능한데 실제로는 3~4시간 플레이된다. 현재 나오는 무선 이어폰들은 5시간의 플레이 타임이 한계라고 보면 된다. 리모컨이 붙어 있어 볼륨과 재생 조절, 곡 넘김이 가능하다. 불행히도 리모컨에는 애플 시리와 구글 어시스턴트를 호출하는 기능도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일반 블루투스 이어셋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진=김정철 제공

 

베오플레이 이어셋은 ‘앤더스 헤르만센(Anders Hermansen)’이 디자인한 뱅앤올룹슨의 전설적인 이어폰 A8의 무선 버전이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연결 없이 편리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대신 많은 것이 변했다. 톡 쏘는 고역 대신에 푸근한 저역으로 바뀌었고 날렵한 몸매도 푸근해졌다. 운동을 돕는 용도에 가깝게 실용성이 강해졌다. 과거에 A8이 독특한 이어폰이었다면 베오플레이 이어셋은 상향평준화된 많은 무선 이어폰과 큰 차이가 없는 상품성을 가진 제품이다.

 

내 관점에서 베오플레이 이어셋의 가장 큰 미덕은 ‘Oldies, but goodies(구관이 명관)’라는 격언의 생명력을 다시 한 번 연장시켜준 것과 단종된 A8의 재고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몇 개 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것에 있다. A8의 구입도 뱅앤올룹슨의 매출에는 도움이 될테니 이어셋에 대해 악평한 죄책감이 조금 사라진다.​ 

 

필자 김정철은? ‘더기어’ 편집장. ‘팝코넷’을 창업하고 ‘얼리어답터’ 편집장도 맡았다. IT기기 애호가 사이에서는 기술을 주제로 하는 ‘기즈모 블로그’ 운영자로 더욱 유명하다. 여행에도 관심이 많아 ‘제주도 절대가이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기술에 대한 높은 식견을 위트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김정철 IT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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