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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여름휴가 한 달' 실화? 부럽기만 한 독일 직장인들

법으로 보장된 20일에 노사협약 맺어 평균 연차 30일, 병가는 별도

2018.07.26(Thu) 11:19:12

[비즈한국] “‘언더커버 보스’라는 TV 프로그램 알지? 그 프로그램 미국판이 방영될 때 어떤 CEO(최고경영자)가 직원 포상으로 한 달짜리 유급휴가를 보내줘서 미국에서 난리가 났었어. 그런데 말야, 독일 사람들은 전혀 감흥이 없었어. 독일에선 한 달 유급휴가가 그렇게 특별한 상황이 아니니까.” 

 

지난 봄, 미국인이면서 현재 독일에서 일하는 H가 말했다.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나라이고,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최소긴 하지만, 한 달이나 휴가를 간다고? 독일인들은 일 못지않게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니, 눈치 보지 않고 긴 휴가를 갈 수도 있겠네. 그래도 설마,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 다 그러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겠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머리에서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여름방학과 함께 독일인의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몇 달 후, H의 말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7월 초, 7주가 넘는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시즌이 막이 올랐다. 

 

“우리는 15일 동안 이탈리아에서 보낼 계획이에요.” 

“저는 한 달간 아이슬란드에 있을 거예요.” 

“우리 가족은 방콕, 홍콩,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3주 후에 돌아올 거야.” 

 

옆집 사는 젊은 동거인 커플은 이탈리아로, 아이의 독일어 선생님은 아이슬란드로, 내 독일인 친구 가족은 아시아로 보름에서 한 달까지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긴 휴가를 떠났거나 떠날 계획이었다. 2주는 짧은 편에 속했고, 3주 이상도 흔했다. 

 

독일 직장인들은 30일가량의 긴 여름휴가를 보낸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인들은 1년 내내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긴 휴가를 가려면 오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한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이 상황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꿈 같은 휴가를 가능케 하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긴 연차 때문이다. 독일 직장인들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연차는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연 20일 정도인데, 기업과 근로자 간 자율협상을 맺어 평균적으로 연 30일 정도의 연차 휴가가 주어진다. 신입사원도 마찬가지다. 

 

독일인들은 일 년 내내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것 같다. 사진=박진영 제공


게다가 많은 기업이 초과근무 시간을 수당이 아닌 휴가로 쓸 수 있게 하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운용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장기휴가를 떠날 수 있다. 연차 15일에, 최대 붙여 쓸 수 있는 기간은 보통 일주일, 그마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하니 상실감마저 들었다. 모든 직원이 빠짐없이 1인당 연차 30개를 다 소진하다 보니 팀원들이 다 함께 모이는 날이 손에 꼽힌다는 말이 어찌나 현실감 없게 들리던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전화 한 통만 하면 당당하게 결근할 수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그것도 유급으로, 연차를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연속 3일 이상 결근 시에만 의사의 소견서 제출이 필요할 뿐, 이틀까지는 ‘나 아파요’ 한마디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쉴 수 있다니, ‘실화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휴일 근무가 금지돼 있는 독일에서는 주말마다 휴식을 위해 도심이나 근교의 호수를 찾는 이들이 많다. 사진=박진영 제공


이렇다 보니 악용하는 근로자들도 많다고 한다. 연차는 장기로 쓰면서, 개인적인 볼 일이 있으면 ‘병가’를 내는 식이다. 독일 정부의 실업자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지인이 말하기를, 거기 모인 사람들의 90% 이상이 개인적 사유로 병가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라는데, 솔직히 직장인에겐 뿌리치기 어려울 정도의 달콤한 유혹 아닌가.

 

최근 H를 다시 만났다. 장기 휴가에 부러움을 쏟아내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업종에 따라 장기휴가나 병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대부분 독일인의 삶은 노동 강도가 엄청난 한국인에 비해서는 행복한 편이지. 근데 ‘퇴근 시간 땡’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독일 직장인은 근무시간 중에 진짜 집중해서 일해.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점심도 때우는 정도로 넘기는 경우가 대다수지.”

 

짧게 일하고 많이 쉬지만 효율성과 생산성은 높다는 얘기였다. 요즘 한국 직장인이 꿈꾸는 ‘워라밸’의 최종 지점이 거기 아닐까. 독일에 있지만 한국 가족인 우리는 얼마 후 떠날 일주일짜리 휴가에도 들뜬 상태다. 독일 근로자 방식으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진심 궁금하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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