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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마린온 사고조사에 항공우주산업의 명운이 걸렸다

'슈퍼 퓨마 사고'와 다른 점 적잖아…뼈를 깎는 반성과 재발방지 대책 급선무

2018.07.20(Fri) 19:10:47

[비즈한국] 지난 17일 오후 4시 46분 경북 포항시 해병대 항공대 기지에서 MUH-1 마린온(Marineon) 헬기가 추락, 승무원 5명이 순직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번 사고는 1958년 3월 해병대 최초의 항공부대인 제1상륙사단 항공관측대가 창설된 지 60년 만에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참사이자, 대한민국 국산 항공기가 일으킨 가장 큰 사고다. 그야말로 해병대 역사상, 그리고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 발생한 셈이다.

 

마린온 헬기. 사진=대한민국 해병대


더욱 큰 비극은 해병대 항공단이 긴 기다림 끝에 부활의 기지개를 이제 막 펴기 시작한 시점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이다. 해병대는 원래 해군보다 먼저 자체 항공부대를 갖고 있었으나 1973년 10월 해병대 사령부 해체와 함께 사라졌다가 35년이 지난 2008년에서야 해병대 파일럿이 다시 육성됐다. 

 

그 뒤 해병대는 상륙작전 때 적진에 강습시킬 해병 상륙기동헬기의 도입을 요구했으나 예산 우선순위에 밀려 항상 쓴맛을 봐야만 했다. 예산이 부족해 저렴하지만 비좁은 러시아제 카모프 KA-32를 도입하려다가 무산됐고 2012년에는 필요한 헬기 32대의 소유권을 놓고 해군과 분쟁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육군의 기동헬기 KUH-1 수리온(Surion)을 제작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저렴한 가격과 유지보수의 편리성을 내세워 해병대에 마린온을 제안했다. 해병대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MUH-1 마린온이 해병 항공대에 인도를 시작한 지 이제 6개월. 부대를 막 편성하고 초기 운용능력을 확보하려는 지금 시점에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라는 표현 외에는 언급할 방도가 없다.

 

추락 당시의 CCTV 영상과 잔해를 보면 이번 추락사건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비 완료 후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한 직후, 헬기의 양력을 담당하는 회전 날개인 로터 블레이드가 아래위로 심하게 휘더니 4개의 로터 블레이드 중 1개가 갑자기 떨어지고 곧 이어 3개의 로터 블레이드가 한 번에 절단되듯이 분리되며 곧바로 추락했다. 추락 직후 화재가 발생해 10여 분 만에 진화가 완료되었지만 동체 밖으로 튕겨져 나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조에 실패했다. 

 

헬기가 추락할 때 폭발을 막아야 할 여러 안전장비, 즉 자동소화장치 등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혹시 대응의 실수로 추락 직후 헬기 화재를 진압하는데 미진한 부분이 없었는지, 사고 직후 유가족 대우는 적절했는지 철저한 수사와 감찰을 통해 유가족의 분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노르웨이 추락사고 현장의 슈퍼 퓨마 헬기 로터 잔해. 사진=aerossurance


지금까지 전문가와 언론에서 사고 원인으로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기어박스(GearBox)다. 헬리콥터 엔진의 회전력을 날개인 메인로터에 공급하는 장치를 기어박스라고 한다. 마린온은 국내 설계 개발한 국산 헬리콥터지만, 설계 과정에서 유럽의 다국적 업체인 에어버스와 기술협력을 실시했다. 

 

이 기술협력은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기술자가 조언을 하고 에어버스에서 생산하는 H215 헬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 각종 도면과 기술자료를 한국 기술진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때문에 수리온은 우리 스스로 설계했지만 ‘스승’을 두고 개발한 헬리콥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리온을 만들면서 기술자료를 참조한 H215 헬기 계열 중 H225, 일명 ‘슈퍼 퓨마’라는 헬기가 있다. H215와 외양은 거의 비슷하지만 동체를 늘리고 날개와 엔진을 바꿔 더 많은 사람을 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종이다. 문제는 이 슈퍼 퓨마의 메인로터가 분리돼 추락한 사건이 두 건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스코틀랜드, 2016년 노르웨이에서 운행 중인 슈퍼 퓨마의 메인로터가 분리돼 추락,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슈퍼 퓨마 추락사건은 두 건 다 기어박스의 결함 때문이었다. 슈퍼 퓨마의 기어박스는 23000RPM의 속도로 회전하는 회전축에 기어를 맞물려 메인로터가 265RPM의 속도로 회전하도록 정교한 톱니바퀴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어박스에 있는 8개의 보조 기어 중 하나가 미세균열로 부서지자, 엔진 로터에 큰 회전력이 걸려 통째로 뽑혀져 나왔던 것이다.

 

헬기 메인로터가 통째로 뽑혔다는 점에서 많은 언론들이 마린온 헬기가 슈퍼 퓨마의 디자인은 물론, 결함까지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슈퍼퓨마의 사고와 마린온의 사고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차이는 로터가 뽑힌 방식과 형태에 있다. 노르웨이 추락사건에서 현장에 남은 메인로터의 잔해는 메인로터와 기어에 연결된 하우징 일부, 고정 바 등 메인로터에 연결된 부품들이 그대로 붙어 있었지만, 마린온 추락현장에서 발견된 로터 블레이드는 이런 부품이 붙어있지 않았다. 메인로터가 뽑힌 흔적과 잔해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원인에서 메인로터가 뽑혔다는 정황일 수 있다. 

 

두 번째 차이는 로터 블레이드의 이탈 여부다. 해병대가 공개한 CCTV 영상에서 마린온 헬기는 낮게 비행하던 도중 갑자기 메인로터가 아래위로 흔들렸고, 그 뒤 로터 블레이드 하나가 이탈하고 난 뒤 나머지 세 장의 로터 블레이드와 메인로터 연결부가 뽑혔다. 노르웨이 추락사고에서 다섯 장의 로터 블레이드가 통째로 뽑힌 것과 다른 현상이다. 

 

슈퍼 퓨마 헬기 사고 당시 부서진 기어박스. 사진=Jo_l Super


그리고 KAI는 노르웨이 추락사고 이후 수리온에 비행정지 조치를 취한 다음, 에어버스가 슈퍼 퓨마 헬기의 기어박스 부품을 교체한 것처럼 수리온과 마린온에도 변경된 기어박스 부품을 적용했다. 기존에 알려진 새로운 문제가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고 기체가 기체 진동이 심해 수리를 한 다음 수리가 잘 끝났는지 확인하는 비행을 하던 도중이었던 점, 수리온의 연료탱크에는 화재를 막기 위해 불활성가스 자가생산장치(OBIGGS)가 장착되었는데도 폭발이 일어난 점 등 사고현장에서 아직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의문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린온 추락사고 조사위원회의 책임은 막중하다. 명확한 진상조사는 세상 그 어떤 슬픔과 비교하기 어려운 비통함에 빠진 유가족들에 대한 당연한 조치이며,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의 명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항공우주산업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으며 단기간에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한 명목으로 높은 목표와 짧은 일정이라는 모순적인 요구를 만족해야만 했다. 그 덕에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초음속 비행기, 헬리콥터, 우주발사체까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었지만 그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특히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외부 민간 전문가의 참여를 요구했는데, 국내 전문가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사건을 조사한 유럽항공청, 외국 헬기 제조사의 헬리콥터 전문가들에게도 조사위원회를 개방해야 한다. 

 

조사위원회의 철저하고 명확한 원인 규명은 해병대 항공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순직자들을 위로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이며, 이 조사위원회의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마린온 헬기의 결함이나 실수를 수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항공우주산업의 제조와 설계, 유지관리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항공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만이 진짜 항공우주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에서 만든 헬기를 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해병대의 날개가 된 것에 자긍심을 가졌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순직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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