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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북미협상, 비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판 커질수록 일은 더 쉬워지고, 외부압박 강할수록 남북은 가까워져

2018.07.19(Thu) 11:35:08

[비즈한국] ‘장자’에 “명성(명분, 名)은 천하가 공유하는 그릇이니, 혼자서 많이 취해서는 안 된다(名公器也, 不可多取)”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온다. 지금 한반도에서 한바탕 명분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모두 우리의 외교 역량으로 상대하기 벅찬 나라들이다. 북미가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선후를 두고 양국이 줄다리기하는 중이고, 각자의 배후에 군대라는 군산복합체라는 강력한 이해 당사자들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대담성만 갖추면 상황을 비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의 줄다리기를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지난 6월 12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전광판에 ​북미정상회담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사진=최준필 기자


논리적으로 따지면 당연히 종전선언이 핵심전력 포기에 선행해야 한다. 먼저 쌍방이 싸움을 멈추기로 약속해야 무기를 버리지, 한쪽이 무기를 버려야 싸움을 멈추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종전 선언 이후에나 군부에게 핵포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명분을 요구했고,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미국은 형식적으로 명분 하나를 잃는 셈이다. 그러나 보도에 의하면 한국 정부 측이 선(先)종전선언을 제안했다가 미국 측에 바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비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버린 명분을 주워 판을 키울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휴전 협정 당사자다. 지난날 그들은 엄청난 자국민을 희생하여 ‘공산주의 진영’을 지켰다. 그러나 이제 그 진영은 사라지고 강대국 중국만 남았으니, 그들도 구 체제에서 빠져나올 구실이 필요한 시기다. 이제 종전이라는 인류사적인 명분으로 중국을 끌어들일 순간이다.

 

혹자는 중국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중국에서 주석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인의 권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핑계를 댈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대외적으로 주석의 뜻은 중국의 뜻이 되어야 한다. 핑계를 대는 순간 그는 제왕적 통치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 예컨대 임진왜란은 명목적으로 일본이 ‘명을 치려 하니 길을 빌려달라(假途征明)’고 하고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명의 황제가 조선을 지원하지 않는 순간 그는 이미 ‘하늘의 아들(天子)’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통치자는 현재 좌충우돌 적을 만들고 있다. 중국과 유럽을 상대로 동시에 갈등을 유발하다가 급기야 중국에게 자유무역의 기수라는 명분을 넘기는 악수까지 두었다. 자유란 건국 때부터 미국이 애지중지하는 가치이므로, 싫더라도 그는 잃은 것을 찾으려고 또 좌충우돌할 것이다. 그는 중국의 통치자와는 달리 계산된 공수표를 날리고도 국내의 여론이나 정적들을 핑계로 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도 초강대국의 지도자로서 출입에 명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의 체제 안에서 그는 자기 국민에게 명분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들어오면 판이 커지는 동시에 복잡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그들은 초강대국으로서 명분을 따지기 시작할 것이고, 협상과정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계로 전파되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현재 중국의 지도자에게 “진정한 무(武)란 창을 멈추는 것(止戈, 지과)”이라는 광무제의 중흥정치의 명분을 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다자간에는 객관적인 규율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판이 커질수록 일은 오히려 더 쉬워질 것이다.

 

중국이 들어오면 판이 커지는 동시에 복잡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연합뉴스


한편 외부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내부에서 기회가 생긴다. 한반도 문제의 최종 당사자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과 북한이다. 압박을 받을수록 북한은 한국과 가까워지려 할 것이다. 오랜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경제적인 격차는 물론 관념적인 격차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인데, 외부의 압박을 내부 소통의 지렛대로 삼으면 차이를 극복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단순한 주장이다. ‘손자병법’에 상산(常山)의 솔연(率然)이라는 뱀 이야기가 나온다. 이 뱀은 머리를 공격하면 꼬리로 치고, 꼬리를 치면 머리로 반격하고, 허리를 치면 꼬리와 머리로 동시에 달려든다고 한다. 발톱 없는 뱀으로서 솔연은 허둥대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행동을 통해 수세를 공세로 바꾼다. 한국은 허둥댈 정도로 약하지 않을뿐더러 수세를 공세로 바꿀 명분까지 쥐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제일 큰 명분을 그러잡는 이에게 시선이 쏠리고, 여럿이 주목하는 이는 누구도 해치지 못한다. 중국인들은 명분을 정해주는 이를 천자(天子)라 했다. 명분을 나눠줄 자리에 있는 이, 그가 다름아닌 천하의 우두머리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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