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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티아고 1] 홧김에 떠난 800km 순례자 길

실패한 어학연수, '나 뭐해 먹고 살지?' 불안에 떨다 찾은 길

2018.07.07(Sat) 20:17:32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고 돌아온 지 딱 1년. 당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가 막막했다. 캄캄한 동굴에 혼자 남겨진 기분. 무작정 스페인으로 향했다. 30여 일간 지겹도록 걸어 800km를 완주했다. 걷고 먹고 자고 일어나 또 걷는, 그 단순한 삶으로부터 아름다운 위로를 받았다. 그 삶이 지난 열두 달간 꿈에 나온 횟수는 손발을 다 합쳐도 못 센다. 일상에 지친 나를 위해 당시 찍은 사진과 일기, 메모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공유한다. 그 기억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즈한국] 산티아고로 가기로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지워버리고 싶었다. 뭐 하면서 먹고 살지?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니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이 질문은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처음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이과생이었지만 불타는 마음에 신문방송학과에 교차 지원했다. 학내 활동과 몇몇 언론사 인턴 생활을 거치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꼈다. 새로운 길을 찾고자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물론 변명이었다. 그저 내 삶을 규정할 직업을 확신 없이 가진다는 것이 무서웠을 뿐. 

 

어학연수가 망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새로운 길은커녕 영어 실력은 영어 울렁증을 겨우 극복한 정도였다. 속 시원하게 여행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다. 뚜렷한 목적이 없으니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다. 해외 생활 내내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렸다.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불안은 커졌다. 돈은 돈대로 바닥이었다. 

 

800km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 대성당. 그곳에 당도했을 때 기쁨보다는 공허함이 컸다. 사진=박현광 기자

 

마지막으로 동남아여행을 택했다. 1년여의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다.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였다.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에 올라가 피곤이 잔뜩 낀 몸을 뉘었다. 페이스북을 보는데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만 너무나 조금만 느낍니다. (중략) 당신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인간입니다.”

 

문득 너무 생각이 많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유산 앙코르와트도, 말레이시아 세계 3대 반딧불 습지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그저 실타래가 이백만 번 엉켜 있을 뿐. ‘나 돌아가서 뭐 하지?’

 

또 다시 불안이 습격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무언가 얻어가기 늦었다면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었다. 뭔가 해야 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산티아고 순례자 길이었다. 800km를 걸으면 몸이 고단해서라도 아무 생각이 안 날 것 같았다. 이미 텅텅 빈 통장을 바짝 긁어모아서 머릿속 계산기를 돌렸다. ‘그래, 갈 순 있겠어.’

 

산티아고는 야고보 성인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스페인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위치한 산티아고 대성당. 사람들은 그곳에 야고보의 유해가 묻혔다고 믿는다.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파한 야고보. 중세 순례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그의 유해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그 덕에 오늘날 순례자 길은 유럽 전역에 퍼져 있다. 

 

걷고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걷는 단순한 삶은 아름다운 위로를 선사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순례자 길의 명칭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영어로는 웨이 투 산티아고(Way to Santiago)​, 우리말로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현재는 프랑스 국경 마을인 생장 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걷는 ‘프랑스 길’이 가장 일반적이다.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북쪽 길’도 있어 잠시 갈등했지만 곧장 결정 내렸다. ‘지금 당장 떠나는 게 우선이야.’ 가장 많이 가는 프랑스 길을 걷기로 하고선 이틀 뒤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충동적이고 비현실적이었지만 아무렴.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설렘이 차올랐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나약하다는 걸. 동시에 그렇게 큰 위로를 받을 거라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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