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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담배연기로 몸살 앓는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증권가

대로변 금연구역 확대되자 흡연자 뒷골목으로…비흡연자들 눈살 찌푸려

2018.06.22(Fri) 18:21:40

[비즈한국] 여의도 증권가 높은 빌딩숲 사이 자리한 좁은 길목, 이른바 ‘​증권거리’​. 영화·드라마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탄 이곳은 인근 직장인들의 쉼터로 활용된다. 최근 금연구역 확대로 이곳이 갈 곳 잃은 흡연자들에게는 은신처로, 비흡연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거리로 바뀌었다. 

 

22일 오후 12시 30분쯤 찾은 증권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들로 빼곡했다. 이들은 약 7m 폭의 길목을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이사이 있는 ‘​노 스모킹(No Smoking)’, ‘​금연구역’​ 등의 표시가 적힌 팻말·스티커가 무색하게 양 옆 화단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와 버려진 각종 캔, 일회용 컵이 즐비했다.  

  

# 흡연자 비흡연자 관리인  모두 모인 폭 7m 좁은 거리

  

평소 이곳을 자주 지난다는 한 직장인은 “​언젠가부터 여의도 거리에 담배 필 곳이 많이 없어졌다”​며 “​그러다 보니 흡연자들이 이곳으로 모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태연하게 피고 있으니 ‘​여기선 흡연해도 상관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이 위치한 이른바 증권거리. 길 양 옆에서 흡연 중인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증권거리에 흡연자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도 금융감독원에서 여의도역까지의 국제금융로와 여의도역에서 여의나루역까지의 국제금융로 7길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이 구역은 여의도 증권가의 대표적인 ‘흡연대로’​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뒤부터 건물 앞 대로변으로 나가 흡연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신 자주 찾는 곳이 이곳(증권거리)”​이라며 “​예전에도 흡연자들은 있었지만 대로변 금연구역 지정 후 확실히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흡연자 외에 비흡연자와 청소 중인 건물 관리인 등을 한 데 볼 수 있다. 길에서 만난 직장인 최 아무개 씨(여·​28)는 “​(담배) 냄새 때문에 그 길목은 피해간다. 지나갈 때면 숨을 참는다”​며 “​금연 표시가 저렇게 많은데도 피우는 건 너무한 것 같다. ​흡연자가 너무 많아서 금연구역을 흡연구역으로 잘못 봤나 눈을 의심한 적도 있다”​고 일갈했다. 

 

최 씨 말대로 이곳에는 금연 등의 경고 문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 건물 출입구 앞에는 ‘​본 건물은 금연건물로 지정돼 흡연이 금지돼 있습니다’라​는 팻말이 출입구 옆 화단에 설치돼 있었다. 다른 증권사 앞에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건물 앞 10m 내에서 흡연할 경우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는 팻말도 있었다. 모두 증권사가 입주한 건물에서 붙여놓은 표시다. 

 

# 구에서 손 놓은 거리, 곳곳 ‘금연’ 팻말 설치했지만 실상은 ‘무용지물’

 

영등포구와 건물 관리인 등에 따르면, 건물 앞이라도 흡연이 가능하다. 금연구역 설정의 기본이 되는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건물 앞 거리나 골목을 금연구역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자치구에서 조례로 금지하는 경우 외에는 일반 건물 앞이나 골목길에서 흡연이 가능하다. 여의도의 경우 한국거래소 뒷길, 여의도역과 여의도공원 사이 대로변 등 일부를 지정해 놨을 뿐, 증권거리는 흡연단속 구역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 금연 표시 스티커나 팻말이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장인들이 흡연하고 있다. 사진=김상훈 기자


마침 건물 앞 화단을 청소 중이던 KB증권 건물 관계자는 “​이곳은 지정된 흡연구역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건물에 냄새가 들어오니 피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다”​며 “​하루 세 번씩 건물 앞 담배꽁초 청소 외에 흡연을 막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 건물 관계자는 “​​화단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지만 치우면 금세 또 와서 피곤 한다”​며 “​​대로변처럼 구에서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거리는 흡연과 관련해 관리책임 주체가 모호하다. 영등포구와 건물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곳이 지적도상 도로가 아닌 사유지라는 이유로 지정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현재 골목 사이까지 금연구역을 확대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증권가 인근 흡연자가 많은 만큼 기존 지정된 대로변 금연구역을 연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변의 부족한 흡연구역도 거리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시내 합법적인 실외 흡연구역은 59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에서는 자체적으로 금연거리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 금감원과 증권사 등은 이 거리를 담배연기 없는 거리로 만들기 위해 협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임직원들이 거리에서 흡연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도록 별도 흡연부스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일각에선 간접흡연으로 피해를 입는 비흡연자를 위해서라도 흡연구역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시설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시설에 흡연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한 흡연자 단체 관계자도 “현재의 흡연구역은 금연구역과 경계가 모호해 갈등만 조장한다”며 “흡연구역을 설치하되 당국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흡연구역 확충이 간접흡연으로부터 일반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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