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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서울 불바다'의 그 장사정포, 철수하면 무조건 좋은 걸까

철수 논의 보도 국방부 부인에도 위력 과대평가, 비례성 원칙 등 갑론을박

2018.06.22(Fri) 15:49:30

[비즈한국]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정상화도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4일 열린 제8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의 ‘장사정포’ 철수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연합뉴스’와 ‘서울신문’을 비롯한 몇몇 언론은 이번 장성급회담에서 MDL(군사분계선) 북쪽에 배치된 북한군의 장사정포를 30~40km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을 제안했고, 북한은 MDL 남쪽에 전개된 우리 포병도 그만큼 철수하는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각에서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의 종결회담이 열리고 김도균 남쪽 수석대표(왼쪽)와 안익산 북쪽 수석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방부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국방부가 부정하는 것과 달리 여러 언론은 논의가 실제로 이뤄졌다고 추측하는 분위기다. 쉽사리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이유는 북한의 장사정포라는 무기가 가진 무게감 때문이다.

 

장사정포는 북한이 군단급 이상 포병부대에서 운용하는 네 가지 무기를 의미한다. 이 중 M1978 ‘곡산’과 M1989 ‘주체포’는 포신에서 포탄을 쏘는 자주포고 나머지 두 개인 ‘240mm 방사포’와 ‘300mm 방사포’는 다연장로켓 발사기(MRL)로 분류한다. 곡산과 주체포는 약 53km의 사거리, 240mm 방사포는 60km, 300mm 방사포는 12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다. 북한은 장사정포 약 330문을 MDL 북쪽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포병의 대규모 훈련. 사진=KCNA


장사정포는 북한군이 가진 무기 중 가장 빨리 대한민국을 타격할 수 있고, 가장 빨리 수도권을 마비시키며, 완벽히 막아낼 수 없는 무기다. 1994년 3월 19일, 북한의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이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했는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장사정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전에서 야포는 항공 폭격이나 미사일 공격보다 파괴력이 작고 사거리도 짧아 위력이 약한 편이다. F-15K 전투기는 250kg 폭탄 16발을 달고 1000km 밖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우리 군의 ‘현무2’ 탄도미사일의 경우 500kg에서 1t 미만의 탄두를 장착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 군의 주력 자주포인 ‘K-9’이 발사하는 155mm 포탄의 무게는 48kg에 불과하다.  1분에 여러 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셈이니 화력 측면에서는 항공기가 훨씬 무서운 셈이다.

 

하지만 야포는 발사를 결심하고 적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짧다. MDL에 전개된 북한의 장사정포는 미리 어디를 쏠지 정해놓고 포탄과 장약, 발사인원과 진지가 있는 상태에서 마음만 먹으면 즉시 발사가 가능하다.

 

수도권과 휴전선이 매우 가까운 대한민국의 특성상 이는 치명적이다. 2016년 브루스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인천·서울·경기도를 아우르는 수도권 지역의 GDP는 8460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경제권이 북한이 공격을 결심한 순간 3~4분만에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은 북한 장사정포 제거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많은 정밀유도무기를 배치하고 국내 최초의 유도폭탄인 KGGB도 바로 이 장사정포 파괴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공군은 일명 ‘X-ATK’라는 이름으로 북한 장사정포 제거 임무를 맡는다. ​

 

한국군의 천무 다연장로켓. 사진=국방TV


육군의 경우 K-9 자주포, K55a1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KTSSM 전술 탄도미사일이 북한 장사정포 대응 임무를 맡는다. 우리 육군은 현재 자주포 전력만은 세계 톱3에서 미국과 러시아와 겨룰 수 있을 만큼 운용 대수와 성능이 월등하다. 여기에 양산이 이제 시작되는 천무 다연장로켓과 조합할 경우 전력은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와 국방과학기술연구소는 중고도 무인기에 활강 유도폭탄과 특수 센서를 탑재, 대화력전 임무 및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공격임무를 맡기고 한 번에 여러 대의 장사정포를 공격 가능한 신형 자폭 무인기까지 개발 중이다. 우리 군이 장거리 미사일과 함께 필사적으로 대응에 노력하는 무기가 장사정포다.

 

장사정포가 MDL 이북으로 철수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어 장사정포 철수에 대한 논란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행동에 우리도 상응하는 행동을 하는 ‘비례성의 원칙’ 때문이다.

 

장사정포 철수 논란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국방부가 부인한 사안이니, 북한이 장사정포 철수 대가로 무엇을 주장할지 아무도 확인해 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복수의 언론은 북한 장사정포 철수 대가로 주한미군 ‘210화력여단’을 후방으로 철수시키면 북한이 이득을 본다는 보도가 많다. 

 

주한미군 210화력여단은 강력한 포병전력은 물론이고, 대포병 레이더와 무인정찰기까지 보유해 북한군의 포병 화력을 신속히 제압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부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쪽에 배치된 미군부대로, 유사시 북한과의 교전이 일어날 경우 가장 먼저 전투에 투입돼 일명 ‘인계철선’으로 미군의 자동 참전을 보장하는 존재다. 

 

일부 언론은 장사정포 철수 대가로 MDL 남측 수십km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MDL 남측에서 우리 군의 정찰기나 항공기가 뜨지 못한다면 북한의 도발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기습 공격이 일어났을 때 대응이 늦어 초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만약 이를 요구한다면 협상의 여지가 없는 논의가 될 것이다.

 

장사정포의 위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예비역 장성을 비롯한 몇몇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장사정포 갱도진지를 파괴하면 보급선이 끊어져 330기에 달하는 장사정포도 포탄을 몇 발밖에 쏘지 못하고 고갈되는 데다, 장사정포 포탄은 콘크리트 관통력이 없고 정확도가 떨어져 위협이 과장됐다고 한다. 북한 군사력이 핵무기 개발에 치우쳐, 재래식 전력의 유지보수에 소홀하다는 주장이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에 이런 주장에도 타당한 면이 있다. 

 

북한 장사정포의 위협 범위. 사진=Stratfor


하지만 과거에는 장사정포의 효과가 별 것 없다는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2008년 한 신문이 국군의 날에 맞춰 게재한 사설에는 북한군이 휴전선에 배치되어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살상 가능한 야포가 1000문에 이르며 1시간에 2만 5000발의 포탄이 수도권에 떨어진다고 표현했다. 

 

2015년 다른 신문의 기획기사에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북한 장사정포가 큰 위협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을 하면서도 장사정포로 인한 민간인 인명피해는 16만 명에서 325만 명이며, 더 적은 추정을 하면 2만 명 정도로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제2차 이라크전 후 7년 동안 4400명의 전사자가 생겼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장 적은 추정을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 기능의 마비로 인해 소비되는 자원과 인원이다. 공습경보도 제대로 없이 포탄이 떨어지면 첫 포탄 낙하 후 SNS 및 통신망을 통한 공포의 확산은 나라 전체를 패닉에 빠트릴 수 있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필요한 군 병력과 동원 자원의 숫자는, 전면전에 필요한 병력과 장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만들어 반격능력 자체를 떨어트릴 수 있다.

 

다른 문제는 장사정포의 존재가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 안보전략 싱크탱크인 스트랫포(Stratfor) 같은 연구단체는 물론 ‘포브스’ 등 여러 외국 주요 언론들은 수도권을 타격할 장사정포의 효과와 파괴력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장사정포의 사거리 안에 대한민국의 국가 기능 대부분이 집중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폭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지난 2년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자 서울에 입주한 외국계 기업 중 일부는 미국 국적자에 대한 비상연락망을 유지하고, 유사시 대피 계획에 대해 공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인 셈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사정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군축을 논의할 때, 핵무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북한의 장사정포가 북쪽으로 물러나는 만큼 우리가 직접적으로 얻는 이득이 가장 많아지는 분야다. 얻는 이득이 큰 만큼 우리가 양보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비판론자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의 신형 300mm 방사포. 사진=KCNA


대안은 있을까. 북한 장사정포를 전부 치우고 우리도 모든 군 장비를 후방으로 배치하는 급격한 결정보다는, 느리지만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한 평가와 그에 맞는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조금씩 확인하고 우리도 MDL에서 포병화력을 축소시키거나 혹은 상응한 조치를 충분히 취할 수 있다. 

 

당장 북한의 장사정포를 즉시 철수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북한 장사정포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면서 객관적으로 상호간 동등하게 DMZ 내 포병 화력을 줄일 수 있다면 이로 인해 얻는 이득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평화는 감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협상은 서로 불신하는 사람 사이끼리도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 냉정하고 정확한 평가와, 평가에 따른 객관성을 갖춰 나가면서 쌓는 신뢰는 증명할 수 없는 감성으로 얻는 신뢰보다 훨씬 더 값진 결과를 낳는다. 한민족의 유대감보다 나라 대 나라로서 신뢰를 갖추는 것이 남북한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이는 군축도 마찬가지다. ​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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