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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대신증권은 왜 '진짜 지갑'을 만들어 팔까

직접 디자인 및 제작 500개 한정판…소비자 호감 얻기 위한 '브랜딩' 일환

2018.06.20(Wed) 16:15:52

[비즈한국]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지갑에 보관된 암호화폐(가상화폐)는 절대 안전하다더니, 암호화폐 거래소가 또 다시 해킹을 당했다. 올해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블록체인 그 자체는 완벽할지 몰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고다.

빗썸 이용자의 전자지갑에서 350억 원어치의 암호화폐가 도둑맞은 20일, 공교롭게도 한 증권사는 ‘진짜’ 지갑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돈이나 카드를 보관할 수 있고 가죽으로 만들어진 실물 지갑이다. 핀테크가 금융업 전반에 화두가 된 지도 한참이 지난 요즘에, 금융회사가 갑자기 지갑을 선보인 ‘엇박자 감성’​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대신증권이 20일부터 판매에 돌입한 지갑의 정식 명칭은 ‘대신 월렛’​. 와인, 카라멜, 옐로, 그린, 인디고, 다섯 가지 색상으로 제작됐으며 색상별로 딱 100개만 파는 한정판 콘셉트다. 반으로 접는 형태인데 그 디자인이 기존 지갑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지갑 겉면에 자주 쓰는 카드를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포켓이 있고, 내부에 현금을 넣는 긴 포켓과 두 개의 카드 포켓이 있다.

대신증권이 20일부터 판매에 돌입한 ‘대신 월렛’​. 마진이 없기에 사용된 가죽 부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됐다. 사진=대신증권 홈페이지


지갑 구조를 가만히 보면 긴 직사각형 형태의 가죽 세 장을 덧대어 완성한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구조 덕분에 박음질도 최소화했다. 지갑 위아래로 외곽선을 따라 손바늘질로 마감됐다. 가죽은 고가의 이탈리아제 부테로(Buttero)다. 염색 과정에서 색감을 살리기 위해 색깔에 따라 다른 부위의 가죽을 사용한 점도 세심한 배려다.

사실 대신 월렛이 얼마나 뛰어난 품질을 가졌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점은 ‘증권사가 굳이 왜 지갑을 만들었을까’다.

당장 백화점에만 가도 내로라하는 브랜드에서 수많은 가죽 지갑을 판다. 일반적으로 전문 패션브랜드가 아닌 기업에서 만든 소품은 단지 기업 로고가 그려진 기념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신 월렛에는 대신증권 로고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금 포켓을 열면 아주 작은 글씨로 ‘Designed by Daishin’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지갑을 쓰는 사람이나 발견할 만한 위치다. 그래서 홍보 목적은 아니다. 애당초 홍보 목적이라면 한정판으로 만들 이유가 없고, 500개는 적어도 너무 적다.

무엇보다 이벤트 상품이 아니라 정식으로 판매하는 상품이다. 가격은 색상에 따라 6만 4000원 혹은 5만 4000원. 가죽의 질이나 독특한 디자인을 감안하면 크게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비스 차원은 아니다. 지갑 500개쯤 판다고 해서 대신증권의 실적에 무슨 긍정적인 영향을 줄 리도 없다. 상품 소개에는 기업이윤을 남기지 않는 고객 감동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짤막한 설명만 나와 있다. 

대신증권 로고는 없고 단지 대신이 만들었다는 표시만 지갑 안쪽에 각인돼 있다. 사진=대신증권 홈페이지


정답은 ‘브랜딩’이다. 대신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지갑이라는 아이템 선택은 탁월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돈을 넣고 빼는 금융의 본질과 지갑이 일맥상통한다. 제법 나이가 있는 투자자들은 대신증권 하면 황소부터 떠올린다. 과거 여의도 사옥 앞에 있는 황소상 때문이다. 이 역시 지갑의 소재인 소가죽과 묘한 일치를 이룬다.

대신증권은 지난 2011년부터 ‘리브랜딩(Rebranding)’에 돌입했다. 기업 로고부터 서체, 슬로건,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자인 언어를 완전히 바꿨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서 ‘큰 대 믿을 신’을 밀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광고 및 홍보는 말할 것도 없다. 대신증권 로고가 없는 10만 개의 에코백이 무료로 배포되고, 누구나 들고 다니고 싶은 세련된 디자인의 대신증권 우산을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결과, 대신증권에 대한 최근 이미지는 제법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변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원래 한번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기업의 고정된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은 10년도 모자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대신 월렛 판매 소식 발표 직후 대신증권 내부에서도 구입 문의가 쇄도했다는 후문. 회사 직원으로서 소장하고 싶다거나, VIP 고객 선물용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청탁 아닌 청탁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떠한 특혜 없이 예정대로 20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절반 넘게 팔려나갔다. 브랜딩은 고객관리가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호감을 얻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대신증권은 확실히 알고 있는 듯하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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