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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궁중족발 사건'과 상가임대차보호 제도의 맹점

짧은 임차기간에 이상한 '환산보증금', 건물주도 곤욕…상생의 길 찾아야

2018.06.18(Mon) 08:53:12

[비즈한국] 최근 가게 월세를 한꺼번에 4배 올린 건물주에게 임차인이 망치를 휘두른 ‘궁중족발’ 사건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에도 가수 리쌍이 자신들 소유의 건물에 세든 곱창집 ‘우장창창’에 강제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상가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화제가 됐다.

 

이러한 분쟁이 명도소송 등 법정다툼으로까지 가게 되면 대개 원고, 즉 임대인이 이긴다. 임대차계약 기간만료가 주된 원인이고, 임차인의 차임(임대료) 연체도 한몫한다. 그러나 임대인 입장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임차인을 실제로 내보내는 데에 곤욕을 치르곤 한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임차인이 거세게 저항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임차인 측이 노골적으로 소송지연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궁중족발 사건에서도 임대인은 승소를 하고도 무려 12번에 걸친 강제집행을 시도한 끝에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임차인모임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촌의 ‘본가궁중족발’ 앞에서 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가게 앞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임대차계약기간이 끝났음에도 임차인이 가게를 비워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뭔가 억울한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음식점, 커피숍 등 생계형 자영업의 경우 가게를 시작할 때 이전 임차인에게 때로는 보증금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이것을 ‘권리금’이라고 한다. 인테리어 등 각종 시설비에도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다. 그러고 나서 장사를 시작한다. 요즘같이 자영업자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단기간에는 이익을 보기는커녕 투자금도 회수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결국 몇 년 동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운 좋게 가게 인근에 상권이 활발해지게 되면 그 기간이 단축될 여지는 있다. 과연 임차인은 임차기간이 몇 년이면 만족할까.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빨리 장사를 접고 싶을 것이고, 장사가 잘 된다면 오랜 기간 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현행법제도가 이러한 임차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로 논의되는 것은 임차기간과 차임이다. 우선 임차기간을 보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1년으로 계약을 했어도 임대인에게 최대 5년간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돈을 연체하는 등 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갱신을 요구할 수 없지만, 무리 없이 장사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5년 동안은 장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쟁점은 5년이면 임차인이 투자금도 회수하고 안정된 위치에 놓여 전직을 할 수 있는 기간이냐는 것인데, 바로 궁중족발 사건이 촉발된 지점이다. 족발집 주인은 5년이 너무 짧다는 반면 건물주는 계약이 끝났다는 주장이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외국입법례(프랑스는 최소 9년)를 감안하면 확실히 5년은 짧다. 

 

다음으로 차임을 보자. 법에 따르면 차임 또는 보증금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그 밖의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에 대하여 증감을 청구할 수 있으며, 다만 증액의 경우에는 차임 또는 보증금의 100분의 5의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지난해까지는 100분의 9). 

 

또 증액 청구는 임대차계약 또는 약정한 차임 등의 증액이 있은 후 1년 이내에는 하지 못하게 규제한다. 즉 한 번에 차임 또는 보증금의 5%를 초과해서 올리지 못하고, 올린 후 1년 이내에는 다시 올리지 못하게 된 점에서 이 정도면 임차인 보호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환산보증금’이라는 이상한 제도가 등장한다. 보증금과 월차임의 100배를 합산한 돈인 환산보증금 제도는 서울의 경우는 4억 원, 수도권 중 과밀억제권역(인천 등 경기도 대부분 지역이 포함)은 3억 원 등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임대료인상률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액의 월차임을 내는 임차인의 경우 건물주가 차임을 2배, 3배로 인상할 경우 계약갱신을 보장하는 법조문은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목적이 사회적 약자보호를 넘어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니, 고액의 차임을 내는 임차인도 보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환산보증금 제도는 즉시 폐지하는 것이 맞다. 그 외에 권리금 회수도 뜨거운 감자이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주와 세입자 간 상생협약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국회에서도 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임대인인 건물주와 임차인인 세입자 간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2018년 우리 사회는 분배와 공존의 시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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