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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설득하고 싶은가, 가르치려 하지 마라

오바마 '관용' 이야기하자 이슬람 증오 더 늘어…대중이 좋아하는 대상과 연결해야

2018.06.11(Mon) 09:37:45

[비즈한국] 2000년 9월의 연쇄적인 테러 공격과 이라크 전쟁은 하나의 편견을 강화시킨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이슬람교도는 테러리스트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되었고, 이후 ‘주모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이슬람교도가 주모자로 지목되곤 한다. 

 

지난 2015년 12월 2일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대규모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직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아침 리즈완 파룩과 타쉬핀 말락은 소총으로 무장한 채 파룩의 동료 모임에 난입해 열네 명을 살해했다. 총을 쏜 사람의 이름이 이슬람계라는 보도가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도를 죽이고 미국에서 몰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12월 2일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관용의 중요성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검색만 늘었다.


비극적인 총격사건이 이슬람교도에 대한 연쇄적인 ‘증오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오마바 대통령은 관용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그러나 최근 읽은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이 연설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구글 검색 데이터는 전혀 다른 정보를 일러준다. 당시 프린스턴에 있던 에번 솔타스와 나는 관련 데이터를 검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차별 거부는 모든 미국인과 모든 신념의 의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슬람교도를 검색하면서 ‘테러리스트’, ‘나쁜’, ‘폭력적인’, ‘사악한’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킨 검색, 이른바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연관 검색어가 연설 직후 2배로 늘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들이게 한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인 시험을 거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절박하게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있던 시리아 난민에 대한 부정적 검색은 60% 증가한 반면,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관한 검색은 35% 감소했다. (중략)

 

오바마 대통령은 옳은 말만 했다. 모든 전통적인 매체들이 오바마의 따뜻한 연설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표했다. 하지만 디지털 ‘자백약’을 투여한 인터넷의 데이터는 이 연설이 주된 목적과 반대되는 효과를 낳았다고 암시한다. 인터넷 데이터는 오바마와 우리 모두가 생각하듯 그의 연설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보다는 오히려 격앙시켰다고 말한다. -책 156~157쪽 

 

무서운 이야기다. 관용을 이야기하는 연설이 늘어날 때마다, 오히려 이슬람교도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더 증폭된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Muslim’과 ‘Terrorist’ 단어의 구글 검색 추이. 2015년까지는 ‘Muslim’과 ‘Terrorist’라는 단어의 검색 빈도 및 검색이 집중되는 시기가 겹치지만, 2016년부터는 연관이 급격히 약해진다. 사진=구글 캡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중에 ‘증오’의 감정을 완화시켰던 대목, 다시 말해 부정적인 연관 검색어 대신 긍정적인 연관 검색어가 증가했던 대목에 주목하라고 지적한다. 

 

구글 검색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그가 원했던 반응을 촉발한 구절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계 미국인들은 우리의 친구이며 우리의 이웃, 우리의 동료, 우리의 스포츠 영웅입니다. 그들은 제복을 입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구절 이후, 구글 검색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검색할 때 연관되는 단어 구성이 달라졌다.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가 아닌, ‘운동선수와 ‘군인’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상위에 올라갔던 것이다. -책 190쪽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직접적으로 대상을 언급하고 ‘사람을 가르치려 들면’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 더 높아진다. 반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상(스포츠와 애국심 등)과 사람들이 싫어하는 대상 사이에 ‘잊혀 있던’ 연관을 부각하는 등의 세련된 기술을 적용하면 의도했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연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두 달 뒤의 연설에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슬람계 미국인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극도로 집중했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라고 말했다. 토마스 제퍼슨과 존 애덤스 등 미국을 세운 위대한 인물들 모두 코란을 가지고 있었다. 시카고의 마천루는 이슬람계 미국인이 디자인했다. 오바마는 다시 한 번 이슬람계 운동선수와 군인을 언급했고 이슬람계 경찰과 소방관, 교사, 의사에 대해서도 말했다. 

 

구글 검색을 이용한 나의 분석에 따르면, 이 연설은 이전 연설보다 성공적이었다. 대통령의 연설 몇 시간 후에 이슬람교도에 대한 악의와 분노에 찬 연관 검색어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책 191쪽

 

수많은 캠페인이 왜 실패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대상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면서 옳은 말을 하면, 대중은 오히려 이 지적에 ‘반감’을 지니는 경우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곧 지방선거 결과가 나올 텐데, 유세 마지막까지 후보자들이 이런 부분을 감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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