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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농부가 투자를 받으면 생기는 놀라운 변화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농부-소비자 연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연매출 10억

2018.05.31(Thu) 16:42:33

[비즈한국]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숨통이 트였어요. 지난해까지 잘 안 됐으면 농사를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이을숙 씨는 농부가 된 지 4년째다. 6살배기 아들과 무심코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골로 내려왔지만 서울 회사원 경험이 다였던 이 씨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5000평을 얻어 소규모로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지만 판로가 걱정이었다. 시중보다 알이 작고 양이 적은 감자를 받아주는 도매시장은 드물었다.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포기를 떠올리던 중 지난해 ‘​농사펀드’​를 통해 감자를 모두 판매했다. 무엇보다 이 씨가 얻은 건 농부로서의 자부심이었다. “누군가 농부로서 내 철학과 노력에 투자해준다는 생각에 눈물 날 뻔했어요.”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는 농촌 관련 일만 15년째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농사펀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농부와 고객을 이어주는 플랫폼 운영 스타트업이다. 농부가 ‘농사계획서’를 올리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투자한다. 대가는 수확한 농작물이다. 결과물을 받아보기까지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7~8개월 걸린다. 누가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참고 견딜까 싶지만 현재 고객은 1만 7000여 명, 다시 이용하는 고객이 60%를 넘는다. ‘남다른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38)가 창업한 건 3년 전이다. 2003년부터 해온 농촌 관련 일이 밑바탕이었다. 그가 만난 농부는 ​대부분 ​영농투자자금을 활용해 빚을 내서 농사하고 수확한 뒤 갚는 상황을 반복했다. 흉년이라도 들면 빚이 쌓였다. 수많은 농부의 바람은 같았다. 빚 걱정 없이 ‘내가 원하는 농사’를 해보고 싶다는 것. 

 

“농법이 천차만별이기에 농부가 가진 철학이 다 달라요. 근데 시장에서 요구하는 건 같아요. 크고 빨갛고 예쁜 사과죠. 그런 사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도 치고, 성장촉진제를 쓰고, 품종도 바꿔야 해요. 예를 들어 홍옥은 맛있지만 낙과율이 높기 때문에 지금 시중 사과 90%는 부사 종인 거죠.”

 

농부가 건네는 ‘​고맙다’​​는 말에 마음이 동해 농부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박종범 대표. 사진=이종현 기자

 

펀딩이 끝나면 모인 자금의 50%를, 수확과 배송이 끝나면 나머지 50%를 농부에게 지급한다. 자금은 물론 수요를 미리 확보할 수 있기에 농부는 빚 걱정을 줄이고 친환경·유기농같이 ​까다로운 작물 재배에 도전한다. 현재 농사펀드에 등록한 농부는 400여 명. 주로 4~5년 차 소규모 농부로 ‘고집’ 때문에 ‘예쁜 농작물’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대표의 말이다.

 

“언제가 맛있는지는 농부가 가장 잘 알아요. 유통과정이 없으니까 덜 익었을 때가 아니라 가장 맛있을 때 따서 다음 날 보내요.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농사펀드를 생소해 하다가 한번 맛을 본 사람은 계속 이용하는 거죠.”

 

농사펀드는 ‘투자하기’보다는 ‘같이 농사짓기’라는 단어를 쓴다. ‘같이 농사짓는 사람’은 농작물이 재배·수확되는 과정을 홈페이지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한 가지 원칙이 있다. 투자하기 위해선 농부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보내야 한다. 농부와 고객이 교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구매자와 생산자가 서로 누군지 아는 상황에서 농부는 더욱 정성을 쏟고 고객은 안심한다. 농사펀드 농부 중 한 명인 최동녘 씨(28)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누가 내 사과를 사는 줄 알기 때문에 더 신경쓰게 돼요. 사과가 나오면 가장 맛있는 놈을 골라 내게 먼저 투자해준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죠.”

 

박종범 대표는 “농협을 대체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이종현 기자

 

박 대표가 ‘상품 설명’이 아니라 ‘농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농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알린다. 농부를 응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매출 또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회사가 가져가는 펀딩 수수료는 14% 안팎. 첫해 연 매출 5억 원, 지난해 10억 원을 기록했다. 올 1분기 플랫폼 거래액만 3억 원을 넘었다. 추석과 기타 매출을 고려하면 올해 거래액은 20억 원을 바라본다. 

 

농사펀드는 1차 생산물 중개에 그치지 않는다. 자체 조달한 농산물을 가공해 만든 ‘소금 젤라또’, ‘곰취 마카롱’ 등 2차 생산물을 만들어 팔거나, ‘손보내기’ 농촌 체험활동, 유채꽃 웨딩 촬영 행사 등 농촌 자원을 활용해 사업 다각화를 진행 중이다. 

 

“오늘 아침에 먹은 쌀 누가 만든 줄 아세요? 도시의 한 사람이 적어도 농부 한 명의 이름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그 경험은 정말 즐겁고 내 생활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도시 사람은 안심되는 농작물을 받아볼 수 있고, 농부는 고속도로 한쪽에 좌판을 펴는 것이 아니라 농사판에만 있을 수 있는 거죠.”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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