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지난해 4월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최근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 측은 “구 회장은 1년 간 투병했으나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와 가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이로써 23년간 LG그룹을 이끌어온 구본무 시대가 막을 내렸다.
# 그룹 회장이 되기까지
구 회장은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시(당시 진양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연세대학교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애슐랜드대학교를 졸업했다. 구 회장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구 회장은 삼선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80~1990년대 언론보도에서는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나온다. LG그룹 관계자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구 회장은 대학 졸업 후인 1975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장을 거쳐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장, 1981년 LG전자 이사에 취임했다. 그가 그룹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건 1985년 LG그룹 기획조정실 전무에 오르면서부터다. 기획조정실은 회장 직속 기구로 회장을 보좌하는 곳이다.
1995년 2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은퇴하면서 구 회장이 LG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공정하고 강한 경쟁을 통해 배출된 전문경영인들이 전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경영에 전념하도록 자율경영체제를 굳건히 정착시킬 것”이라며 “공정·정직·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정도경영을 통해 철저히 고객을 만족시키는 경영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승계를 결심한 이유는 구 명예회장의 부친인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인회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던 구자경 명예회장이 아들에게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 그룹을 이끌다
대부분 재벌 대기업에서 가족 간의 경영권 다툼을 찾아볼 수 있지만 구 회장은 이렇다 할 경영권 논란을 빚은 적이 없다. GS그룹, LS그룹, LIG그룹, LF그룹 등이 LG에서 계열분리를 할 때도 스캔들은 없었다. LG그룹은 “구 회장은 계열분리가 있었음에도 매출은 30조 원대(1994년 말)에서 2017년 160조 원대로 5배 이상, 해외매출은 약 10조 원에서 약 110조 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켰다”고 평가했다.
구 회장은 취임 후 과감한 도전을 강조했다. 경영진에게는 단기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부단히 도전해 목표를 달성할 것을 주문했다. LG그룹은 디스플레이, 2차전지, 통신사업을 과감한 도전의 성공사례로 제시했다.
구 회장은 기업문화의 변화도 이끌었다. LG그룹은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LG 웨이 선포 등 경영체제와 기업문화 측면의 일련의 변화 또한 구 회장 리더십의 결과”라고 전했다.
LG 웨이는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정도경영의 행동방식으로 △궁극적인 지향점인 일등 LG, 시장선도 기업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구 회장은 최근까지도 자동차부품, 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15년 신년사에서 “LG만의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철저한 미래 준비로 사업 기회를 잡는다면 거대한 파도가 덮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마곡산업단지에 4조 원을 투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했다. 구 회장은 2014년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에서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가 될 것”이라며 “LG사이언스파크를 중심으로 수만 명의 다양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육성해 기술과 산업 간의 융·복합을 촉진하고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다수의 LG 계열사가 LG사이언스파크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 평소 모습
구 회장은 평소 낚시와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골프연습장에 8개월 동안 개근했다는 일화도 들린다. 골프장에서는 철저한 매너로 ‘필드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 회장의 다른 취미는 철새 관찰이다. 그는 집무실에 망원경을 놓고 휴식을 취할 때 한강을 바라보며 새를 관찰했다. 2000년 구 회장은 책 ‘한국의 새’를 출판하기까지 했다.
구 회장은 2000년대 초중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경영철학을 비롯해 자신의 취미, 애창곡, 좌우명 등을 소개했다. 소개된 구 회장의 애창곡은 1948년 박재홍 씨가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 좌우명은 ‘약속은 꼭 지킨다’와 ‘근검절약하는 생활 자세를 갖는다’이다.
# 후계구도는?
구 회장은 1972년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장관의 딸 김영식 씨와 결혼했다. 민화 작가로 활동 중인 김영식 씨는 1952년 1월 11일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나 이화여고,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구 회장은 1978년 장녀 구연경 씨를, 1996년 차녀 구연수 씨를 낳았다. 2004년엔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켰다. (주)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개최해 구 상무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구본무 회장의 두 딸인 연경 씨와 연수 씨는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LG가의 가풍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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