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이슈

경찰 직장협의회 '멍석' 깔아주니 '눈치만' 까닭

'현장활력회의'라는 이름의 사전 체험 성격…"간부들 부담" 등 이유 제대로 운영 안 돼

2018.04.13(Fri) 18:33:15

[비즈한국] 경찰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직장협의회’가 경찰 내부에서 체험 형태로 시행 중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전국 경찰서를 대상으로 시행을 직접 지시했다. 그럼에도 직장협의회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일선 경찰서들이 정작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경찰은 “직장협의회 설치를 위한 법안 통과가 국회에서 지연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 왔다.

  

경찰청은 지난 2월 3일 ‘현장활력 회의 시행 계획’​ 공문을 ​전국 지방경찰청에 ​하달했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공문에 명시된 추진 배경을 보면, 매주 수요일 경감 이하 실무 직원들이 참여해 △근무여건 개선 △업무능률 향상 △고충처리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건의한다. 이 자리에서 제기된 건의사항 등은 각 지방청과 경찰서에서 시행을 적극 검토하거나, 본청에 건의하도록 돼 있다. 

 

현장활력회의는 경찰 직장협의회와 같은 개념의 모임이다. 직협은 경찰이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경찰 개혁’의 일환이다. 경찰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권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논의되는 일종의 노사협의체 기구 성격을 가진다. 

 

일반 회사에서 구성된 일종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맥락이다.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없지만, 공무원이 소속 기관의 장과 협의해 근무환경 개선, 고충 처리와 같은 권익 보호 활동을 할 수 있다. 6급 이하 일반직 등 공무원은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협을 만들 수 있지만 경찰과 소방 직종은 특수성을 고려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경찰 현장활력회의 시행 공문.


지난해 7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과 소방공무원도 직협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최근까지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경찰 노조화로 인한 부작용’ ‘정치적 변질’ ‘지휘계통이 무너질 수 있다’ 등의 이유로 반대 목소리도 높아서다. 

 

지난해 10월 경찰개혁위원회가 직협 설립을 권고했고, 경찰청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직협 설립이 미뤄지고 있었던 이유다. 당시 경찰개혁위원회는 “80% 이상의 경찰관이 야간근무를 하고 대부분 주당 40시간을 초과 근무하고 있다. 다른 직종보다 평균수명도 현저히 짧다. 스스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찰관에게 국민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선 현장활력회의 시행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의 ‘마지막 선물’로 평가한다. 오는 6월 퇴임을 앞둔 이 청장의 직접 지시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앞서의 경찰 개혁위 후속조치로도 볼 수 있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만큼 나름의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청장은 지난 3월 21일 ‘직장협의회에 대한 현장경찰관의 목소리’를 주제로 경찰청에서 열린 ‘제9회 경바시(경찰을 바꾸는 시간)’ 행사에 참석해 “직장협의회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미리 시운전(체험)​ 해 보라는 취지로 전국적으로 시행하도록 지시했다”고 직접 밝혔다. 다만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된 만큼 명칭은 ‘직협’을 쓰지 않았다. 시행 대상도 전국 모든 경찰서지만, 의무 가입은 아니다. 각 경찰서가 ‘자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 직장협의회와 비슷한 개념의 현장활력회의 시행을 지시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 울진경찰서 현장활력회의 “직협과 가장 가까워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북 울진경찰서에서 시행 중인 현장활력회의는 그동안 경찰이 구상해온 직장협의회와 가장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울진서는 경찰청 공문이 내려온 직후인 지난 2월 7일 첫 모임을 시작했다. 질의응답 형태로 본청과 운용 방법을 논의했고, 지난해 9월부터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동소리’라는 이름의 ‘직원’협의회를 자체 운영하던 울산경찰청(청장 황운하 치안감)의 지원을 받았다. 

 

울진경찰서의 현장활력회의는 최용석 서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심재황 경무계장의 주도로 매주 수요일 오전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장활력회의 위원장은 각 구성원이 비밀투표로 선출했고 회의 과정에서 나온 건의 내용은 즉시시행, 검토, 보고 항목으로 나눠 서장에게 보고한다. 최 서장은 월 2회가량 참석하며 회의를 주재하고, 보고된 내용을 지방청이나 본청 등에 전달한다. 처리된 내용은 월 말에 공고하고 질의 답변이 이뤄진다. 

 

지난 4월 11일 열린 경북 울진경찰서 현장활력회의. 사진=울진경찰서 제공


울진서에서 현장활력회의를 통해 건의된 내용은 그동안 전국 경찰관들이 토로했던 고충들이 대부분이다. 3조 2교대 근무형태가 4조 2교대 형태로 변경하는 안이 검토 중이고, 남·여 구분이 없어 여경들이 불편을 겪었던 화장실 시설은 곧바로 보수하기로 했다. 

 

인사와 같은 민감한 안건도 즉시 시행 안건으로 처리된다. 인사운영지침이 있음에도 지휘관이 교체될 때마다 원칙 없이 이뤄지는 인사에 대한 개선 건의가 나오자, 울진서는 즉시 개정안을 만들고 오는 하반기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울진경찰서 관계자들은 현장활력회의에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울진서 관계자는 “과거 전무했던 경찰 내부 소통 창구가 생긴 셈”이라며 “현장활력회의 도입 전 우려했던 내용이자, 직원협의회 부작용으로 거론되던 ‘상급자 배제’ ‘지휘체계 훼손’ 등은 직접 겪어보니 거리가 멀었다. 상·하급자 간 소통과 실무자들의 고충 처리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 “그토록 요구하더니 이젠 간부들이 눈치만…​

 

울진서 사례가 전국 경찰서에 전달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찰서는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경찰 내부에서 나온다. 그동안 직장협의회 설립을 적극 요구해왔으면서 정작 제도가 도입됐는데도 미온적인 반응이라는 게 일선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4월 13일 오후 경찰 내부 게시판엔 “현장활력회의가 시행 됐는데도 소속 경찰서에서는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는 고발성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경찰서는 현장활력회의 시행 공문을 받고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도입 취지와 다르게 정기적으로 개최하지 않거나 보여주기 식으로 한 번 정도만 연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활력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진 지방의 한 경찰 관계자는 “직원 참여율이 낮아 한차례 개최했다. 내부 검토를 통해 정기 개최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방의 일선서 관계자는 “​도입 초기라 혼선이 있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들은 승인 권한이 있는 간부들이 제도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현장활력회의 도입을 건의했던 지방 경찰서 관계자는 “하급자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것에 간부들이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며 “지휘계통 체계가 확고해야 할 경찰 특수성을 은근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서 관계자는 “여러 건의사항이 나오게 되면 뒷감당이 어려울 것이 뻔하다며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간부급들도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서울의 한 중간관리자급 경찰 관계자는 “지휘관인 청장이나 서장, 또는 경무계장 등 중간관리자들의 결단이 중요하지만 서로 책임을 떠미는 눈치다. 누구 하나 나서서 진행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공문이 하달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방치해두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서의 간부급 관계자는 “퇴임을 앞둔 경찰청장이 지시한 사항이라는 점도 일선서 상급자들이 눈치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며 “지난해 국정농단 게이트를 거치며 경찰청장을 두고 내부적으로 알력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직장협의회 법안 통과처럼 현장활력회의 도입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도가 도입된 만큼 생각의 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직을 앞둔 부산의 한 경찰 관계자는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불만이든 고충이든 어려운 일을 겪어도 참기만 했다. 표현하는 방식이 고작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이라며 “내부 고발로 불만과 고충이 알려지면 상급자 입장에선 더 피곤하다. 소통 창구를 적극 활용하는 게 지휘체계 운용에 있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직장협의회는 근본적으로 경찰발전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협의하는 것”이라며 “경찰 권익 보호는 더 나은 치안 서비스로 이어진다. 법안 통과가 되지 않더라도 관련 제도가 있다면 적극 활용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핫클릭]

· '딸 지분은 어쩔…' 한국콜마 에치엔지 일감몰아주기 논란 지속 까닭
· 야권 파상 공세에도 '김기식 카드' 못 버리는 당·청 속사정
· '꼴랑 몇천 원?' 통신장애에 뿔난 피해자들과 SK텔레콤의 다른 셈법
· 삼성증권, 112조 초대형 배당 사고 뒷수습 '진땀'
· [부동산 인사이트] 정책만 분석해도 '셀프 전문가' 된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