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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금고기, 은고기 "이 소고기가 네 소고기냐"

한국·호주·미국 소고기 블라인드 테이스팅…선입견 지우는 맛과 즙의 향연

2018.03.19(Mon) 15:54:38

[비즈한국] 가끔 사람을 모아 일을 벌인다. 주로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양이 많을 때다. 이번엔 스테이크였다. 올해 출간을 목표로 책을 준비하고 있자니, 정작 세상에 그 많은 소고기를 제대로 비교해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맛을 봐야 기획도 맛있게 나오지, 살아있는 목차를 뽑겠다면 출판사를 고르는 것보다 고기를 먹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소고기의 국적은 한국, 미국, 호주 세 갈래. 여기서 또 한국산 소고기만 해도 한우 거세가 있고 암소가 있고, 암소 중에서도 송아지를 낳지 않은 미경산 어린 암소가 있고, 등급은 또 1++부터 3등급까지 나뉘며 육우도 하도 다층다종하고, 게다가 칡소나 흑우, 그리고 초지에 방목한 것까지도 따로 쳐야 하니 다 맛보자면 장난이 아닌 일이 된다. 

미국산도 프라임, 초이스 등급이 주로 유통되는데 알고 보면 와규도 있고 그 이하 등급도 소량 유통되어 이 또한 하나의 소고기 세계관이다. 주로 한국과 미국이 곡물비육(grain fed)으로 촘촘한 마블링을 내고, 호주는 방목 위주의 낙농이라 목초사육(grass fed)으로 살코기 맛을 주로 내는데, 이 또한 단언하기엔 마찬가지로 복잡하다. 곡물을 100일만 먹여 지방층을 만드는 ‘곡물 100’일이 있고, 300일도 있고, 여기도 또 와규가 있고, 이게 또 마블 스코어로 촘촘히 나뉘니, 뭐 다 외우기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블라인드 방식으로 맛을 본 소고기. 왼쪽부터 한우 암소 1+, 호주산 곡물 100일, 미국산 프라임, 호주산 와규. 사진=이해림 제공


세상에 안 먹어본 고기는 많다. 고기 사먹을 돈이 없을 뿐이다. 또한 한 번에 소고기 열 몇 종류를 먹을 기회가 일부러 만들지 않고서야 없을 뿐이다. 똑같은 사정에 놓인 요리사, 요식업 관계자, 축산업 종사자 등 총 15명이 참석 인원으로 추려졌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다양한 소고기를 맛보는 것은, 소고기를 사는 데서부터 난관이 시작된다. 한우 거세 1++, 1+, 1등급, 미국산 프라임, 초이스, 호주산 와규와 그래스 페드 정도 말고는 일반 유통처에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탐식의 호기심으로 사람이 모이니 업계에서도 흔쾌히 도와주셨다.

미국육류수출협회에선 시원하게 프라임, 초이스 등급을 테이스팅용으로 보내줬고, 호주축산공사에선 유통업체에 다리를 놔주어 수월하게 고기를 확보했다. 그 와중에 협진코퍼레이션에선 와규를, 코빅푸드에선 그래스 페드를 선뜻 제공해주어 스테이크 탐식가들의 회비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곡물100일 소고기는 오케이미트의 한 매장에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원하는 컷으로 잘라 퀵으로 보내주는 수고를 해주기도 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서도 다양한 타입의 소를 판매하는 목장을 알려줬다.

페이스북에서의 얕은 친분으로 화식(가열한 여물을 먹인 것) 거세 칡소 1+과 암소1+도 각각 아침목장과 서동한우에서 이문을 남기지 않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신세계백화점에 나가 제주 제동목장의 그래스 페드 미경산 한우, 음성 한 목장의 거세 1++ 한우를 구하고, 동네 가장 가까운 정육점에서 2등급 거세 한우까지 구매하고 보니 정식으로 맛봐야 할 고기만 해도 12종. 서동한우에서 2등급 드라이에이징 고기까지 덤으로(?) 주신 덕분에 라인업이 모두는 아니어도 꽤 잘 갖춰졌다.

블라인드 방식으로 맛을 본 소고기. 왼쪽부터 한우 거세 2등급, 미국산 초이스, 호주산 그래스 페드, 한우 거세 1+. 사진=이해림 제공


목표는 다양성 속에서 각각의 매력을 찾는 것이었다. 어차피 숙성의 정도가 다르고, 부위도 미세하게 다를 수밖에 없으며 4cm로 맞추려 했던 두께도 결국은 다 달라졌다. 단지 조리에 사용한 재료(스테인리스 팬과 카놀라유, 정제염, 그리고 같은 출력의 화구와 오븐)를 통일해 현실적인 한에서 변인을 통제했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 심광섭 요리사가 메인 셰프로 나서 거침없이 스테이크를 지졌다.

레어에서 미디엄까지 다소 편차는 있었지만 아무튼 멋지게 시어링되어 바삭바삭한 크러스트를 가진 스테이크 8종류가 일시에 등장. 데워진 접시에 하나씩 비교해 가며 맛을 봤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번듯한 표라도 등장해 “투표 결과 압도적으로 맛있었다는 평을 얻은 것은 XX 소고기!”라는 결론이 등장할 것 같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것은 그렇지 않다. 선입견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 뭐가 뭔지 알려주지 않는 블라인드 방식의 테이스팅으로 시작했다. “한우 1++이 최고지”라는 게 보통의 선입견일 텐데, 그것을 지우자 각자의 취향이 고개를 들고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테이스팅과 별개로 시식한 소고기. 왼쪽부터 한우 2등급 드라이에이징, 화식 칡소 거세 1+, 한우 그래스 페드 미경산 암소, 한우 암소 1++. 사진=이해림 제공


그 결과, 거짓말이 아니라 15명에 스태프까지 다 하면 20여 명 되는 이들이 제각각 선호하는 고기가 다 다르게 나타나는 카오스적인 결론이 나왔다. ‘막입’들이 아니므로 당연지사 각각 고기의 특징을 귀신 같이 짚어낸 것은 당연한 이야기. 다만 마블링을 즐기던 사람들은 고소한 지방 맛을 가진 한우 1++, 1+이나 프라임, 와규에 호감을 나타냈고, 살코기 맛을 즐기던 사람들은 곡물비육 특유의 향 대신 풋풋한 풀내음이 나는 그래스 페드 계열로 따봉을 몰았다.

개중엔 한우 1++, 1+를 1주일에 2번 이상 구워 먹는 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블라인드 상태에서 찾아낸 ‘최애’가 2등급 거세 한우였다는 즐거운 반전도 있었다. 업계에서 통하는 얘기인 “2등급이 가장 맛있다”는 명제가 그로 인해 증명된 셈이다.

테이스팅을 마치자 세상엔 아직 제대로 맛을 분석해보지 않는 더 많은 종류의 소고기가 남았다. 결국 세상에 쉬운 게 없다. 언제고 눈앞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 소고기가 네 소고기냐”할 때 정확히 답할 수 있으려면 이것저것, 공부하듯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그럼에도 각각 고기의 특징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스와니예 이준 셰프의 시식 메모를 허락 받고 공유한다. 단, 그가 아무리 미쉐린 스타 셰프라지만 사람마다 수용하는 맛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 참고만 해야 함을 밝힌다.

서동한우 암소 1+ >> 가벼운 단맛, 미세한 민트느낌, 적은 철분 맛, 약간의 풍미
서동한우 2등급 드라이에이징 >> 부드러운 감미, 우마미, 건새우, 부드러운 식감, 산미 적음, 철분 매우 적음
아침목장 화식 칡소 거세 1+ >> 쫄깃&질깃 육질, 높은 고소한 풍미, 과자 같은 고소함, 우마미, 옥수수, 감자튀김
아침목장 한우 거세 1+ >> 인상적인 부드러움, 수분감, 우마미, 깨 같은 고소함, 짧지 않은 피니시, 한국인이 좋아할 듯한 향
한우 암소 1++ >> 부드러움, 은은한 육향, 상대적으로 적은 감칠맛, 참치 뱃살 느낌
제동목장 그래스 페드 미경산 암소 >> 상당히 부드러움, 김 맛, 감칠맛
2등급 거세 >> 보리쌀, 구수한 맛. 적은 지방의 느낌. 깔끔한 피니시

미국산 프라임 >> 인상적인 부드러움, 참치 향, 적은 지방 풍미, 적은 마블링 
미국산 초이스 >> 중간의 지방 향, 나무껍질, 구수한 향

호주산 와규 MB5+ >> 인상적인 부드러움, 풍미, 순대 향, 적은 마블링, 철분 피니시.
호주산 곡물 100일 >> 깻잎 향, 약한 돼지 향기, 청량한 지방 맛, 부드러운 육질, 약간의 철분 피니시

호주산 그래스 페드 >> 약간 질긴 듯한 육질, 산미, 적은 지방 풍미, 철분 피니시, 참치 뱃살 느낌​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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