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학교에 들어갈 땐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데 왜 졸업할 땐 똑같은 사람이 돼서 나올까요? 이 물음에서 시작됐죠.”
안정된 삶을 벗어나 새로운 길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 잘 다니던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직접 대학을 만들어 총장이 된 남자. 꿈꾸는 대학을 표방하는 ‘큐니버시티(Qniversity)’의 최성호 총장(29)의 이야기다.
최 씨는 그동안 유튜브나 블로그 등 SNS에서 ‘시골의대생’으로 불리며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할 7가지 이유’, ‘학교가 필요 없는 이유’ 등 기존 교육 시스템과 사회에 대한 단상을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엔 직접 큐니버시티를 설립해 현재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에게 꿈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골의대생’으로 불리던 그가 ‘대학 총장’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뭘까. ‘비즈한국’이 최 총장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의대를 그만두고 대학교를 직접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의대를 다니면 의대 공부만 해야 한다. 그것도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닌 성적을 위한 공부. 의대에서 선호하는 학과를 고르려면 성적을 잘 받아야 하고, 성적이 좋으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기존 입시 교육을 다하고 왔는데 의대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맘껏 못했다. 이 체제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 ‘나랑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맘껏 연구할 학교를 만들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부터 의대생이 되고 싶었나.
“부모님 두 분 다 의사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다. 처음부터 부모님 뜻을 따른 건 아니다. 의대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땐 한국고등학교학생연합회 의장을 맡기도 했고 학교 밖 생활에 더 익숙했다. 그러다 공대를 갔고 나중에 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의대에 가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어느 날 시골의사 박경철이 쓴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읽는데 ‘의사가 아픈 사람 돕고 사는 일이라면 가치 있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삼수 끝에 건양대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의대 생활은 어땠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입생 때 1년은 논산캠퍼스에서 보내고 2학년부터 대전캠퍼스에서 본과생활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시골의대생’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때 생활 때문이다. 그곳에서 박경철처럼 시골의사란 마음을 품고 유유자적하며 자연에서 공부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그만두게 됐나.
“2학년 때 힘들었다. 1학기 16주 동안 매주 한 과목씩 총 18번 시험을 치렀다.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친 2011년 여름 갑작스레 희귀난치병에 걸려 의대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어떤 병인가.
“혈구탐식성조직구증식증이란 병이다. 국내 몇 백 명 안 되는 희귀질환인데 백혈병보다 드물다. 골수이식을 받아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힘들다. 병에 걸린 그해 12월 골수이식을 받고 4년 투병 끝에 2015년 재활받고 완전히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 뒤 학교로 돌아갔지만 결국 중퇴를 결정했다.”
―그만둔 이유는 뭔가.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보는 눈이 더 넓어진다고 하지 않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옛날엔 성적 받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훨씬 더 큰 문제들이 보이고 그걸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오프라 윈프리, 에이미 멀린스, 휴 헤르 등 아픈 시절이 있기에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옛날엔 불만만 있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못했는데 투병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됐다.”
―큐니버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정확히 어떤 곳인가.
“큐니버시티(Quniversity)의 Q는 질문하는(Question) 대학, 찾는(Quest) 대학, 호기심을 잃지 않는(Qurious-원래는 curious이나 발음에서 차용) 대학이란 의미다. 일반적으로 학교라 하면 학생, 교수가 있고, 학점을 따야 끝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여기선 모든 사람이 학생이자 교수이고, 이들을 연구원이라 부른다.”
―기존 교육체계에 있는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았고, 당연히 앞으로도 받지 않을 생각이다. 정해진 학제·캠퍼스·수업·교수·학생이 없다. 모임이 필요할 땐 그때그때 장소를 빌려서 하기도 하고 우리는 사실상 세계가 우리 전체의 캠퍼스라는 생각으로 세상에 나가 탐구, 교육하는 것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이 다니고 있나.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하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고, 특히 최종학력이 고졸인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준다.”
―그래도 기본적인 규칙은 있을 것 같은데.
“총 4학기 2년제로 구성돼 있고 학생들이 직접 자신이 연구할 주제를 정해 한 학기(6개월)에 논문 하나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간단한 규칙만이 존재한다. 논문들은 자체 평가위원회와 학생 등이 직접 보고 평가를 한 뒤 ‘큐니버시티’ 학술지에 실린다. 수시로 연구 발표회와 토론회도 열린다.”
―감이 잘 안 오는데 어떤 거라도 연구주제로 가능한 것인가.
“막상 뭘 연구해야 할지 몰라서 연구할 게 없어서 다시 입시공부를 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선 매일 한 개씩 직접 주제를 전달해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범위도 다양하다. 어떤 호기심에서 출발한 고민도 주변에서 다듬어줘 본인이 가치 있는 연구주제를 택할 수 있게 만든다.”
―큐니버시티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1번 호기심 유지, 2번 모험심 유지, 3번 모두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유지’란 표현을 쓴 건 어린아이일수록 호기심이 많은데 어른이 되면서 호기심과 모험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유지시키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다르게 들어가서 똑같이 돼 나오는 현재 교육과 달리, 학교에 똑같이 들어가도 개성 있게 나오게 하는 게 우리 목표다.”
―혼자 하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주변 도움을 받은 것은 없나.
“투병생활 때부터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내 능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알려준 분들이다. 하루 만에 책쓰기 등 하루의 가치를 연구하는 분들, 맞춤정장 만드는 분, 일반인들을 가수로 만들어 주는 분, 무자본 벤처투자회사 분들이다. 이들을 만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성적, 취업, 돈, 결혼 등 이런 목표에 의해 교육의 본질이 흐려지는 사회에서 어떤 다른 울림을 주고 싶다. 진짜 교육이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연구해 며칠 밤을 새 궁금한 걸 해결했을 때 그 희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을 큐니버시티가 앞장서서 하고 싶고 큐니버시티를 따라 이런 대학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존 시스템에 큰 반향을 주고 교육의 미래가 되는 게 목표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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