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말마다 막내 아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가는데, 경제/경영 서가에 ‘일자리의 미래’를 다룬 책이 부쩍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AI)’에게 사람들이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된 게, 이런 종류의 책이 쏟아진 배경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었다.](/upload/bk/article/201801/thumb/14769-28273-sampleM.jpg)
비슷한 제목의 책들을 읽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미래 전망이 한결같이 비관적인 게 흥미로웠다. 혁신적인 기계가 출현하면 인간과 기계 사이에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이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지금 현재 상황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미 일자리 감소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우리보다 정보통신 혁명이 먼저 시작되어, 경제 전반에 이미 큰 변화를 겪은 미국 노동시장의 상황은 ‘일자리 감소’ 이야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래 그래프다. 미국의 생산활동인구 변화율(붉은선)과 취업자 수 증가율(파란선)을 비교한 것인데, 2001년이나 2008년 같은 불황을 제외하고는 항상 일자리 증가율이 생산활동인구 변화율보다 높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인구에 비해 일자리의 수가 줄어든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
![미국의 생산활동인구 변화율(붉은선)과 취업자 수 증가율(파란선) 비교. 자료: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upload/bk/article/201801/thumb/14769-28274-sampleM.jpg)
또 ‘일자리의 미래’가 어둡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대학졸업장이 필요 없는 세상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전체 실업률(붉은선)과 대졸 이상 학위자의 실업률(파란선)을 보여주는데, 고학력자의 실업률이 2%를 밑돌고 있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전체 실업률과 대졸 이상 학위자의 실업률(파란선). 자료: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upload/bk/article/201801/thumb/14769-28275-sampleM.jpg)
혹시 실업률만 낮은 수준을 유지한 것은 아닐까?
아래의 그래프는 미국 학력별 가계 실질소득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세대주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가구만 실질소득이 증가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가장 심각한 양극화가 바로 ‘교육 수준’에 의해 유발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에 있다.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란, 1990년대를 전후해 발생한 정보통신 기술혁신으로 인해 식자공이나 타이프라이터 등 기존의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진 반면, 정보통신 기술을 재빨리 받아들인 분야에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현상을 말한다.
![미국 세대주 학력별 실질 소득 추이(2010년 기준). 자료: 미국 인구 센서스국](/upload/bk/article/201801/thumb/14769-28276-sampleM.jpg)
그런데 왜 숙련편향적 기술진보가 고학력자의 연봉 상승으로 연결되었을까?
그 이유는 전환비용의 차이 때문이다.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들은 다른 언어에도 능통하며, 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저항감이 덜하다. 반면 이미 오랜 기간 숙련을 쌓아온 사람들 입장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로 또 다른 불평등 요인, 세대별 임금 격차의 확대 현상이 출현한다.
예를 들어 2009년 이후 미국 전체 근로자의 임금은 연 평균 2.6% 상승했는데, 16~24세의 젊은이들은 무려 5.3%의 임금 상승을 경험했다. 반면 55세 이상의 고령 근로자들의 임금은 단 1.5% 상승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미국 연령대별 임금 상승률 추이. 자료: 미국 애틀란타 연은](/upload/bk/article/201801/thumb/14769-28277-sampleM.jpg)
결국 현재까지 취합된 데이터만 보면 “일자리의 미래, 특히 고학력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식의 주장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오히려 고학력자의 소득만 높아지는 상황에서, 교육 투자가 더욱 확대될 필요가 높다.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1990년대부터 지속된 정보통신 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고학력/고숙련 근로자의 수요가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일단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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