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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1980년대 팝 주류, 뉴웨이브 총아 '듀란듀란'과 '컬처 클럽'

펑크록에서 파생돼 당대의 '오빠 부대' 몰고 다닌 두 그룹의 활동은 아직도 진행형

2018.01.19(Fri) 18:54:38

[비즈한국] “듀란듀란(Duran Duran)이 최고야.”, “무슨 소리. 컬처 클럽(Culture Club)’이지.” 1980년대에 청춘을 보냈다면 한 번쯤 이런 소모적 논쟁을 벌였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뉴웨이브(New Wave)’​ 음악은 팝의 주류였다. 뉴웨이브 장르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당대의 아티스트들로 블론디(Blondie), 폴리스(The Police), 유리스믹스(Eurythmics),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ABC, 아하(A-ha) 등이 있다. 

 

전성기 듀란듀란 라인업. 왼쪽부터 사이먼 르본, 닉 로즈, 존 테일러, 로저 테일러, 앤디 테일러. 사진=듀란듀란닷컴


그 중 존재감과 화제성에서 단연 돋보였던 두 그룹이 있다. 다섯 명의 꽃미남 멤버들로 유명했던 듀란듀란과 미색의 여장남자 싱어 보이 조지(Boy George)가 이끌던 컬처 클럽이다. 중년에게는 향수로, 젊은 세대에겐 복고로 되돌아온 뉴웨이브 음악과 듀란듀란, 컬처 클럽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1970년대 초반 팝 음악계에선 간단한 코드 진행과 강한 정치성·사회성을 담은 가사, 신랄한 보컬을 특징으로 하는 ‘펑크록(Funk Rock)’ 장르가 유행했다. 펑크록은 이러한 태생적 특성으로 인해 대중의 사랑을 ​폭넓게 ​받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펑크록은 변모를 거쳐 미국과 영국에서 각기 다른 장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후반 펑크록이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디스코(Disco)’​로 발전했다. 비지스(Bee Gees), 케이시 앤드 더 선샤인 밴드(KC and the Sunshine Band), 도나 서머(Donna Summer) 등이 디스코 음악의 최고 스타였다. 

 

 

영국의 포스트 펑크는 ‘전자 음악의 비틀스(The Beatles)’란 칭송을 받는 독일 밴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같은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받아 뉴웨이브로 발전했다. 뉴웨이브는 문자 그대로 급진적이고 난해한 펑크록의 문화적 충격을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변모시킨 새로운 음악적 파도였다.

 

뉴웨이브 장르는 삼라만상의 사운드를 가능하게 하는 신시사이저(Synthesizers)가 중심을 이뤘기에 ‘신스팝’이라고도 불린다. 신스팝이라 칭할 때 대표적인 밴드로 꼽히는 휴먼 리그(Human League)는 전통적인 그룹사운드의 필수 구성 악기인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없이 복수의 신시사이저와 보컬로만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빌보드 1위 히트곡들인 ‘Don’​t you want me’와 ‘Human’​이 신스팝의 전형이다. 

 

듀란듀란이란 독특한 이름은 제인 폰다 주연의 SF 코미디 영화 ‘바바렐라’(Barbarella, 1968) 중에서 변태 같은 악당 듀란듀란 박사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듀란듀란 멤버 5명의 외모를 보면 이러한 그룹 명칭의 유래와 완전히 상반된다. 그룹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였던 존 테일러(John Taylor)는 고전적인 얼굴의 미남이었고 키보디스트인 닉 로즈(Nick Rhodes)는 곱상한 꽃미남의 전형이었다. 

 

리드 보컬인 사이먼 르본(Simon Le Bon)도 잘생긴 남성적인 굵은 선을 가졌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 역시 남자다운 얼굴이었고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Andy Taylor)의 외모는 할리우드의 명배우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을 연상시켰다. 

 

듀란듀란의 전성기 시절엔 음악보다는 멤버들의 잘생긴 외모가 주된 화제였다. 당시 우리나라 소녀들은 책받침과 브로마이드를 통해 듀란듀란 멤버들의 사진을 소지하는 등 열성적인 팬심을 발휘했다. 지나치게 외모만 부각된 탓에 듀란듀란은 나쁘지 않은 실력임에도 평론가들로부터 음악으로 저평가를 받는 일이 흔했다. 

 

1978년 데뷔한 듀란듀란은 한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1981년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팝 음악만을 방송하는 MTV가 개국한 것이었다. 이로써 팝 음악 트렌드는 단순히 ‘듣는 것’에서 ‘보고 듣는 것’으로 바뀌었다. 듀란듀란 멤버들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는 MTV 전파를 집중적으로 타면서 이들은 단숨에 전 세계 소녀 팬들을 열광시켰다.

 

‘Girls On Film’(1981)을 시작으로 ‘Hungry Like The Wolf’(1982) 등 숱한 히트곡들을 내놓던 이들은 드디어 ‘The Reflex’(1984)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점령했다. 1985년에도 3대 제임스 본드인 로저 무어의 마지막  007 시리즈 출연작인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의 주제가를 불러 다시 빌보드 1위를 기록하는 등 듀란듀란의 인기 가도에 거철 것이 없어 보였다. 

 

이후 듀란듀란 멤버들은 존 테일러를 중심으로‘파워 스테이션’(Power Station), 사이먼 르본을 중심으로 ‘아카디아’(Arcadia)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1986년 다섯 명의 멤버들이 다시 모인 듀란듀란은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로저 테일러와 앤디 테일러가 팀을 탈퇴하고 말았다.

 

2004년 다섯 명의 멤버들이 듀란듀란의 이름으로 다시 모였으나 앤디 테일러가 재탈퇴하면서 현재 사이몬 르본, 존 테일러, 닉 로즈, 로저 테일러 4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제는 과거와 같은 꽃미남은 아니지만 멤버 모두 외모의 큰 변화 없이 미중년을 보냈고 지금도 아름다운 초로의 외모들을 유지하고 있다. 듀란듀란은 우리나라에도 1989년을 시작으로 몇 번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타임(Time)’​이 극찬한 컬처 클럽 앨범 ‘Colour By Numbers’ 표지.


팝 음악사에서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와 같은 영국 출신 뮤지션들이 미국 음악 차트를 점령하던 1960년대를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일컫는다. 듀란듀란, 왬(Wham!)과 함께 컬처 클럽은 1980년대 ‘제2의 영국 침공’(The Second British Invasion)의 주역이었다.

 

1981년 결성된 컬처 클럽은 짧지만 굵고 강렬하게 팝 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컬처 클럽의 간판은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남자 보이 조지였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달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보이 조지는 한동안 팝 음악의 아이콘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보이 조지의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컬처 클럽은 그의 백 밴드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런 연유로 컬처 클럽은 듀란듀란처럼 오랫동안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어린 시절 보이 조지는 ‘글램록’(Glam Rock)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영향을 받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글램록이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짙은 화장과 양성적인 패션 등 퇴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음악적인 면에서는 로큰롤과 하드록의 특성을 담은 장르다. 보이 조지의 음악성을 보면 글램록적인 특징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1981년 결성된 컬처 클럽은 1982년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가 영국 차트 정상에 오르고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른 데 이어 ‘I’​ll tumble 4 ya’와 ‘Time(Clock of the heart)’​까지 히트하면서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컬처 클럽은 1983년 앨범 ‘Colour By Numbers’를 내놓으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으로 떠올랐다. 뉴웨이브에 미국의 전통 음악인 컨트리를 가미한 이들의 최대 히트곡 ‘Karma chameleon’은 1984년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Church of the poison mind’, ‘Miss me blind’ 역시 톱10에 오르며 최고의 해를 보낸다. 

 

컨트리를 가미한 ‘Karma chameleon’에서 보듯 컬처 클럽의 음악은 뉴웨이브란 틀 안에 록, 댄스, 소울,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로 가득 차 있다. 앨범 ‘Colour By Numbers’는 ‘타임’으로부터 “모든 팝 음악을 담아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컬처 클럽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이후 내놓은 앨법 등에서 이전과 같은 빅 히트곡들을 내놓지 못한 이들은 보이 조지가 ​마약 중독 상태로 체포되면서 1986년 해체됐다. 와신상담한 보이 조지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자르고 옅은 화장으로 돌아와 영화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 1992)의 주제가를 부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컬처 클럽은 1998년 공연 실황 앨범을 내놓으며 재결성했다.

 

듀란듀란과 컬처 클럽은 1980년대 MTV의 총아이자 당대의 뉴웨이브의 심볼이었다. 그리고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뉴웨이브 음악은 현재 ‘일렉트로팝’(Electro pop)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복고와 리바이벌 음악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지금의 청춘 세대에게도 공감을 이끌어 내곤 한다. 이런 연유로 옛 시절 음악이 또 다른 세대의 주류 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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