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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트럼프 쥐었다놨다 '스윙스테이트'는 왜?

대선 때 트럼프 지지한 '미들랜드' 11월 중간선거에는 민주당으로 돌아설 전망

2018.01.08(Mon) 14:29:55

[비즈한국] 최근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 ‘분열하는 제국’(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 글항아리)은 그간 미국 정치에 가지고 있던 오래된 궁금증을 많은 부분 해소해준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사람들이 왜 트럼프(와 공화당)를 지지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를 역사적인 ‘연원’에서 해석한 것은 매우 참신했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하나 있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일리노이, 미주리, 아이오와 등 이른바 ‘스윙스테이트’는 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그렇게 ‘지조’ 없이 방황하는 것일까? 

 

미국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쥔 미들랜드는 지난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는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2017년 11월 방한 당시 국회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대해 콜린 우다드는 이들 ‘스윙스테이트’를 “미들랜드(Midland)”라고 묘사한다. 

 

미국의 여러 국민 중 가장 ‘미국인’다운 특징을 보유하고 있을 미들랜드는 영국 퀘이커교도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들은 델라웨어 기슭에 도시를 건설해,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이주해오는 수많은 정착민을 반갑게 끌어안았다. 다원적이고 잘 조직화된 서민층으로 구성된 미들랜드는 미국 중서부 내륙의 농촌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은 인종·이념적 순혈주의를 배척했고, 정부란 존재는 환영할 수 없는 외부 침입자쯤으로만 여겼다. 정치에 대해서는 온건하다 못해 무관심할 정도였다. 미들랜드는 민족적으로 매우 다양한 사회였다. 1600년대부터 ‘앵글로색슨’이 아닌 독일계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했으며, 1775년 당시 북미의 영국 식민지 중에서 非영국계가 다수를 차지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책 15쪽

 

미들랜드야말로, 한국 사람들이 미국의 식민지 개척자에게 갖는 이미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미들랜드는 한 번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정권을 잡은 적이 없는, 늘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담당한 집단이었다. 

 

왜 미들랜드는 정권을 주도하기보다, 양키덤이나 디프 사우스의 정권에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콜린 우다드는 미들랜드를 세운 사람들의 ‘특성’에서 찾는다. 

 

애드미럴 윌리엄 펜은 영국 내전기간 동안 의회파의 편에서 싸웠다가, 나중에는 왕정복고를 지지하는 등 정치적 바람을 잘 탄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크롬웰은 몰수한 아일랜드 땅을 하사해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 (중략) 그는 아들 윌리엄을 존경 받는 젠틀맨으로 키우기 위해 옥스퍼드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젊은 윌리엄은 성공회교를 비난해 퇴학 당하고, 1667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퀘이커교에 입단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중략)

 

그는 1680년 찰스 왕이 아버지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로 4만 5000제곱마일에 달하는 북미 식민지 땅을 하사 받았다. (중략) 영국 전체 면적보다 넓은 그 지역은 선친의 이름을 따서 펜실베이니아로 불리게 되었다. (중략)

 

윌리엄 펜은 다양한 종교와 민족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퀘이커교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군대는 만들지 않았다. (중략) 다른 식민지와 달리, 펜실베이니아는 거의 모두에게 투표할 권리를 부여했다. (중략) 정부가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도록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해서 권력을 제약했다. -책 135-137쪽

 

미들랜드의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주 지도. 사진=flickr

 

선구적인 이상 사회가 북미 식민지에 구현된 셈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호전적인 인디언, 그리고 남쪽의 애팔래치아 산맥 경쟁자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퀘이커 교도들이 군대 없이 평화롭게 식민지 개척이 가능할까? 

 

초기 펜실베이니아는 경제적으로 성공했을지 몰라도, 퀘이커 교도들이 운영하는 국가는 완전히 재앙 수준이었다. 퀘이커의 교리는 정치와 맞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닮아 태생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퀘이커교는 자율 규제와 황금률 만으로도 충분히 자치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바람일 뿐이었다. 

 

퀘이커 교도들은 사사건건 권위와 교리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정부는 공공기록물을 제대로 보관하거나 관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사법체계 기능에 필수적인 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채 혼란에 빠졌다. (중략)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주민들이 ‘신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퀘이커교도의 믿음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1717년 초 필라델피아 항구에 상륙한 새로운 무리의 이주민(그레이터 애팔래치안)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은 영국 국경지대 출신의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가치관은 퀘이커 교도와 대척점에 있었다. 

 

그들은 인디언을 경멸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쉽게 폭력부터 휘둘렀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생각했다. 병충해로 심각한 기근을 맞이한 스코틀랜드와 얼스터의 고향에서 도망쳐온 국경지대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로 펜실베이니아에 쏟아져 들어왔다. 1775년까지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펜실베이니아를 혼란에 빠뜨렸다. (중략) 

 

1755년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델라웨어족 인디언이 펜실베이니아 이주민을 향해 전면전을 개시한 것이다. 그들은 정착촌을 휩쓸면서 사람들을 몰살했고, 수백 명을 잡아 가두었다. (중략) 정착민들은 갑자기 전쟁의 한복판에 휘말렸지만, 스스로를 보호할 무기도 실탄도 없었다. -책 141~143쪽

 

미들랜드 사람들은 선의로 세상을 대했지만, 그 선의는 배신당하기 쉬웠고 또 워낙 의견이 제각각이고 독립적인 영혼인 탓에 뚜렷한 정치적 대변인을 보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북부의 양키와 남쪽의 애팔래치아 사람들 모두를 싫어했기에 결과적으로 전혀 원하지 않았던 역할, 바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2년과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애리조나, 플로리다,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의 선거인단 득표 현황. 자료=chriscrews.com

 

미들랜드는 불관용적이며 공동체 윤리를 강조하는 양키덤과 개인주의적 향락을 중시하는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했다. (중략) 북미 대륙 중서부에 정착한 미들랜드 이주민 중 퀘이커 교도는 이제 거의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윌리엄 펜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중략)

 

1850년대 미들랜드 사람들은 反양키 연합으로 탄생한 정당, 민주당을 지지했다. 민주당은 디프 사우스 등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사람들의 정당이었다. (중략) 그러나 1850년대 후반 미주리와 캔자스 등 새로운 주에서 노예제 확산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민주당 연합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미들랜드 역시 분열되었지만, 이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집단은 노예제를 놓고 양키들과 처음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중략) 이러한 이유로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다. (중략)

 

이것이 미들랜드의 특징이 되었다. 미들랜드는 향후 모든 이슈에 대해 연방을 깨뜨릴 수도, 거꾸로 거대한 세력을 만들 수도 있는 거대한 부동층이 되었다. (중략) 1860년대 대통령 선거를 분석한 20세기의 정치학자들은 미들랜드의 태도 변화가 공화당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의 승리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책 254~261쪽

 

링컨이 이끄는 공화당의 승리는 결국 노예제의 폐지 및 남북전쟁으로 이어졌고, 이와 같은 미들랜드의 태도 변화는 선거마다 반복되고 있다. 5대호와 애팔래치아 산맥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평원지역은 내내 ‘스윙스테이트’가 되었고, 그들은 꼴 보기 싫은 양키와 남부의 애팔래치아 싸움꾼 사이에서 사안별로 끊임없이 방황함으로써 한 정당의 장기집권을 가로막았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들랜드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함으로써, 민주당의 집권이 12년으로 늘어나는 것을 저지했다. 콜린 우다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양키들이 장기 집권하는 꼴 보기 싫어” 상대적으로 덜 싫은 트럼프를 지지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미들랜드 사람들은 다시 트럼프 반대자로 돌아섰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미국 공화당의 하원지배가 끝날 수 있다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바로 미들랜드 사람들의 변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인’이 단일한 집단, 혹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말자. 적어도 사회/정치적 현안을 거론할 때에는 미들랜드 사람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음을 감안해,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신경을 쓰는 게 훨씬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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