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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다반사] '바삭바삭'은 편견, 삼각지 '대박포차'의 부추전

밀가루를 거의 쓰지 않은 달큰한 별미…평범한 음식에 숨은 독창적 발상

2018.01.08(Mon) 10:24:34

[비즈한국] 몇 살 때부터였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 오는 여름 날이면 엄마는 꼭 부추전을 부쳤다. 그 시작을 되짚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부추전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비 오는 여름 날, 축축하게 식은 날씨를 덥히는 고소한 기름 냄새, 그리고 빗소리인지 전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자글자글’ 하는 소리.

 

부추전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갖게 된 것은 하여 자연스러웠다. 부추, 송송 썬 고추뿐 아니라 조갯살과 새우살이 꼭 들어가야 하고, 종종 다진 오징어살까지 들어가 있다면 그건 전을 부쳐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다. 간도 소금간을 보거나 부침가루 맛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국간장 또는 액젓으로 짭짤한 감칠맛을 보태야 제대로다. 

 

재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조리다. 무릇 부추전이라 하면 필히 얇아야 하고 끄트머리와 표면이 바삭바삭하게 구워져 있어야 한다. 어쩌다 두툼하고 축축하게 구워진 부추전은, 끈적이는 날씨처럼 짜증나는 존재였다.

 

전통적인 부도심 중 하나였던 서울 삼각지, 국방부 인근은 아직 용산 재개발의 기운이 제대로 닿지 못했다. 여전히 잠든 듯이 가라앉아 있고, 여전히 낡은 동네일 뿐이다. 그 골목 중 하나, 깊숙이 들어간 곳에 ‘대박포차’라는 실내 포차가 자리 잡고 있다.

 

전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외관. 맛을 보고, 알고 나야 특별한 곳이다. 사진=이해림 제공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한 평 남짓한 열린 주방. ‘오픈 키친’이라며 세련된 척하는 세간의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가스와 수도 배관이 있는 곳에 주방 집기를 적당히 필요한대로 배치한 옹색한 주방이다. 주택을 개조한 이 식당은 심지어 미로 같다. 테이블 서너 개가 놓인 ‘거실’ 안쪽, ‘안방’에는 또 테이블 넷이 놓여 있다. 

 

열선으로 난방을 넣어 툭 튀어나온 벤치(처럼 만들어 놓은 좌석)에서 고운 표정을 지닌 사장님과 주방 ‘이모님’이 점심과 저녁 사이 손님이 뜸한 때에 낮잠을 주무시기도 한다나. 건물을 이어 붙인 듯, 이 본채 뒤쪽으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공간도 펼쳐지는데 그 정체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숨겨진 공간까지 합해봐야 별 것 없다. 오래된 시가지의 오래된 건물을 엉성하게 활용하고 있는 여느 실내 포차들과 별 다를 것은 없는 모습이다. 닭볶음탕, 꼼장어, 닭발, 오돌뼈, 계란말이 등 포차에 기대하는 메뉴들이 겸손한 가격과 함께 쭉쭉 쓰인 메뉴판 아래로 종이를 덧대 붙인 꼬막, 문어, 간재미, 과메기 등 메뉴를 다 둘러 봐도 딱히 특별한 기대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실내 포차가 ‘대박포차’라는 상호 그대로 ‘대박 사건’이었다. 여섯 해 전 주방장이 갑자기 그만두며 이후 사장님이 주방을 도맡았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당시 “집에서 해먹던 대로 하면 된다”는 한 단골의 말대로, 사장님은 정말로 집에서 여태 드시던 그대로 음식을 해 생업을 일구고 있다. 장난친 데 없이, 재간 부린 데 없이 그저 솔직한 맛이라 편안하다. 

 

그 댁에서 드시던 부추전이 그야말로 시그니처 메뉴인데, 이게 참 신기한 음식이다. 바삭바삭은 커녕, 두툼하고 축축하다. 마치 실패한 부추전 같은 첫인상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바삐 놀리게 한 독특한 이 부추전. 지난해 시작한 메뉴인데 그새 대표 메뉴로 등극했다.

 

대표 메뉴인 부추전에 갑오징어 하나를 더 주문했을 뿐인데 순두부찌개가 따라 나왔다. 사진=이해림 제공

 

부추를 듬뿍 넣고, 고추는 듬성듬성 섞어 넣고, 밀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부추전은 넉넉한 기름에 뭉근하게 익어 곤죽 같다. 무사히 뒤집은 것조차 용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껍고, 속까지 기름이 배어 흐물흐물한 부추전이라니. ‘전은 바삭바삭해야 한다’는 오랜 편견이 무너진다. 그/런/데, 맛있다. 

 

기름을 충분히 머금은 부추는 향이 있는 대로 살아나 특유의 달큰한 맛이 듬뿍 난다. 그러면서도 기름기는 느끼하게 겉돌지 않고 부추와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로 조화된 맛을 딱 절절하게 낸다. 어중간하게 타협해서 밀가루를 조금만 더 썼어도 텁텁해서 먹지 못할 것 같은, 절묘하게 보들보들한 질감을 마침맞게 딱 맞췄다. 싱겁다 싶은 간은 간장을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서비스’로 나온 애호박전 또한 일맥상통하는 세계관을 보여줬다. 두툼하게 대충 채썬 애호박에 밀가루를 최소한으로 묻혀 기름에 지져냈다.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밀가루가 적다 보니 애호박끼리 툭툭 떨어져 있는, 전이라기엔 낯선 모습이다. 허나 수분이 채 빠지지 않고 겉만 달콤하게 익은 것이 또한 발군이었다. 적은 양의 밀가루는 애호박 겉에 슬쩍 붙어 미묘한 아삭함을 보태준다.

 

조치원 출신 사장님의 손맛을 담은 ‘짜글이’​ 등 추가 메뉴로 술자리가 길어지자 두 번째 서비스로 등장한 애호박전. 수분이 스며 나오기 전에 딱 멈춘 아삭한 조리. 사진=이해림 제공

 

고정관념 속의 그 전이 아니다. 그리하여 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아무튼 완성도가 높다. 이런 독창적인 음식을 대하자면, 나 역시 선입견으로 음식을 대해왔나, 반성하는 마음까지 든다. 

 

이유가 궁금해서 말을 건넸다가, “밀가루를 안 좋아해서 집에서 먹던 대로 밀가루를 거의 안 쓴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무릎을 쳤다. 밀가루를 거의 쓰지 않고 전을 부친다면 어떻게 조리법을 변형해야 하는지, 사장님은 기어이 알아낸 것이다. 남들하는 대로 하면 편했을 텐데, 굳이 그 독보적인 조리법을 완성하고야 만 것이다.

 

세상사 당연한 일이란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 경험이야, 각자의 경험일 뿐이고 그 경험이 어떠한 편견을 만들어내었든 그것은 각자의 편협함일 뿐이다. 여전히 급격히 변해가는 이 큰 도시 어딘가에서 소박한 자리를 지켜온 한 장삼이사가 자기 방식대로의 독보적인 삶을 일궈오는 동안에 완성한, 단지 ‘독특함’이라는 무성의한 표현으로 폄하해선 안 될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 달콤하고 보드라운 부추전 한 입에 또 세상을 배운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2018년 1월 8일부터 ‘비즈한국’에 연재하는 ‘탐식다반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식당부터 술집과 카페, 제철 식재료까지 폭넓게 음식 이야기를 해나가며 독자의 식욕을 돋울 셈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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