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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봄을 기다리는 함박꽃나무의 겨울눈

함박꽃나무(목련과, 학명 Magnolia sieboldii K. Koch)

2017.12.20(Wed) 11:01:33

[비즈한국] 첫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날 강원도 고성군 마산봉에 올랐다. 해발 1052m인 마산봉은 남한에서는 백두대간의 종점 봉우리인 셈이다. 북으로는 진부령 지나 향로봉이 있지만, 군사통제구역으로 민간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마산봉 아래로는 신선봉, 미시령, 황철봉을 지나 마등령, 설악산으로 이어진다. 마산봉 정상을 오르기 위해 알프스리조트 단지 뒤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대부분 사람은 경사가 급한 이 코스를 택하지 않고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 옛 군부대 도로를 타고 오른다. 

 

소복이 내린 눈이 차곡차곡 곱게 쌓여 있는 산길에는 사람 발자국 하나 없었다. 한 걸음 한걸음이 겨울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는 발걸음 같았다. 갓 내린 첫눈이라서 얼어붙지도 않고 고운 밀가루 흩뿌린 듯 부드럽고 정갈하여 밟는 감촉이 포근했다. 눈 덮인 작은 떨기나무의 빈 가지에 눈이 내리고 얼어 눈과 상고대가 합쳐진 모습이 마치 하얀 산호초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씨앗 떠난 빈 열매 깍지들이 눈에 살포시 싸여 한 줌 먼지로 되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엽 뒹구는 황량하고 삭막한 갈색의 숲속 세계가 맑고 하얀 눈에 덮여 순백의 세계가 되었다. 순백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죄송스럽기까지 한 마음이었다.

 

사람의 지문이 다 다르듯 나무의 겨울눈도 형태가 다양하다. 함박꽃나무의 겨울눈은 매끈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유난히 날씬하고 길쭉한 긴원뿔 모양의 까만 겨울눈 비늘을 지녔다. 사진=필자 제공


겨울 산행에서 식물들을 보면 아름다운 꽃은 아니지만,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잎새 떨군 나목(裸木)과 도르르 말리거나 오그라진 상록수의 잎에서 식물이 겪고 있는 겨울나기의 투쟁을 본다. 찬바람에 닳고 닳아가는 열매 꼬투리에서는 마지막 한 알의 씨앗마저 멀리 날려 보내려는 종족 번식의 애절한 염원을 본다. 말라붙은 마른 가지 끝에 뾰족하게 내민 겨울눈(冬芽)과 겨울눈을 감싸고 있는 겨울눈 비늘(芽鱗)에서는 새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을 본다.

 

온 천지가 하얀 비단 자락에 둘러싸인 듯 산천의 초목이 백설에 덮여있는 겨울 숲속, 마산봉 산길에서 수북이 쌓인 눈을 힘겹게 안고 있는 여린 가지를 만났다. 눈의 무게에 짓눌린 그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는 길쭉하고 까만 겨울눈이 매달려 있었다. 눈 쌓인 가지 끝의 까만 겨울눈에 관심이 쏠렸다. 함박꽃나무의 겨울눈이었다. 

 

사람의 지문이 다 다르듯 나무의 겨울눈도 각기 형태가 다양하다. 함박꽃나무의 겨울눈은 매끈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유난히 날씬하고 길쭉한 긴원뿔 모양의 까만 겨울눈 비늘을 지니고 있다. 이듬해에 곱고 큼직한 함박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가늘고 긴 뾰족한 겨울눈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만 한다.

 

함박꽃나무는 겨울을 견디고 5~6월이 되면 이렇게 하얀 꽃을 ‘함박’ 피워낸다. 사진=필자 제공


이 여린 가지가 자라 피우는 함박꽃! 외진 산골짜기 숲속에서 화사하게 반겨 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하얀 색의 커다란 꽃이 떠오른다. 신비스러운 향기와 함께 수줍은 색시처럼 잎새에 숨어 밝고 환한 웃음을 터뜨리는 꽃이다. 희고 정갈한 한 송이 꽃을 탐스럽게 드러내기까지는 이토록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고난과 아픔이 깃들어야 하는가 보다. 원예종 목련과 달리 밑을 향하여 피는 함박꽃은 티 없이 고운 해말간 미소와 매끈한 나무껍질이 곱다. 눈 쌓인 겨울눈에서 귀하고 순수하고 기품 있는 규수의 자태를 간직한 선녀 같은 함박꽃이 피어나듯 눈앞에 어른거렸다.

 

함박꽃나무는 함백이꽃, 함박이, 옥란, 천녀목란, 천녀화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가 북한의 나라꽃이며 ‘목란(木蘭)’이라 부른다고 한다. 함박꽃나무는 우리나라 각처의 깊은 산 중턱 골짜기에서 나는 낙엽 소교목이다. 물 빠짐이 좋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란다. 잎 표면에는 광택이 많이 나고 육질이다. 꽃은 하얗게 피는데 지름 7~10cm로서 큼직하며 꽃잎은 6~9개이다. 수술은 붉은빛이 돌며 꽃밥은 밝은 홍색이며 향기가 있다. 열매는 타원형 골돌과로 9월에 익으면 실에 매달린 종자가 나온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민간에서는 나무껍질을 건위제, 구충제 등으로 약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에 분포한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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