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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종현, 슬픔이나 우울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너무 빛나던 사람이 한순간에 떠나면 모두는 암흑 속에 들어간 것처럼 슬퍼져

2017.12.19(Tue) 08:34:10

[비즈한국] 온갖 죽음으로 점철된 일기를 마치고 또 다른 부고를 받았다. 그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아이돌이었다. 나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의 노래를 오래, 많이 들었다. 앞으로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혼자 방을 예약하고는 갈탄을 태웠다. 당연히 앞으로도 계속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그 청년이, 이제는 떠나버렸다.

 

그룹 샤이니 종현이 18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숨진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 힘들었다”라고 남겼다. 그는 “고생했다고 말해 달라”라고 남겼다. 그는 “보내 달라”라고 남겼다. 힘들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이 고생했다고 듣고 싶었을 것이었다. 누군가 보내주었으면, 했을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었다.

 

나는 책과 관련된 라디오 생방송에 가야 했다. 아침까지 누군가의 죽음에 맞서 싸웠고, 내 죽음에도 맞서 싸웠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묻는 말에도 대답해야 했으며, 그것들을 낱낱이 전부 적은 참이었다. 이제 막 방송할 대본에는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한 이야기와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던 내 청년기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청년이 유명을 달리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방송국에서는 사달이 났다. 한 달 보름 전에 일정을 잡아 놓은 출연자가 하필 수많은 죽음에 관련된 사람이었다. 애초에 죽음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다만 애도하는 분위기에서 죽음은 위험했다. 나는 담당자와 전화를 하면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런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정해 놓은 이야기만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뻥 뚫린 도로를 달렸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내 병원에서 일어난 죽음들과 화면으로만 보고 지내던 한 청년의 죽음을 이기고, 침착하게 내가 목격한 죽음과 나의 죽음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다 나는 실은 그 말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무치게 힘들었던 그의 이야기였다.

 

가령 이런 말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너는 부족한 것도 없는데, 왜 우울하니.” “너는 이미 모든 것을 이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네 이름은 전 세계에 빛나는데, 너는 왜 힘들어하니.” 

 

타인은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마디가 거듭된 해석을 거쳐 결국 논란을 일으키는 이 세상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지. 누군가 직접적으로 욕을 하지 않더라도 잠재적인 가해는 일상조차 얼마나 뾰족한 가시밭길로 만드는지. 하루를 그럭저럭 보내면 어떤 안도감이 그에게 찾아왔을지. 가치관 형성부터 극도의 도덕적인 완벽과 고결을 강요받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루어 놓은 것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 있는 세계의 정점에서, 자신에게 만족하는 날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웠을 것이었다. 그 환경에서 사람들은 너의 존재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칭찬은 들리지 않고, 꾸짖는 말은 잊히지 않을 것이며, 환호는 어딘가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때로는 우쭐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드러난 것은 너무나 부족하고도 모자란 거울 속의 자신일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해야 하는 일생에서 자신은 꼭 지워버리고 싶은 하나의 존재일 것이다. 그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차는 급하게 빨리 달렸다. 나는 그가 된 것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와는 관련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아픔을 간신히 헤아려 보고서도 “보내 달라”라는 말은 너무나 무책임했다. 시간을 돌려 그에게 찾아가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딴 말은 제발…. 너, 당신, 너 빼고는 아무도 너를 보내지 않아. 제발. 힘들고, 고생스럽고, 전부 다 아니까 제발. 보내지 못하니까 제발….” 

 

달려가 그 갈탄을 태우던 손을 비틀어 쥐고 싶었다. 아, 슬픔이나 우울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했다. 아무도, 어떤 사람이어도 죽지 않았으면 했다. 남은 사람들은 너무나 힘들어야만 하니까. 이제 살아 숨 쉬고 말하는 그를 볼 길이 없으니까. 너무 빛나던 사람이 한순간에 떠나면, 그가 주었던 빛의 총합을 갑자기 어둠으로 치환해 일순간 받아내는 것처럼, 모두는 암흑 속에 들어간 것처럼 슬퍼져야 하니까.

 

나는 다시 기사를 열었다. 그는 여전히 죽은 상태였다. 정말로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추모, 애도, 그것들을 다 모아도 그가 느꼈던 괴로움을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꼭 죽어야만 하고, 위로란 것은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는 불완전한,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다. 거듭된 죽음으로 마음이 너덜거렸다.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 슬픔이 밀려 들어왔다. 한 청년의 슬픔이 죽음으로, 그 죽음이 다시 무수한 슬픔으로, 그 탄환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처럼 내려 마음을 찢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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