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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변호인] 대법원 판례 바로잡겠다는 '패기'에 판사의 반응은?

대법원 판례 거스르지 못하는 지방법원…법관의 독립성은 어디에

2017.12.04(Mon) 16:58:12

[비즈한국] 매일 저녁식사 후 산책을 가는 교수가 있었다. 그는 늘 산책을 나가기 전에 자기 책상위에 문제 3가지를 메모해 올려놓고 제자에게 풀도록 시켰다. 어느 날 제자가 교수 책상 위 문제를 가지러 왔는데 2개밖에 없었다. 한참 찾다가 교수의 책 사이 끼어있는 메모지에 ‘컴퍼스 한 개와 눈금 없는 자로 정 17각형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고 써진 것을 확인했다. 

 

메모지의 내용이 세 번째 문제라고 생각한 제자는 밤새 답을 풀어 제출했다. 그런데 책 사이에 끼인 메모는 제자에게 줄 숙제가 아니라 당시 수학계 최고 난제로서 교수 자신도 풀어보려고 끙끙대던 흔적이었다. 이를 제자가 하룻밤 만에 해결한 것이다. 그 제자의 이름은 훗날 위대한 수학자가 된 칼 가우스(Carl Gauss)다. 

 

메모가 수학계의 난제임을 가우스가 알았다면 답을 낼 수 있었을까? 엄두도 내지 않았거나 대충 풀다 포기하고 틀린 답을 교수에게 줘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수학자들 모두가 머리 싸맨 문제를 한낱 학생인 자신이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하지 않았을 테고, 못 풀어도 누군가 자신에게 실망할 리도 없으니 대강 시늉을 하다가 오답을 제출하고 말았을 일이다.

 

‘저는 칼 가우스와 같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판사님도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준비서면에 쓰고 싶은 심정이다. 이미지=비즈한국DB


위 일화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려운 사건에 직면했을 때 너무 당황하지 말자.’ 권위의 효과(authority effect)에 위축되지 말고 창의적으로 도전하자. 거대한 권위에 눌려 어려운 사건이 무엇일까? 대법원 판례의 반대 결과를 내야 하는 사건이다. 

 

지방법원 재판이 있었다. 법원 앞에 잠시 서서 생각했다. ‘대법원 판례가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 위반인지 명확하지 않아 대법관들의 해석에만 따른 판례인데 그 분들의 해석에 이견이 생길 때 말이다.

 

의뢰인에게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이 첫째다. 그 판례에 대해 변호사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것은 둘째인데, 꼭 의견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해고를 당한 경우와 같이 의뢰인이 더 포기할 무엇도 없이 벼랑 끝에 있을 때는 대법원 판례와 다퉈보자는 의사합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단 이때에도, 다툴 만한 법리가 충분한 경우로 제한한다.

 

그런데 이제 1심 지방법원 재판이 시작되면 호기로운 각오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대리인이 잘 알다시피 대법원 판례도 있는 사안이고…”라며 드러내 놓고 화해권고나 조정을 언급하는 판사는 오히려 고마운 경우다. 보통은 재판 첫 기일 또는 둘째 기일에 판사와 이러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 노동사건, 소수자·약자들의 사건에 있어서 많은 고민과 함께 앞으로 반복될 큰 벽들을 보며 허탈함을 느낀다.

 

입속에서만 말이 맴돈다. ‘대법원 판례가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달라고 1심 재판을 시작한 것인데요?’, ‘대법원에 바로 갈 수는 없잖아요?’, ‘판사님은 대법원 판사와 본질적으로, 그리고 법률상 독립된 기관이잖아요.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판사님도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시면 안 되나요?’ 그렇지만 이쯤 되면 1심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왜 모르겠나. 법정에 오지 않은 의뢰인에게 오늘 재판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답이 없다. 

 

대법원 판례들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일이라 무결(無缺)할 수 없다. 가끔 사실관계나 법률을 오해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대법원 판례도 있긴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입 밖으로 내어 말하고 싶다. ‘지방법원의 판사님들, 대법원 판례가 있더라도 처음부터 잘 한 번 살펴주세요.’, ‘말하고 청할 정당한 기회를 주세요.’ 

 

‘저는 칼 가우스와 같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판사님도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준비서면에 쓰고 싶은 심정이다.​ 

류하경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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