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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한부모가정 아이들은 문제가 많다?

부모의 이혼이 아니라 이혼 전부터 있던 가난 등이 원인…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올바른 대응 가능

2017.11.20(Mon) 10:28:28

[비즈한국] 자녀 교육 문제는 잘못된 통념이 오랫동안 유통되곤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자신들이 접한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지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부모가정 아이는 문제가 많다? 연구 결과,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부모가 이혼 전부터 직면한 여러 문제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통념으로는 아이가 세 살 되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키워야 한다는 이른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일 것이다. 1951년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는 보육원 등에 맡겨진 유아들의 심신발달이 늦은 이유를 분석한 세계보건기구(WHO) 위탁 연구 보고서에서 어머니의 결핍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연구해온 스가하라 마스미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일본인 모자 269쌍을 12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 아이가 세 살 미만일 때 엄마가 일하더라도 문제행동과 모자 관계와의 관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인경 박사는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잘 이해할 목적으로 2006년부터 시작된 ‘한국 아동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한 결과,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시작한 부부의 자녀라고 해서 문제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김 박사는 출산 이후 6개월 이내에 직장으로 복귀한 어머니(전체의 17.5%)들은 근로시간이 길어 자녀 양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어휘력은 또래 평균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어휘력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더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애착 이론’이 한국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출처: 김인경(2016)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 아동패널’ 같은 장기간에 걸친 추적/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잘못된 편견은 이것뿐일까? 

 

그렇지 않다. 패널데이터 분석 덕분에 논박된 대표적인 편견이 바로 ‘한부모가정’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이혼이라는 충격이 평생에 걸쳐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946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적인 영국의 ‘출생 코호트’ 연구 덕분에 이 편견은 적어도 영국에서는 힘을 잃은 것 같다(코호트는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체로, 출생 코호트는 5년 혹은 1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영국의 출생 코호트 연구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 ‘라이프 프로젝트’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인생의 가능성은 진학하는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1958년 영국 코호트 연구자들이 가족해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중략)

 

1946년 코호트의 구성원 중 6살이 되기까지 부모의 별거나 이혼을 경험한 아이는 3%에 불과했다. 반면, 1958년 코호트는 비슷한 나이에 부모의 이별을 겪은 아이들의 비율이 8%였다. 1969년 제정된 법령에 따라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절차가 훨씬 더 쉬워지면서 영국의 이혼율이 치솟았다. 이혼율 상승은 곧 정치적 화두가 되었다.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깨지고, 혼자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궁핍함과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걱정거리로 부상했다. -책 92~93쪽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혼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과정에서 ‘한부모가정’ 아이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왜 선진국의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이혼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2000년대를 고비로 이혼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8년 코호트를 연구한 결과는 어떠했을까? 

 

(영국 정부는) 한부모가정위원회를 소집했다. 위원회가 1969년에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1958년 코호트를 조사하면 그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중략)

 

곧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은 양쪽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한부모가정 아이들은 두부모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고 행동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았다. 그 영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이혼한 부모의 아이들은 후에 실직하거나, 소득이 낮거나,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병에 걸리거나, 폭음을 하거나,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책 93쪽

 

한부모가정 아이들의 상황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고 결정인 영향을 미치니, 부모들은 최대한 이혼을 참고 살아야 할까? 

 

여기에 대해 코호트 연구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사회계급이 더 낮고, 더 가난하며, 더 작고 지저분한 집에 사는 등 이미 불리한 조건에 있는 경향이 있다. 즉, 수많은 교란 변수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중략)

 

연구자들은 이 변수를 걸러내고, 아이들에게 실제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부모가정이라는 환경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들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려 했다. 페리가 그 작업을 끝내자 좀 더 정밀한 그림이 나타났다. 결과를 보니 한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에 따르는 빈곤과 불이익 때문이었다. -책 94쪽

 

즉 부부의 이혼을 불러온 가난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문제였다는 이야기다. 특히 다양한 코호트를 이용해 이혼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점점 더 사태가 분명해졌다.

 

1958년 코호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이들을 평생 추적 조사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증명해주었다. 이혼한 부부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 그 자체와 그 여파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래된 통념이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코호트 데이터를 이용해 이혼 ‘전’의 상황을 검토해보았더니, 부모가 이혼도장을 찍기 오래전부터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아이들의 학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책 94~95쪽

 

결국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부모들이 이혼 전부터 직면했던 여러 문제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은 문제가 있어’ 같은 잘못된 태도를 보이는 대신, 이혼을 유발한 요인에 초점을 맞춘다면 올바른 대응이 가능하지 않을까? 

 

* SBS(2017.11.15),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3세 신화’​ 근거 없다”

** 김인경(2016), “우리나라 영유아발달의 결정요인과 정책적 함의(Determinants of Child Development in Korea and Policy Implications)”, KDI Policy Study 2016-01, 1-98.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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