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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끗 차이 아쉬워…" 노량진 공시족 3인의 포기할 수 없는 이유

1~2년차 '한 문제 차이로 탈락', 3년차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노량진 생활 이어가

2017.11.17(Fri) 15:36:37

[비즈한국] 터널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터널이 언제 끝날진 모른다. 터널을 걷다가 시험을 통과하면 꿈의 도시로 향한다는 것만 안다. 터널 입구엔 ‘공무원시험’ 표지판이 있었다. 깜깜한 터널 속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게 느껴졌다. 통계청은 2017년 5월 공무원 준비생은 26만 2000명이라고 밝힌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통계청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5월 공무원 준비생은 26만 2000명이다. 사진=박현광 인턴기자

 

# “한 문제 차이로 미끄러지고 한 달 동안 술 마셨어요”

 

A 씨는 26세다. 21개월째 공시족(공무원시험 응시자) 생활을 하고 있다. 연극배우가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돈을 벌면서 연극을 취미로 할 방법을 찾다가 공무원 준비를 했다.

 

“연극이 너무 하고 싶은데 생업으로 하기는 무섭더라고요. 극단 생활 잠깐 했는데 아르바이트보다 돈을 못 버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사촌형이 공무원인데 휴가도 눈치 안 보고 쓰고, 정시퇴근하고, 저녁이 있는 삶이더라고요. 공무원이 되면 개인 시간에 연극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무원 준비 시작했어요.”

 

연극인의 꿈을 접지 않은 A 씨는 21개월째 공시족(공무원시험 응시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인턴기자


시험을 앞두곤 절에 들어갔다. 

 

“한 달 동안 절에 들어갔어요. 경남 하동에 사찰 고시원이라고 있거든요. 머리 다 밀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밤 12시까지 공부해요. 밥만 먹고 계속. 산책 20분 정도? 카톡 탈퇴하고 휴대폰도 잘 안 써요. 일주일에 두 번 집에 연락해요. 집에서 걱정하니까. 거기 있으면 세상과 단절되거든요. 외로워서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은 생각에 진짜 열심히 했어요. 또 안 하려고.”

 

15개월째에 세관직 공무원시험을 쳤다. 한 문제 차이로 미끄러졌다. 충격으로 한 달 동안 술을 마셨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익숙한 걸 하는 거죠. 이 공부를 다 해놨고, 복습만 하면 되니까. 합격점 근처까지 가봤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손에 잡힐 것 같으니까 포기 못하는 거죠. 노량진 장수생들이 포기 못하는 이유가 공무원 준비 몇 년 한 걸 알아주는 데가 없어요. 나의 노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거죠. 점점 다른 거 할 게 없어요.”

 

# “밥 계산할 때만 ‘감사합니다’​ 하루에 딱 세 마디만 해요”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20대 비정규직 비율이 32.8%로 10년 새 가장 높다. 청년실업률은 2017년 2월 12.3%로 10년 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래서일까? 2017년 4월 국가공무원 9급 공채에는 22만 8368명이 응시했다. 역대 최다 수치다. 

 

B 씨는 올해로 27세다. 대구에서 22개월 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올해 9월 경찰공무원시험에 떨어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4번째 낙방이다. 

 

의경 출신 B 씨는 대구에서 22개월 동안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지난 9월부터 서울에서 시험준비를 한다. 사진=박현광 인턴기자


“경찰학과 나왔고, 의경도 갔다 왔고, 의경 갔을 때 음주단속 했던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딱 2년만 하자고 마음먹었거든요? 그게 2018년 3월까지예요. 만약 2018년 4월 떨어지면 그만둘 자신이 없어요. 근데 더 할 자신도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량진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려니 돈이 많이 든다. 7㎡(약 2평)도 안 되는 방이 월 33만 원, 학원비는 두 달에 50만 원, 경찰공무원 실기 준비를 위해 다니는 헬스장은 세 달에 16만 원이다. 밥은 아무리 싼 걸 사먹어도 월 100만 원 이상 든다.

 

“돈은 집에서 받죠. 아침엔 3500원짜리 도시락, 한식뷔페 식권을 10장씩 사면 장당 3900원이거든요. 그걸로 점심·저녁 먹고, 잠 와서 못 버틸 때 커피 한 잔 마셔주면 하루에 1만 3000원. 야식으로 국밥 한 그릇씩 하면 거의 2만 원 나가니까. 이번 9월에 떨어지고 나니까 집에서 눈치를 좀 주더라고요. 이번만큼은 진짜 꼭 붙어야한다는 절실함이 있어요. 목수일이 전망이 좋다는데 그걸 할까 생각도 하고, 하루에도 별의별 생각을 다 합니다.”

 

B 씨는 서울에 온 뒤 지하철을 딱 한 번 타봤다. 서울역에서 노량진으로 이동할 때였다. 홍대, 이태원, 강남 등 TV에서 보던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참는다. 서울 와서 카페를 간 것도 인터뷰할 때가 처음이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하루 4시간 잔다. 나머지 시간은 학원 수업과 공부로 채운다. 

 

“하루 딱 세 마디 말해요. 식당가서 계산할 때 ‘감사합니다’ 세 번. 말을 할 일이 없어요. 노량진에선 다들 예민해요. 누가 휴대폰 떨어뜨리면 쪽지 써서 ‘조심 좀 해 주세요’라고. 다들 초조한 거죠. 친구 만들 일도 없어요.” 

 

B 씨가 견디기 힘든 건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다. 

 

“진짜 힘든 게 뭔 줄 알아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시험을 쳤어도, 떨어지면 주위에서 ‘열심히 안 했네’라고 손가락질 하는 거예요. ‘얘는 열심히 했으니까 붙었잖아’라는 말 하는 거. 근데 난 진짜 열심히 하거든요.”

 

# “면접에서 떨어지니 멘붕…부모님 기대 생각하면 가슴 아파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5월 청년 취업준비생 36.9%가 공무원을 준비한다. 청년 10명 중 4명꼴이다.

 

C 씨는 26세다. 2016년 9월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모아둔 돈으로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독학했다. 소방관이라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되고 싶은 C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소방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인턴기자


“제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을 돕는 걸 좋아합니다. 군대에서 라이프 가드를 땄거든요. 연습이지만 남을 구하다보니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소방관이 하고 싶단 생각에 실제 소방관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더 매력을 느끼고 싶어졌는데, 소방관이 되려면 공무원이 돼야 하더라고요.”

 

C 씨는 공무원시험 준비 7개월 만에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2차 실기, 신체검사, 3차 면접까지 합격했다. 다 된 줄로만 알았다. 최종 면접자 80명 중 20명이 떨어졌는데 그 중 한 명이 그였다. 

 

“멘붕이었죠. 발표 후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못했어요. 강의 결제한 게 남아서 봐도 눈에 안 들어오고. 결국 노량진 학원에 등록해서 다시 해보자 생각했죠.”

 

최종까지 갔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법하지만 불안감이 전보다 커졌다. 

 

“매일 똑같은 꿈을 꿔요. 강사가 들어와 있고, 수업이 시작하는데, 나만 자고 있는 꿈. 아무도 날 안 깨워요. 꿈이니까 강의실 더 꽉 차 있고, 애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놀라서 깨면 아직 퍼져 있는 분위기에 북적북적해요. 매일 꾸는데 꿀 때마다 똑같이 놀라요.”

 

모아둔 돈이 떨어져서 부모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C 씨는 누나가 둘 있는 막둥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도 일을 하는 부모님이 마음에 걸린다.

 

“한 달 20만 원 써요. 교통비 8만 원, 통신비 8만 원, 그러면 4만 원 남는데 그걸로 한 달 버티는 거죠. 아침은 집에서 먹고, 점심은 도시락 싸서 다니고, 저녁은 집에서 먹으니까 돈을 거의 안 쓰죠. 진짜 배고플 때 초코바 이런 거 사먹고. 제가 아직 돈을 못 버니까 어머니가 일을 못 그만 두시거든요. 그 생각할 때마다 진짜 이번엔 꼭 붙어야겠다는 생각하죠. 사명감도 느끼고.”

 

# “시험은 실력이 아니라 운”…내가 아는 문제 많이 나와야 합격

 

‘꿈의 도시’행 출구는 1년에 많게는 세 번, 적게는 한 번 열린다. 20문제씩 5과목 총 100분, 1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평가받는 시간이다. 공무원시험은 한국사, 영어, 국어가 기본 과목이고, 2과목은 응시 직렬에 달렸다. 

 

한 번의 시험에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노력이 평가 받는다. B 씨는 손이 떨려서 청심환을 먹었지만 실패한 웃지 못 할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 

 

“시험을 못 칠 만큼 손이 떨리니까 청심환을 샀죠. 약사가 시험 전날 저녁에 먹으라는 거예요. 전날 먹으면 이게 효과가 있을까 싶어서 아침에 먹었더니 시험 때 손이 덜덜 떨리고, 끝나니까 차분해지더라고요. 답 맞춰 보는데, 그제야 답이 잘 보이더라고요.”

 

시험 당락을 결정하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과 컨디션이라고 A, B, C 씨 모두 입을 모은다. 

 

“실력은 열심히 했으면 다 거기서 거기예요. 운이죠. 내가 잘 아는 부분이 더 많이 나오느냐, 쟤가 잘 아는 부분이 더 많아 나오느냐, 차이예요. 내가 영어 어휘에 강한데, 어휘가 쉽게 나오고 문법이 어렵게 나오면 망하는 거죠. 나보다 전체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붙기도 하고 그러죠.” 

 

노량진 식당에서 파는 식사. 공시족에게는 밥 한 끼 값도 부담스럽다. 사진=박현광 인턴기자


C 씨는 소방관이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무원 하고 싶어서 소방관 하는 게 아닌데, 영어·한국사 이런 걸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소방관 시험이 일반 공무원시험보다 쉽거든요, 사실. 일반 공무원 준비하다가 넘어온 사람들이 필기 다 통과해버리니까 진짜 소방관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계속 떨어지고. 시험이 좀 현실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저녁 8시 시작한 인터뷰는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다. 카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노량진 거리는 바삐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손에 든 종이를 응시하며 걷는 사람들. 그 사람들 뒤로 ‘공무원 합격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학원 전단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박현광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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