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로마의 카이사르는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군사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늘 걱정했다. 그래서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평민 출신의 아그리파를 늘 그림자처럼 보좌하게 했다. 훗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아그리파가 없었다면 아우구스투스는 결코 황제가 되지 못했다(It is conceivable that without Agrippa, Octavian would never have become emperor)’고 서술돼 있다.
최근 삼성전자 사업지원TF 팀장을 맡게 된 정현호 사장을 보면 마치 아그리파를 떠올리게 한다. 삼성에서 정 사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늘 이재용 부회장과 보조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덕수상업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정 사장이 ‘미니 미전실’, ‘작은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사업지원TF를 맡게 된 것도 이와 결코 무관치 않다.
# 삼성 후계자와 임원 동기이자 승진 파트너
2001년 3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부장의 경영참여가 공식 결정된다. 서른셋의 나이에 삼성전자 상무보로 인사 발령이 났다.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일부 주주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삼성전자 측은 ‘인사는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 사상 최대의 임원인사가 단행됐다. 회사의 지원으로 하버드에서 경영 MBA을 밟은 정현호 부장도 4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무보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승진임원 평균 연령은 47.3세였다.
2000년 말 신설된 삼성전자 IR팀에 배속된 정현호 상무보의 활약은 남달랐다. 당시 삼성전자는 글로벌 IR에 주력하고 있던 시점.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며 투자를 대거 이끌어냈다. 당시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률은 과반을 넘어 56%에 달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03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 합류한다. 2003년은 이재용 상무보가 상무로 승진한 해이기도 하다. 같은 해는 아니지만 정현호 상무보도 그 이듬해인 2004년 상무로 승진했다. 당시는 삼성맨 사이에서 ‘구조본=초고속 승진’이라는 공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2007년 1월 이재용 상무와 정현호 상무는 나란히 전무로 승진된다. 비록 상무 승진은 1년 늦었지만 전무는 같은 날 됐다. 당시 이재용 상무의 승진 여부는 경영 세습 비판 여론과 함께 매년 초미의 관심사였기에 다소 속도조절을 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오너 일가와 발을 맞춰서 승진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는 평가다. 심지어 2010년에는 함께 부사장에 올랐다.
이재용 부사장은 2011년 사장, 2013년 부회장에 오르며 사실상 완벽한 후계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정 부사장 역시 2014년 삼성그룹의 인사를 총괄하는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 보직 이동과 함께 사장으로 승진한다. 정 사장이 오너 일가가 아니라는 점과 조직 내 연차를 감안하면 사실상 최고 속도의 승진 코스를 밟았다는 것이 삼성 조직문화를 잘 아는 대부분 사람들의 평가다.
# 컨트롤타워 무너져도…변함없는 신임
삼성이 그동안 정현호 사장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해 왔는지, 또 정 사장이 삼성이 위기에 닥쳤을 때도 얼마나 적재적소에 계속 기용됐는지를 잘 알려주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이후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2008년 4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당시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 해체를 골자로 하는 경영쇄신안을 발표한다. 동시에 그룹 내 2인자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퇴직한다. 정 사장을 포함 전략기획실 소속 임직원은 각자 소속사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정 사장이 자리를 옮긴 곳은 삼성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2000년 이후 삼성전자 내에서 무선사업부의 위상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그간 재무라인만 밟아온 정 부사장을 현업 부서로 배치한 것은 확실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2010년 12월에는 카메라 사업을 담당하는 디지털이미징사업부장으로 발령을 내 지원 업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사업 경험을 쌓게 하는 듯했다. 더욱이 인사와 함께 해체한 전략기획실의 역할을 이어받은 미래전략실 신설이 발표됐음에도 곧바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인 2011년 6월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된다. 내부 감사 결과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의 부정이 적발되자 이건희 회장이 진노하며 삼성그룹 감사를 책임지는 자리의 직급을 높이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정 사장이 다시 그룹 수뇌부의 일원이 되는데 까지 불과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올 3월 미래전략실 역시 최순실 국정 농단 및 삼성 불법승계 수사의 여파로 결국 해체 수순을 밟는다. ‘비서실→구조본→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어지는 삼성 컨트롤타워의 네 번째 붕괴다. 미래전략실 수뇌부는 고문과 같은 예우 없이 전원 퇴사가 결정된다.
김종중 전략팀장, 성열우 법무팀장, 정현호 인사지원팀장, 임영빈 금융일류화추진팀장, 이수형 기획팀장, 박학규 경영진단팀장, 이준 커뮤니케이션팀장. 여기에 구속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을 포함해 9명의 수뇌부가 퇴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정현호 사장은 지난 2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동시에 이번 삼성전자 인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 사업지원TF의 진짜 역할은?
정현호 사장은 앞으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을 수행할 예정이다. 사업지원TF의 향후 업무에 대한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은 전자 계열사 간의 공동이슈 대응 및 협력 조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니 미전실’로 보는 시각도 적잖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조직의 책임자인 정현호 사장이 그동안 삼성그룹 내에서 해온 역할을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은 옥중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의 가교 역할이 주된 업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이상 이재용 부회장의 ‘옥바라지’ 및 경영 메시지 전달 등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진다.
무엇보다 삼성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1심에서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집행유예를 받아 내거나, 감형에 실패하더라도 특사와 같은 조치를 통해 어떻게든 출소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는 아직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 사이 계열사를 포함해 조직을 단단히 붙들고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정현호 사장의 역할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무리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 계열사 중심의 경영을 한다고 해도 조직 간 업무 조율은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정 사장이 맡아온 업무 때문에 오해가 많은데 최소한의 조율 및 지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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