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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둬야 아름답다, 분홍장구채

석죽과, 학명 Silene capitata Kom.

2017.10.31(Tue) 17:59:11

[비즈한국] 켜켜이 쌓아 올린, 떡시루 층과 같은 바위 무더기 속에 뿌리박고 자라는 풀 한 포기가 빨간 꽃을 피웠다. 언뜻 보면 바위 틈새에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모습 같기도 하여 혹여 밑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이다. 대부분 꽃과 달리 봄, 여름 보내고 단풍 물결이 산천을 한창 휩쓰는 10~11월에서야 분홍빛 꽃을 피우는 분홍장구채의 모습이다. 햇살 부드러운 따뜻한 봄철 다 보내고, 불볕처럼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바위틈에서 폭염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황량하고 삭막한 바위 틈새에서 분홍장구채가 선명한 분홍 꽃을 피워올렸다. 사진=필자 제공


척박하고 메마른 환경에서 피워내는 선명한 분홍 꽃은 맑고 곱다. 황량하고 삭막한 바위 틈새에서 어찌 그리 아름다운 빛을 뽑아 올릴 수 있을까? 천적을 피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사는 야생의 조류나 산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도 겉으로 드러나는 흙 한 줌도 없는 척박한 바위 틈새에 박혀 자라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사람을 피해서 절벽의 바위 틈새에 자리 잡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사람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꽃이 한 포기도 없었다. 키가 닿지 않는 절벽의 높은 곳에서만 몇 개체가 자라고 있었다. 준비된 망원렌즈가 없어 가까이서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서는 암벽타기 하듯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했다.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바위 틈새에 발을 비벼 넣고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묘기인 듯싶었다. 사람 키가 닿는 절벽 낮은 곳에는 꽃이 한 포기도 없다는 것은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개체는 누군가가 채취해 갔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분홍장구채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는 식물이다. 남부지방에서는 볼 수가 없고 중부 이북의 손꼽을 수 있는 특정 지역 몇 군데에서만 자라는 매우 희귀한 들꽃이다. 현무암지대, 물가의 반그늘 암벽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란다. 옮겨 심으면 아무 데서나 살 수 있는 산들꽃이 아니다.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 식물은 대부분 현재 자라고 있는 그 자생지가 아니면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바로 인근이나 주변에 널리 퍼져서 자라지 못하고 특정 지역에만 한정해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식물을 그 특성을 무시한 채 보기 좋다고 함부로 채취하여 정원이나 집 근처에 옮겨 심으면 반드시 죽고 만다. 설사 옮겨 심은 후 1~2년을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시난고난 죽고 만다. 

 

가파른 절벽에 붙어사는 동강할미꽃이나 둥근잎꿩의비름이 분홍장구채와 같이 우리가 보기에는 극한의 악조건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들에게는 그곳이 최적의 생의 터전이다. 그러한 특수 환경에서 끈질기고 모진 생을 이어가기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선명하고 고운 빛깔의 꽃을 피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함부로 채취해가고 손을 대서 이러한 꽃들이 갈수록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파른 절벽에 핀 분홍장구채. 사람 키가 닿는 낮은 곳에는 꽃이 없다는 것은 손 닿는 곳에 있는 꽃은 누군가가 채취해갔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분홍장구채는 경기도 연천군, 강원도 영월군, 철원군 등 특정 지역에만 자라는 멸종위기종 자생식물로서 잎과 줄기 전체에 털이 산재한다. 잎은 마주나기 하며 긴 달걀모양이다. 꽃은 10~11월에 분홍색으로 가지 끝에 산형상(傘形狀)으로 모여 핀다. 종자는 흑색이며 콩팥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돌기가 있다. 자생지 및 개체 수가 많지 않아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식물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꽃일수록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자라게 해야만 한다. 꽃을 좋아한다고 그 꽃을 꺾어서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자기 욕심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차마 꺾지 못한다. 꽃이건 사람이건 사랑이란 욕심을 버리고 바로 아껴주는 것이다.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아끼는 마음, 함부로 접근하지 않고 신비롭게 쳐다보고 그리는 마음, 이것이 야생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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