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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현자타임] 채용 비리에 왜 엄마가 미안해야 하나

청탁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부모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2017.10.24(Tue) 14:37:47

[비즈한국] 바쁜 현대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회사 출근과 등교 시각이 달라 각자 나가기 일쑤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각은 다르기 때문에, 전날 준비한 음식을 먹고 알아서 나간다. 그런데 지난주는 달랐다.

 

엄마는 이를 닦으며 출근을 준비했고, 나는 습관처럼 TV 뉴스를 틀고 거실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과일은 아침식사 대용이며 뉴스는 날씨 알리미다. 일기예보를 듣고 일어서는 찰나, 뉴스에서 우리은행 채용 비리 기사가 나왔다.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 VIP로 불리는 유력 인사에게 채용 청탁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관련기사를 찾아보니 가관이었다. 누구는 국기원장의 조카라서 붙었고, 누구는 어느 지역 부구청장의 자녀라서 합격했다. 금융감독원장과 대학교 부총장은 대놓고 합격을 청탁했다. 

 

더 이상 엄마의 미안한 눈빛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사진=비즈한국DB


알고 있었다. 특정 직군의 몇몇 자리는 내정됐다는 설이 이미 횡행했다. 하지만 이렇게 확인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재벌 일가와 국회의원 등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병원장, 사기업 전무 등 다양한 사회 고위층이 채용 비리에 연루됐다. 이쯤 되니 ‘취업에 성공한 내 친구들이 유력자의 자녀였나’라는 의문마저 든다. 

 

문득 그날 아침 풍경이 떠올랐다. 채용 비리 뉴스가 나올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미안함이 담겼다. 좋은 아침밥을 해주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취업전쟁에서 자식의 취업에 힘을 쓰지 못하는 미안함이었다. 불공정한 세상을 물려줬다는 미안함이었다.

 

자식 취업에 힘을 쓸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힘을 쓰는 일은 부도덕하지만, 애초에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적다. 저런 기사를 읽으면 그나마 있는 힘도 빠진다. 허탈하고, 허무하고, 무기력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의 채용은 내정됐고, 누군가의 탈락은 운명 지어졌기 때문이다. 분기마다 버려지는 인·적성 교재와 자소서를 쓸 때마다 쪼그라드는 취준생의 자존감과 “살려주세요”라며 절규하는 취준생의 외침은 운명이었다. 비극이라는 운명.

 

엄마의 눈빛을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내 기억에서 지우고, 세상에서 지웠으면 좋겠다. 더는 취업에 힘을 써주지 못해 미안한 부모가 없으면 좋겠다. 자립하는 청년의 첫발은 취업에서 시작된다. 자립이 시작되는 취업시장이 공정해야 한다. 취업 청탁과 채용 비리로 엉킨 불공정한 취업시장은 미안한 부모와 더 미안해하는 자식들을 낳는다. 

 

정부가 할 일은 스타트업을 하라는, 창업하라는, 취직이 아니라 창직을 하라는 이루기 어려운 망상을 주입하는 게 아니다. 이미 마련된 취업이라는 관문의 비리를 해결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건 크게 바라지도 않는다. 취업시장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규칙을 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취업 청탁과 비리를 단절해 더 이상 미안한 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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